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각스님을 지지하는 이유
한국불교를 비판한 현각스님의 글에 대한 찬반 양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산 천장사 주지 허정스님이 "현각스님의 비판이 종단 발전의 논의로 이어지길 바란다"며 "침체된 불교를 살리기 위한 대안은 직선제"라는 취지의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스님의 글을 옮겨 싣는다. 편집자주.
현각스님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절집안을 넘어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현각스님의 충고는 그동안 직선제를 주장하며 ‘승가는 부자여도 스님은 가난해야한다’는 나의 문제의식과 같은 것이기에 동지의식을 느낀다. 그런데 이렇게 반갑고 당연한 비판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그렇치 않은 분들도 많은 모양이다. 현각스님의 발언이 불쾌함을 넘어 오만하고 배은망덕이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일단은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분들을 반박하기에 앞서 다양한 주장이 나오는 것에 열열히 환영 한다. 그동안 불교계에 던지는 비판이 스펀지 마냥 흡수되거나 종단이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현각스님의 비판이 지대방에서 차를 마시며 차담꺼리로 이어지는 것을 넘어서 종단적으로 검토되고 학문적으로 연구되어 종단발전의 논의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실 한국불교는 이것 말고도 치열한 논의를 필요로 하는 주제들이 너무 많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에서 ‘승가’를 ‘스님들께’로 바꾸는 사상적인 문제나 총무원장 선출을 직선제로 바꾸는 제도적인 문제까지 이야기 나누어야 할 것이 태산처럼 쌓여있다. 종단은 출가자수가 부족해서 청년들을 출가시키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정작 출가하면 간화선 수행자 아니면 선원 방부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다른 수행법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을 갈 곳이 없게 만들고 있다. 부처님법에 근거한 교리와 수행법이 선종어록에 근거한 교리와 수행법이 예민하게 대립하고 있는데도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어 치열하게 토론되지 못하고 개인간의 싸움이 되도록 방치하고 있다. 부익부빈익빈의 승가구조 속에서 각자도생하기 바쁜 종단의 구성원들에게는 이렇게 교리간의 대립이나 총무원장 선거법 논의는 애초에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현각스님이 비판을 종단을 돌아보는 기회로 받아들여 우리 승가의 문제점을 논의하고 점검하는 아량과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현각스님의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각스님은 이전에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관광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하였고 승가안에서 남녀차별을 강하게 질타하였고 외국인스님들이 조계종을 장식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도 강하게 비판해 해왔다. 현각스님의 이러한 비판은 “이미 오래전에 이뤄졌어야 할 현재 종단의 상태에 대해 토론문화”를 자극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종단발전의 위한 고구정녕한 충고를 하버드를 나온 외국인 스타스님의 배부른 신세타령이라고 왜곡해서는 안된다. 이제까지 나타난 현각스님의 구체적인 비판은 다음과 같다.
①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고, 재가자의 차별, 남녀차별로 나타나는 유교적 관습
② 외국승려를 종단의 장식품으로 이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외국인 출가자에 대한 언어장벽과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수수방관
③ 수행보다는 돈이 우선하는 기복祈福의 장으로 변질 시킴
첫째 어른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 승가와 재가의 차별, 비구비구니차별로 대표되는 승가안에 스며든 유교적 관습은 나 같은 한국사람도 참기 힘든 악습이다. 이런 것을 우리의 전통이니 너희도 받아들여라 하는 것이 전혀 불교적이지 않다. 이것은 생각하고 토론하는 힘을 키워주지 못하고 획일적인 교육을 시켜온 국가의 책임이기도 한데 이렇게 획일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출가하여 보수적인 절집에 들어오면 증세가 더욱 심해진다. 승가의 권위적인 상하관계로 인하여 평등한 토론과 대화가 실종되고 어른과 문중 눈치보기와 줄서기가 대신하게 된다. 이것을 현각스님은 ‘과도한 순응은 한국 승려의 독특한 질병’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러한 권의주의, 계파주의, 남녀차별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종단을 민주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 요즘 논의되고 있는 총무원장 직선제이다. 종단은 말로만 남녀평등과 권위주의 타파를 말하지 말고 직선제를 실현하여 비구니스님들에게도 투표권을 줌으로서 남녀평등과 탈권위주의를 증명해 보여야한다.
둘째 외국승려는 장식품으로 사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언어장벽과 문화차이로 어렵게 만드는 제도와 배타적인 민족주의
우리는 같은 외국인이라도 피부색에 따라 출신 국가에 따라 심하게 차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애국이라는 미명하에 승가에서는 애종이라는 미명하에 우리 편과 우리편이 아닌 집단을 나누어 편을 가르는 집단이기주의로 나타난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스님이 되려면 한국어 능력시험 1급을 취득해야 하고 한국어로 출제되는 승가고시를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며 참선 수행한 외국인이 설사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더라도 승가를 이끌어갈 선지식으로 모시지 않는다. 낯선 타국에 와서 각자도생하는 외국인스님들을 종단은 장식용으로 이용할 뿐이다. 이것은 법이냐 비법이냐를 따지는 기준에서 이익과 손해라는 기준으로 삶의 가치가 옮겨간 때문이며 사방승가정신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승가가 더 이상 국민의 오아시스가 되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비극이다.
셋째 수행센타를 수행보다는 돈이 우선하는 기복祈福의 장으로 변질 시킴
현각스님은 기복불교를 질타한 것이 아니라 화계사 국제선원에 출가수행하러 온 수행자들에게 템플스테이 비용 만큼의 숙박비를 받는 상업화를 비판한 것이다. 이 점을 놓치고 마치 기복불교 전체를 비판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부처님은 헤어진 아내를 그리워 하는 난다존자에게 공부를 하면 아내보다 더 이쁜 천상의 여인들을 만나게 된다고 말하여 난다에게 성취동기를 심어주었다.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는 기복은 비판할 것이 아니라 단계별로 이용할 것이다. 대학입시 기도하러 절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불자가 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부처님조차 ‘생로병사’ 때문에 출가한 것이 아니라 ‘노병사’ 때문에 출가했다는 사문유관의 가르침은 불교가 기복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를 통해서 그리고 직선제 주장하는 분들과 현각스님과 같은 분들의 비판을 통해서 조계종의 장단점이 드러나고 있다. 그 비판받는 요소들을 개선하고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자 종단은 쇄신위원회까지 만들었지만 원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는 들러리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판을 해도 변화가 없으므로 더 강력한 비판을 하게 되지만 대안 없는 비판, 실현 가능하지 않은 비판은 민중들에게 패배감을 더욱 공고히 해주고 있다.
대안을 내 놓으라면 단연 ‘직선제’이다. 기득권의 완고한 콘크리트벽에 실눈 같은 균열을 생기게하려면, 리더가 승가대중을 위한 행정을 하게 하려면, 승가의 구성원이 스스로 주인이 되려면 직선제를 실현해야 한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분들과 직선제를 반대하는 분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그들의 논리를 펴며 현각스님의 충고를 애써 외면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논리가 점점 옹색해지고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어간다는 것이다. 직선제는 시대의 흐름이자 요청이자 상식이다. 대중공사에서 총무원장 직선제 요구가 빗발치자 종회에서 ‘직선제특위’라는 것을 만들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직선특위는 설문조사 공청회등 할 일이 태산인데 겨우 승랍 10년이상 비구비구니에게 선거권을 주자는 것이 합의한 상태다. 모든 비구비구니스님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나온 결과를 들이 밀어도 종회통과가 될까말까 한데 그들은 처음에 1달에 2~3번 회의하기로 한 것을 8월에는 휴가철이라 1달에 1번 회의를 하겠다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단순한 직선제가 아니다. 침체된 불교를 살리는 직선제다. ‘승가는 부자여도 스님은 가난한, 사회의 희망이 되는 공동체’를 만드는 직선제이다. 공교롭게도 현각스님의 충고 내용은 직선제를 염원하는 우리의 고민과 일치한다. 이것이 우리가 현각스님의 충고를 단순한 시비분별이 아니라 파사현정의 칼날이라고 보는 이유이며 현각스님은 “종단을 개혁하고 대화와 토론문화를 살리는 희망이 되라”는 은사스님의 유지를 받들고 있는 것이다.
허정스님_서산 천장사 주지
기사출처 : 불교포커스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