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 6

다부동 전투의 그날을 기억하는 곳

6월은 호국보훈의 달 6

다부동 전투의 그날을 기억하는 곳,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6.25 전쟁의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유역을 지키고, 불리했던 전세를 역전 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다부동 전투’에 대해 알리고자 2015년에 세워진 공공 박물관이다. 한국전쟁 발발에서부터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다부동 전투에 뛰어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학도의용군으로 나선 어린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학도의용군 태극기’ 앞에서 고개가 숙어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전쟁의 무서움과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된 ‘최승갑 하사  이야기’


2000년 4월의 어느 날, 칠곡군 369고지에서 백골이 된 유골 한 구가 발견됐다. 그의 곁에는 호루라기, 만년필, 그리고 ‘최승갑’이라는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삼각자가 놓여 있었다. 꽃같이 고왔던 아내는 75세 할머니가 되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편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제야 나타난 남편, ‘50년의 기다림’에 세상을 원망할 법도 한데, 아내는 감사하다며 편히 잘 계시라는 말로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최승갑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큰 울림을 줬고, 강제규 감독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탄생시켰다. 영화에서는 ‘최승갑’이 ‘이진서’로, 50년 동안 기다린 ‘아내’가 ‘늙은 동생’으로 각색됐다. 아래 세번째의 사진은 최승갑 하사의 묘비를 잡고있는 동생 최중배씨(영화속의 원빈)다.



칠곡에 새겨진 ‘다부동 전투’의 기억


칠곡은 한국전쟁을 통틀어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의 배경지다. 대구를 점령해 한반도 전역을 손아귀에 넣으려던 북한의 야심을 막기 위해, 우리 군은 칠곡 다부동을 중심으로 낙동강에 최후의 방어선을 치고 55일간의 혈투를 벌였다. 전투는 다행히 우리의 승리로 끝났지만, 수많은 젊은 군사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328고지의 경우 12일 동안 주인이 15번이나 바뀌었다고 하니 그 참상을 짐작할만하다. 큰 희생이 따르긴 했지만, 다부동 전투의 승리로 패색이 짙던 전쟁의 분위기가 바뀌었고, 기세를 몰아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볼링앨리 전투, 다부동 전투는 최초의 한미연합작전으로 북한군과 전차전을 벌인 곳으로 유명하다. 전쟁사에서는 당시의 전차전을 '볼링앨리(Bowling Alley) 전투'로 기록하고 있다. 볼링앨리는 포탄이 후방으로 날아가 폭발하는 모습이 마치 볼링공으로 핀을 넘어뜨릴 때의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전차전은 1950년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금화, 천평 일대에서 벌어졌다.


융단폭격
왜관 북서쪽 부근에 적 3개 사단과 105 전차 사단이 집결하고 있고, 그 병력은 4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이에 미 8군 작전처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 수행 중 '생로' 지역에 감행한 융단폭격을 생각하고, 1950년 8월 16일 전무후무한 B-29 전략 폭격기 98대의 융단폭격이 왜관 일대에서 실시됐다. 이날 11시 58분부터 26분간 400~900Kg 폭탄 960t을 투하했다. 그 결과 북한 측 보급부대에 큰 손실을 줄 수 있었으며, 포로 신문 결과 적의 사기는 융단폭격을 계기로 한풀 꺾였다는 진술을 들을 수 있었다.


지게 부대(6.25전쟁 당시 죽음의 사선을 넘어 674 고지 탈환 작전을 지원한 민간보급대의 이야기)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사상자가 늘어나면서 보급품 수송에 병력을 투입할 형편이 아니었다. 칠곡지역의 험준한 산악 지형도 부담이었다. 결국 산등성이 고지까지 탄약과 식량을 나르고 시체와 부상자를 부대로 운반하기 위해서는 민간인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이렇게 동원된 사람들을 민간보급대, 노무자라고 불렀다. 총 대신 지게를 메고 천장을 누빈다고 해서 '지게 부대'라고도 했다. 특히 그들은 철모는커녕 맨 등짝에 지게를 지고 흰색 무명바지 차림이었다. 이 때문에 적군은 눈에 잘 띄는 흰색 옷차림의 보급 대원을 타깃으로 삼기도 했다. 국제 연합군은 노무자들이 짊어지는 지게가 영어 알파벳 'A'와 닮은 꼴이라 하여 그들을 'A-Frame Army'로 불렀다고 한다.



한 참전용사의 증언 中 형제의 비극

이튿날 아침, 부대가 다시 진격하여 고지를 되찾았을 때, 서울 출신의 한 학도병이 적의 한 시신 앞에서 오열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피란 내려오느라 같이 오지 못한 동생이라고 했다.서울에 남아 있던 동생은 인민군에게 징발되어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칠흑의 어둠 속에서 형과 동생은 서로를 찌르고 쏘았던 것이다.


철모야, 너는 기억하니?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 들어서면 커다란 철모 하나가 중앙 홀에 놓여 있다. 철모를 향해 쏟아질 듯한 탄피는 끔찍한 55일 동안의 다부동 전투를 상징한다. 로비를 지나 ‘호국전시관’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배경과 전개, 어쩔 수 없이 왜관철교를 폭파해야만 했던 사정, 다부동 전투와 인천상륙 작전, 전쟁에 나선 청년과 어린 학도병들의 용기 있는 결단,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전협정에 이르는 과정이 차례로 설명돼 있다.

‘전투체험관’은 1950년대로 돌아가 전쟁의 기운이 우리 사회를 뒤덮었을 때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꾸며진 체험식 전시실이다. 폐허가 된 마을을 경험하고, 군복을 입고 훈련소에 입소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고지를 사수하는 사격 게임은 재미있지만, 그 의미를 생각할 때 서글프기도 하다. 이런 관람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려는 걸까. 희망의 연날리기 프로그램이 전시실 내 마련돼있어,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두루 느낄 수 있다.

베트남 전쟁은 알아도, ‘다부동 전투’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다는 사람이 많다. 칠곡 ‘다부동 전투’에서 만약 우리가 졌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수많은 ‘최승갑’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을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을 방문하면 알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정된 달이다. 난세 때마다 애국애족정신으로 나라를 지킨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고,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장병들과 순국선열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또 6.25전쟁으로 나라를 위해 싸운 참전용사께 감사하고, 서해를 지켰던 영웅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며, 대한민국의 오늘을 지켜준 이들의 숭고함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달이 되자!   자료 칠곡문화원 참조

♤ 의병의 날(6월 1일) ♤ 현충일(6월 6일) ♤ 6.25전쟁(1950년 6월 25일)
♤ 제1연평해전(1999년 6월 15일) ♤ 제2연평해전(2020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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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