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광을 지키는 소시민들의 민가 정원

이 글은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수목원이 함께 찾은 한국의 민가 정원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가문의 영광을 지키는 소시민들의 민가 정원

가문의 영광을 지키는 소시민들의 민가 정원 정원은 주택을 들여다보기 좋은 창이다. 주택을 둘러싼 외부공간에 위치해 담 바깥의 계절과 조우하며 온갖 시선들을 정원에 불러 모은다. 정원 주인들은 상화객(賞花客)들의 부러움을 은근히 즐기며 창밖으로 자신만의 무릉도원을 바라본다. 이는 집을 사이에 두고 꾸는 서로 다른 꿈이다. 이 글은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수목원이 함께 찾은 한국의 민가 정원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자연에 순응한 사유의 공간, 우리의 민가 정원

민가 정원에 들어서면 먼저 전통가옥이 주는 동양 특유의 매력에 반한다. 가옥을 받쳐주는 정원의 그윽한 분위기에 정교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이 더해져 평온함까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원은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을 담고 있으며 돌 한 개, 풀 한 포기에도 주인의 의도와 고운 뜻이 담겨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가꾼 정원은 대륙의 영향을 받아 열도에 정원술을 넘겨주는 가교역할 속에서도 독창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다. 동양의 사유(思惟)적 정원 형태를 고수하면서도 자연에 순응해 인공적 기교를 부리지 않고 유교와 만나면서 집안에서는 주가 아닌 종이 된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의 축경식 정원이 아니라 단순미를 지닌 자연풍경식에 가깝다.


그동안 우리는 궁궐의 정원은 익숙하게 보아왔다. 민가 정원은 용어조차 생경하다. 민가라는 용어는 백성의 집으로 궁궐, 관아, 사찰, 향교 등 공공건축과 구분되는 사적인 건축을 말하며 넓은 의미에서 상류주택인 궁집과 제택, 중류주택, 서민주택을 포함한다. 민가 정원은 이들에 딸린 정원을 말한다.


우리가 관심을 소홀히 한 세월에 민가 정원은 참 많이도 변했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겪어오면서 집안 어른이 꾸민 정원은 후대에 와서 생활양식과 함께 변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세계유산과 관련된 ‘플로렌스 헌장’에서도 시대에 따른 정원의 변화를 인정하고 있다. 먼저 경상도에 남아있는 민가 정원을 통해 우리 선조들을 만나볼 차례다. 우리가 돌아본 경상도 민가 정원은 경치가 아름다운 산이나 숲을 등지고 집터의 구릉을 그대로 경사지로 받아들여 집성촌을 유지하는 소위 양반가와 분가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가문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강했으며 정원도 그 모습을 잃지 않게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경주 최부자댁

경주 최부자댁은 교동마을의 안쪽에 자리하여 신라시대부터 신림으로 여겨온 계림과 맞닿아 있다. 사랑채 누마루 앞에는 1930~1940년경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물이 장식역할을 하고 건축선을 따라 직선으로 돌출된 화단이 누마루에서 객들의 감상을 돕는다. 이 화단에는 주인의 취향에 따라 산수유와 명자나무, 감나무, 석류나무 등이 자라고 선대가 심었다는 유카도 보인다. 안마당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붉은벽돌로 된 굴뚝과 장독대가 자리 잡고 있다.

01.다양한 수목이 식재되어 있는 경주 최부자댁 정원


일반적으로 집안의 사당은 안채 북동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현을 모신 경주향교를 의식하여 서북쪽에 위치한 것도 특이하다. 향교 앞의 좌우에는 나무와 돌이 한쌍을 이루는 독특한 식재방식으로 대칭을 이룬다. 최기영은 이 집의 나무가 훼손되는 날이면 우리 집 운세가 끝난다고 자손들에게 가르쳐 또 다른 평천장고사로 유명하다.


함양 일두고택

함양 일두고택은 대문채를 지나 사랑마당에 진입하면 사랑채와 담장을 통해 안마당을 비롯한 개인공간으로 분할된다. 다른 민가에 비해 사랑채의 역할과 영역이 확장된 점이 특이하다. 사랑채 누마루 앞에 조성된 삼봉형 석가산(石假山)은 주산을 높이고 좌우 봉우리가 낮게 조성된 ‘凸’자 형태다. 석가산 옆에는 나무높이 약 7m의 휘어진 소나무가 있으며 그 아래 산철쭉, 회양목 등의 관목과 맥문동, 범부채 등 초본류를 심었다. 안마당에는 기와를 쌓아 만든 굴뚝과 우물이 위치한다. 우물 주변으로 석류나무, 산철쭉이 반긴다. 과거 농경중심의 가족공동체가 변화되면서 마당은 기능적으로 분화되고 정원도 공간 단위가 변화하고 주인의 취향에 따라 석물과 같은 장식적 요소가 더해지고 있다.


함양 정천상고가

함양 정천상고가는 소나무와 너른 평석으로 바깥마당을 구성하고 있으며, 서측의 대문채와 북측의 대문채가 토석담으로 연결되어 가옥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남측 담장 가로 석류나무, 옥매 등이 식재되어 있다. 안채와 행랑채가 ‘ㄱ’자형으로 공유하는 마당은 잔디로 포장하고 디딤돌을 두었다. 공간의 중심을 비우고, 동측과 남측 담장 가에 화단을 꾸며 독립적이고 위계적인 분할이 가능했다.


봉화 소강고택

봉화 소강고택은 사랑채 전면에 3주의 소나무가 화단에 분재의 형태로 식재되어 있다. 남측 담장을 따라 소나무, 불두화, 앵도나무, 꽃대추나무를 심고 주변에 경계석을 쌓아 화단을 조성했다. 독특한 형상의 석물과 분재, 디딤돌을 두고 사랑마당 남측에는 소나무를 중심으로 무궁화, 불두화, 모란을 심었다. 안마당에는 사랑채와 연결된 협문과 담장, 가옥 외곽의 담장을 경계로 소나무와 옥매, 불두화, 살구나무 등을 식재하였으며, 안채 북측 담장 사이의 협소한 공간에는 앵도나무, 자두나무, 무궁화, 병꽃나무 등을 줄지어 심고 기왓장으로 경계를 삼았다. 안채 서측에는 절구와 조각돌로 이루어진 작은 화계에 소나무를 심었다. 화단 북측 장독대 주변에는 소나무, 장독대의 경계에는 복사나무, 감나무, 자두나무 등을 담장 주변에 심었다.


02.장식적 요소가 돋보이는 함양 일두고택 03.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한 정원 양식을 보여주는 함양 정천상고가
04.소나무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나무로 꾸민 봉화 소강고택



오늘의 민가 정원은 우리가 상상했던 전통이라는 단어와 조금은 거리가 느껴질 수 있다. 지금 그곳의 주인은 과거 문화와 예술을 하나로 만들었던 명망 있는 대가들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인 후손이 현대사회에서 묵묵히 유훈을 지켜가고 있다는 것을 한번쯤 되짚어 봐야 한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한국성, 전통 정원의 유전자는 바로 민가 정원의 화단에서 지금도 자라고 꽃피우고 있다. 출처 / 이원호(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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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