개목초 이야기

개목초

(일본국에 이것을 아는 사람은 다만, 일련 한사람이니라)

 

 

『이것을 한마디라도 입 밖에 낸 다면 부모, 형제, 사장(스승)에게 국주의 왕난이 반드시 닥치리라 말하지 않는다면 자비가 없음과 같다고 사유되어 법화경, 열반경 등에 이 두 가지를 대조해 보니, 말을 아니 하면 금생은 무사할지라도 후생은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말하자면 삼장사마가 반드시 다투어 일어나리라고 알았노라. 둘 중에는 말해야할 것이로되 왕난 등이 일어났을 때 퇴전할 것이면 아예 그만둘까 하고 잠시 망설이고 있노라니 보탑품의 육난구이가 생각 났느니라 우리들 같이 힘 약한 자가 수미산을 던질지라도 우리와 같이 무통한 자가 건초를 지고 겁화에는 타지 않을지라도 우리들 같이 무지한 자가 항사와 같이 경들을 읽고 외울지라도 법화경은 일구일게(一句-偈)도 말대엔 갖기 어렵다고 설해짐은 이것이로다. 이번에 강성 한 보리심을 일으켜 퇴전 않겠다고 원했노라』

 

 

개목초는 ‘법인 말법인본존의 개현서' 입니다. 그래서 내용은 좀 어렵고 그 어려운 내용을 우리 신심과 연결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을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어려운 내용은 지혜는커녕 지식으로도 머릿속 남기기 어려운 일입니다. 에를 들어서 내용 중 법상종이라는 종파가 나오는데 이 법상종은 7세기에 생긴 불교종파이고 그 유명한 현장삼장법사의 제자가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법상종을 깊이 배워도 우리 신심에 응용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개목초 에서도 여러분의 신심의 지혜가 될 내용을 골라서 하겠습니다.

 

일본국에 이것을 아는 사람은 다만 일련 한사람이니라.'

말법사상은 1052년이 시작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불교수행자들은 이제 사회가 어지러워질 거라고 생각해서 정토종 , 정토신종, 임제종, 조동종을 개종하여 서민에 안심을 주려고 했습니다. 우리 일련 대성인님께서는 그 시대 일본에8종, 10종이 생겼을 때 마지막에 나타나신 불교가입니다 그래서 대성인님의 수행시절에 법상, 삼론, 구사, 성실, 율, 화엄의 6종과 천태, 진언 그리고 염불종까지 일본에 있는 모든 불교의 교의 사상 수행방법을 연구하시고 말법 중생을 구제하는 가르침을 찾으셨는데 지금까지의 교의, 수행방법으로는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말법중생을 더 구제하는 방법은 석존의 출세의 본회인 법화경이라고, 그리고 "이것을 아는 사람은 일련 한사람" 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그것 은 법화경을 실천하는 사람도 일련 대성인님일 뿐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대성인께서 탄생 하셨을 때 일본의 천황은 86대 ‘고호리가와천황’이었는데 어서를 보면 천왕이 50명 이상 나옵니다. 종교인이 자신의 종파, 교의를 자세히 설하는 것은 보통이지만 천왕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왜 대성인님께서 천황 일족을 연구하셨는가 하면 국가를 구제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중국에서는 정치하는 방법이 왕도, 즉 덕으로 인해 통치 하는 법과 또 '패도, 즉 무력으로 인해 통치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불법사상은 왕도정치입니다. 일련대성인님 시대는 사무라이(무사)가 정치를 보는 패도정치였습니다. 그래서 대성인님께서 광선 유포하면 덕이 많은 왕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일본왕족인 천황을 연구하신 것입니다. 오늘어서를 보면, “이 법화경 외에 사회의 안락이 없고 사람의 진실한 행복도 없다. 다른 불교는 석존의 뜻을 모르고 멋대로 하고 있다. 수행을 해도 지옥에 간다. 이러한 말을 했다가는 부모 형제 스승님까지 국가 권력에서 박해를 받을 것이다. 박해를 원하는 사람은 없고 나만 법난을 당하면 견딜 수 있지만 그 박해가 아무 죄 없는 부모 형제 스승님 제자까지 당한다면 견디지 못할 일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 법을 설하는 것을 그만둘까?' 라고 생각했지만 후생에 석존께서 일련은 자신만 성불하고 부모 형제의 성불을 원하지 않은 자비심이 없는 자라고 혼이 날것이다. 혼날 뿐만 아니고 말법 법화경 행자의 사명을 버린 자로서 지옥에 떨어진다.” '설할까? 말까?' 라고, 수행시절에 대성인님께서 고민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절복을 받고 신심을 할까? 말까?" 라는 문제와는 다릅니다. 말법만년의 구세주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법화경을 신독하고 삼류의 강적으로부터 부모 형제 스승님이 유죄 사죄를 당한다면 견딜 수 있을까? 용수, 천진 천태, 전교도 못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만약 중간에서 그만둘 일이 생긴다면 말법에 존귀한 법을 버린 자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러한데 한마디라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대한 선택. 이 문제를 오랫동안 고심하신 것 같습니다.

 

다른 어서에 "국가 권력이 나오면 한번 숨었다가 때를 보고 활동하면 어떨까?" 이런 일을 생각했다는 어문이 있습니다. 국가권력에 약해지는 스님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을 시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화려한 것을 좋아했습니다. 불교 일로 큰 불상을 만들고 스님을 1,000명 모아 개안공양을 계획했습니다. 교토, 오사카 주변에는 일련종의 대본산 급 사원이 21개 있었습니다. 그 사원의 관장쯤 되는 노승, 명승들도 참가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히데요시는 법화경 신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행사에 참가하면 화려한 것을 좋아하니까 공양도 많이 할 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련 대성인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제자는 우리 일련정종은 물론 일련종 등 일련파는 방법자의 공양을 받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일은 방법 자라고 봅니다 그래서 석존을 부처님으로 모시는 일련종은 불상 개안식에 참가는 하지만 공양을 받지 않는 것이 교리에 맞습니다. 그러나 전국시대를 마무리하고 장군들의 제일 상위에 있는 히데요시의 공양을 받지 않는다면 그 스님은 사형은 물론 그 종파가 없어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결국 일련종의 스님들은 99% “보시(공양)를 받는 것은 종조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이지만 시대가 시대이며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여기서는 보시를 받고 피하는 것이 좋다." 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받지 않겠다는 종파는 단 하나 묘각사의 니치오우 뿐이었습니다. 이 승은 결국 대마도에 유죄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안 풀린 히데요시는 묘각사 신자에게도 탄압을 했습니다. 신자는 니치오우 스님의 마음을 따랐고 땅을 파고 숨어서 신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 파를 일련종 ·부수부시파(보시를 받지도 하지도 않다)' 라고 합니다. 제가 태어난 해는 일본이 미국하고 전쟁을 시작하는 해입니다. 그 때 일본 정부는 천황은 모시고 있어도 실제 권력은 군부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군부가 한국에도 신사참배와 신패를 강제 했다는 역사를 아는 사람도 계시지요. 대석사도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독재 국가권력에 종교가가 반대하는 일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자신은 물론 그 종파 모든 제자 신자까지 죽음을 택하는 일입니다. 대성인님 시대는 호죠 막부가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호죠 씨는 무사 집단이고 대성인님이 탄생하시기 1년 전에 천황과 전쟁을 하여 3명의 천황 일족을 참수, 유죄를 시켰습니다. 그 당시 천황은 일본에서 신으로 생각했었는데 신과 전쟁을 해서 참수를 한 권력자가 아무 힘도 없는 한 스님인 일련 대성인님을 죽이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 이 법화경을 설한다는 일은 부모 형제 일족 모두 사형 당하기 쉬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대성인님께서 고민하셨는데 어느 날 법화경 보탑품의 ‘육난구이’ 의 가르침이 생각났습니다. 이것은 홍교에 대해 정법, 상법시대에 9개의 쉬운 일과 말법에 6개의 어려운 일을 설한 문입니다.

 

"우리가 수미산을 가지고 던지는 일은 쉬운 일, 불이 난 장작을 업고 화상을 입지 않는 일은 쉬운 일, 우리가 갠지스 강의 모래 수만큼 경을 외우는 일은 쉬운 일" 절대 못할 것 같은 일들도 말법의 절복과 홍교하는 일보다 쉽다는 말입니다.

대성인님께서 진실한 법을 깨닫고 그러나 이 법을 설하지 않는다면 인간으로 스님으로 제자로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일에 대해 모두 부정하는 것이니 "이번에 강성한 보리심을 일으켜 퇴전 않겠다고 원했노라.”라고, 진실한 스님으로 어떤 고난이 일어나도 살고 말법행자가 될 것을 결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1253년 4월28일에 입종선언 하시게 됩니다.

법화경을 위해 말법 중생을 위해 우리가 지금 제목을 올리고 공덕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 대원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이 일련 대성인님의 대원이 있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일련 대성인님께 감사하는 마음, 보은 사덕 하는 마음을 다시 일으켜서 정진하십시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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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