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종회

立宗会(りっしゅうえ)

  立宗会とは、末法の御本仏日蓮大聖人が、宗旨を建立し、立宗を宣言あそばされた日を記念してご報恩申し上げる法要です。
  大聖人は御出家の後、鎌倉、比叡、三井、高野、南都六宗を遊学して一切の宗旨を研鑽し、経教の根源を究めて諸宗の誑惑と災難の本源を検索されました。そして南無妙法蓮華経(なんみょうほうれんげきょう)という本法こそ、仏法の内証に導く唯一最高の教えであるとの自覚もって、建長5年(1253年)春、御年32才の時、故郷の安房へと帰られ、師の道善房のもとで宗旨建立のための深い思索を重ねられました。
  3月28日、師の道善房の持仏堂において、師や父母、兄弟、浄円房をはじめとする法兄など順縁の人々に対し、妙法の正義をもって禅・念仏などの邪義を破折され、法界に内証の題目を開闡されました。
  さらに大聖人は思惟を続けられ、1ヵ月後の4月28日未明、法華経に予証された三類の強敵に立ち向かうべき一大決意のもと、ひとり清澄山上旭ヵ森に立ち、遠く太平洋の彼方にさし昇る日の出を待たれました。やがて水平線上にその姿があらわれると、起立合掌されていた大聖人の口から「南無妙法蓮華経、南無妙法蓮華経」と、末法万年の闇を照す下種の題目が、おごそかに熱誠をこめて力強く唱え始められたのです。そして太陽をはじめとする全宇宙の生命に、一切衆生救済を始む宣言をなされました。この題目こそ今まで誰人も唱え出すことのなかった自行化他にわたる題目であり、外用弘通の開示であったのです。


  この日の午の刻(正午)、日蓮大聖人は清澄寺諸仏坊の持仏堂において、初めて大衆に向かって妙法弘教の法輪を転ぜられ、広宣流布への第一歩をしるされました。大聖人のこの説法を聞くや、安房東条郷の地頭で、熱心な念仏の信者であった東条左衛門尉景信は、烈火のごとくに怒り狂い、大聖人の身に危害を加えんとしました。以来、大聖人は大難小難数知れざる折伏弘教の生涯に身を投ぜられ、三障四魔必ず競ひ起こると予証された法華経を身命を賭して身読あそばされたのです。
  大聖人の立宗の御文に3月、4月の両度のお示しがあるのはこの内証・外用の両意によります。


입종회 (立宗會)

 

 입종회란 말법(末法)의 본불(本佛)님이신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님께서  종지(宗旨)를 건립하시고 입종(立宗)을 선언하신 날을 기념하여 보은(報恩) 드리는 법요입니다.


대성인(大聖人)님은 출가(出家)를 하신 후, 가마쿠라(鎌倉), 히에이(比叡)ㆍ 미이(三井)ㆍ고야(高野), 남도6종(南都6宗)을 유학(遊學)하시어 일체의 종지를 연찬(硏鑽)하시고, 경교(經敎)의 근원을 깊이 연구하시어 모든 종교의 광혹(誑惑)과 재난(災難)의 본원을 전부 찾아 공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南無妙法蓮華經라는 본법이야말로, 불법의 내증(內証)에 따른 유일(唯一) 최고의 가르침 이라는 자각을 하시고, 겐쵸(建長) 5년 (1253년) 봄, 32세이신 해에 고향인 아와(安房)로 돌아가시어, 스승이신 도젠보(道善房) 아래에서 종지(宗旨)건립을 위한 깊은 사색(思索)을 거듭하셨습니다.
3월 28일, 스승이신 도젠보의 지불당(持佛堂)에서 스승과 부모, 형제 그리고 죠엔보(淨円房)를 비롯한 법형(法兄) 등 순연(順緣)의 사람들에 대하여, 묘법의 정의(正義)를 가지고 선(禪)ㆍ염불(念佛) 등의 사의(邪義)를 파절하시어 법계에 내증(內証)의 제목(題目)을 선언하셨습니다.
대성인님은 더욱 더 사색을 계속하시어, 1개월 후인 4월 28일 어둠이 밝아오기 전, 법화경에 예증된 삼류(三類)의 강적에 맞서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는 일대 결의를 가지고, 홀로 세이쵸산(淸澄山) 정상 카사가모리에 서시어, 멀리 태평양너머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기다리셨습니다. 이윽고 수평선위로 그 모습이 나타날 때, 기립하시어 합장하고 계시던 대성인님의 입으로부터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말법 만년의 어둠을 비추는 하종(下種)의 제목을 열정을 담아 엄숙하고도 힘차게 부르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태양을 비롯한 전우주의 생명에 대해서 일체중생 구제를 시작하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이 제목이야말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부를 수 없었던 자행화타에 걸치는 제목이며, 외용의 홍통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이날 정오의 시각, 니치렌대성인님은 세이쵸지 제불방의 지불당에서 처음으로 대중을 향하여 묘법홍교(妙法弘敎)의 법륜을 굴리시어 광선유포에 대한 첫걸음을 내디디셨습니다. 대성인님의 설법을 듣고 있던 아와(安房)의 도죠향(東條鄕)의 지두이며, 열렬한 염불 신자였던 도죠 사에몬노죠 가게노부(東條左衛門尉景信)는 열화와 같이 화를 내며 대성인님 몸에 위해를 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이래 대성인님은 대난(大難)과 소난(小難)을 셀 수 없는 절복홍교(折伏弘敎)의 생애에 몸을 던지시어, 삼장사마(三障四魔) 반드시 다투어 일어난다고 예증된 법화경을 신명을 바쳐 몸으로 읽어 내셨던 것입니다.
대성인님 입종에 대한 어문에 3월과 4월 두 번으로 나타나 있는 것은 이 내증(內証)과 외용(外用)의 두 가지 뜻에 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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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