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해석 7

妙一女殿答書(묘이치뇨전답서)


[本文(본문)]

[女人(여인)의 몸으로서 자주 이와 같이 法門(법문)을 물으시는 것은 참으로 예사가 아니로다. 敎主釋尊 (교주석존)이 그대의 몸에 바꾸어 들어가셨음인가, 龍女(용녀)의 뒤를 이으셨는지 또한 橋曇彌女(교담미녀)가 두 번 오심일까, 알 수 없도다, 그대는 당장에 五障(오장) 의 구름이 걷혀서 寂光(적광)覺月(각월)을 바라다 보시라] <1262>


[通解(통해)]

 [女人(여인)의 몸으로서 자주 이와 같이 法門(법문)을 질문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예사가 아니로다. 敎主釋尊(교주석존)이 당신의 몸에 바꾸어서 들어온 것이 아니겠는가, 龍女 (용녀)의 뒤를 이을 것인가, 또한 釋尊(석존)의 이모인 橋曇彌女(교담미녀)가 다시 태어남인지 그것은 모르지만, 당신은 즉시 五障(오장)의 구름이 걷혀서 寂光(적광)覺月(각월)을 바라다 볼 수 있을 것이다]


[拜讀(배독)의 안내]

敎學(교학)에 힘쓰는 妙一女(묘이치뇨)信心(신심)을 칭찬하시어 幸福(행복)人生(인생)을 보내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말씀하신 御文(어문)이다. 敎學(교학)에 힘쓰는것이 어째서 중요한 것인가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敎學(교학)에 힘쓰는것 자체속에 信心(신심)의 약동이 있으며 성장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行學(행학)속에 佛法(불법)은 있는 것이다. 깊은 뜻을 알려고 하는 겸허한 求道(구도)의 자세, 거기에는 自身(자신)過信(과신)하는 傲慢(오만)은 없으며 그 生命(생명)에는 淸流(청류)가 넘치고 있다.

반대로 敎學(교학)에서 멀어져 가고 있을 때 成佛(성불)을 지향하는 아름다운 입김은 사라지고 惰性(타성)에 뒤덮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生命(생명)에는 低迷(저미)가 있다.

日蓮大聖人(니치렌대성인)님의 정신은 御書(어서) 求道(구도)一念(일념)을 가지고 육박하여 身讀(신독)함으로써 비로소 가슴속에 실감을 가지고 울려오는 것이다. 나날의 敎學(교학)에 매달리는 자세는 그대로 信心(신심)의 기준인 것이며 生命(생명)充實度(충실도)를 재는 척도인 것이다. 御文(어문)에서는 敎學(교학)에 힘쓰는 信心(신심)으로 여성특유의 生命(생명)의 약함 이나 탁함이 消滅(소멸)되어 成佛(성불)境涯(경애)를 즐길수가 있다고 격려하시고 있다. 敎學(교학)이란 것은 소위 말하는 탁상위의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 (). () 三業(삼업)으로 御書(어서)를 공부하는데 본뜻이 있다. 끊임 없이 本佛(본불)님의 마음에 알맞은 敎學(교학)의 실천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本文(본문)]

[무릇 信心(신심)이라고 하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을 아끼듯이, 남편이 아내를 위해 목숨을 버리듯이, 어버이가 자식을 버리지 않듯이, 자식이 어머니로부터 떨어지지 않듯이, 法華經(법화경). 釋迦(석가). 多寶(다보) 十方(시방)諸佛菩薩(제불보살) 諸天善神(제천선신) 등을 信奉(신봉)하고 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라고 奉唱(봉창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