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華經題目抄(법화경제목초)
[本文(본문)]
[이 須彌山(수미산)에 바늘을 세우고, 저 須彌山(수미산)에서 大風(대풍)이 강하게 부는 날, 실을 건네 보내는데 바늘 구멍에 이르러 실 끝이 들어가는 것보다도, 法華經(법화경)의 題目(제목)을 만나기는 어렵도다] <전 942>
[通釋(통석)] [이쪽의 須彌山(수미산)에 바늘을 세우고, 저편의 須彌山(수미산)에서 큰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에 실을 건네 보내는데 그것이 바늘의 구멍에 닿아서 실의 끝이<바늘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法華經(법화경)의 題目(제목)을 만나시게 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拜讀(배독)의 참고]
法華經(법화경)의 題目(제목) 本尊(본존)님을 만난다는 것의 어려움은 「一眼(일안)의 거북과 浮木(부목)」의 예 등에서 日蓮大聖人(니치렌대성인)님이 상세하게 御指南(어지남)하시고 있습니다만, 이 일절도 本尊(본존)님을 受持(수지)하는 것이 얼마나 難事中(난사중)의 難事(난사)인가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人間(인간)의 一生(일생)은 갖가지의 일에 부딪침으로써 꾸며지게 됩니다. 그러나 올바른 佛法(불법)을 만난다는 것이 극히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수긍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三世(삼세)에 걸친 生命觀(생명관)에서 볼 때, 人間(인간)으로서 生(생)을 받는다는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인데 가령 人間(인간) 으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시대에 正法(정법)이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문제입니다. 또 正法(정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보고 듣는 기회를 얻지 못한채로 一生(일생)을 끝마치고 만다는 예는 수를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信仰(신앙)에 힘쓰는 우리들은 자칫하면 아주 간단하게 本尊(본존)님을 만난듯이 생각하게 됩니다만 실은 그 만큼 확률이 적은, 말하자면 「한 번밖에 없는 기회」라고도 할 수 있는 만남이었던 것입니다. 今世(금세)에서의 本尊(본존)님과 만난 不可思議 (불가사의)함을 알게 되었을 때, 지금의 自身(자신)의 信心(신심)의 자세를 재점검해야겠다는 마음이 솟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稀有(희유)<드물게 있는>한 人生(인생)의 하루 하루를 열어 나갈 수 있는 自身(자신)의 입장을 다시금 확인할 때 지금의 이 一瞬(일순)의 信仰(신앙)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는 마음이 가슴속에 용솟음치게 된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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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