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만에 새로 개관한 경주천마총

45년만에 재단장한 경주천마총

 천마총 입구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과 부장품


 천마총이란 이름의 유래가 된 천마도

경주시가 20178월부터 관람공간을 폐쇄하고 리모델링r공사에 들어가 11개월간 철저한 고증에 의한 시설보수 및 전시관련 대규모 개선 작업을 진행하여, 1973년 발굴 후 당시의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유일한 고분이었던 천마총이 최근 관람객의 안전과 전시시설에 대한 보수 보강을 완료하여지난 727일 경주천마총이 45년 만에 문을 새로 열었다. 천마총은 경주 대릉원의 핵심 유적이자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1973년 첫 발굴조사가 이뤄져 1976년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이후40여 년이 흘러 시설이 낙후됐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곤 했다. 이에 경주시는 고증 자문을 통해 적석목곽부를 돌무지의 형태와 덧널의 구조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천마총 목곽의 높이는 당시 발굴에 참가했던 연구원들의 자문을 받아 2.3m의 단곽형 목곽으로 확정됐다전시공간도 기존의 목곽 앞쪽의 반구형태 관람 공간 외에 목곽 뒤의 일반인이 출입 못하던 긴 설비 공간을 과감히 전시공간으로 확장 개선했다. 신라의 웅대한 고분문화와 마립간시대의 찬란한 유물들에 대해 이해가 쉽고 시각적으로 바로 다가서도록 첨단 디지털영상기기를 비롯한 다양한 전시매체로 연출했다.

 빽빽히 들어있는 부장품 

 지배층들의 말 장신구

 천마총 내부의 돌과 진흙으로 만든 실제

 1973년 당시의 발굴단과 발굴과정





경주 천마총은 5세기 후반 또는 6세기 초반에 축조한 신라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돌무지덧널무덤)으로 만들어진 왕릉급 무덤이다. 누구의 무덤인지는아직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무덤의 주인공이 소지왕(재위479~500) 또는 지증왕(재위 500~514)이라는 학설이 우세하다. 1973년 발굴당시만 해도 금관(국보188)을 포함하여 국보급만 3점이나 되는 1만점이 넘는 부장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역대급 발굴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어두운 무덤 내부는 높이 2.3m에 이르는 거대한 목곽(木槨)이 유리창 안으로 자리해있다. 목곽 위로는 가지런히 쌓아올린 돌무지가 어렴풋이 보이고, 내부로 환한 빛이 비친다. 목곽은 동서 6.6m, 남북 4.2m, 높이 2.3m로 다시 만들고, 목곽 천장재질은 유리에서 나무로 바꿔졌다. 목곽과 입구 사이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는 커다란 벽을 설치했으며, 금관, 목걸이, 귀고리, 팔찌, 큰칼이 빽빽하게 놓였고, 바깥에는 금동신발 한 짝이 있다. 엄청난 양의 화려한 황금 부장품이 눈길을 붙잡는 1500년 전 신라 왕릉급 무덤은 단연 압도적이고 장엄하다.

또 관람객을 더 많이 수용하기 위해 1.5m가량 뒤로 밀었던 목곽 위치도 원래 자리에 가깝게 재조정하고, 목곽 위를 덮은 돌무지는 반구형에서 초가지붕을 닮은 사다리꼴로 변경했다. 특히 지진에 대비해 금제 유물 복제품 일괄을 전시한 진열장 바닥에는 규모 6.8까지 버티는 면진 받침대를 설치했다고 한다. 새로이 단장한 경주 천마총은 이전과 비교할 경우 신라시대 무덤축조 기술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게 가장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시대 기법으로 만든 자작나무 껍질 천마도와 대나무에 금동 조각판을 입힌 천마 두개, 45년 전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의 업적을 기리는 사실공간도 구비했다. 문화재청 전신인 문화재관리국이 1974년 발간한 천마총 발굴보고서 실물을 비롯해 야광조개 국자, 곱은옥, 푸른색이 감도는 유리잔 복제품도 전시되어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이번 공사에서 1973년 발굴 당시 모습을 재현하는 데에 주안점을 뒀다, “새로운 전시관에서 찬란했던 신라의 문화유산과 함께 천마총을 진정한 옛 모습을 만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시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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