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의 세계는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조선 시대 불교 사찰의 명부전은 그 상상을 구체적 공간으로 옮겨 놓은 곳으로, 죽음과 심판, 구원의 의미를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 장소였다.
죽음과 구원의 안내자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조선 시대 불교 사찰의 명부전은 그 상상을 구체적 공간으로 옮겨 놓은 곳으로, 죽음과 심판, 구원의 의미를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 장소였다.
명부전 전경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화제를 모으면서 한국 전통문화에도 새로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존재가 바로 저승사자다. 동아시아에서 저승사자는 죽은 이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안내하는 보편적인 존재이다. 그렇다면 저승사자를 따라간 영혼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은 어디일까? 죽음 너머의 세계로 향하는 그 첫 관문을 시각적이고 공간적으로 구현해 놓은 곳이 바로 조선 시대 불교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이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으며 백성들은 참혹한 현실 속에서 수많은 주검을 목격했고 죽음과 사후 세계의 불안감을 깊이 체험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 망자의 업을 심판하는 시왕 그리고 그 권속들이 봉안된 명부전은 백성들에게 죽음의 두려움을 달래고 망자를 저세상으로 편안히 보내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명부전은 단순한 전각이 아니라 죽음과 구원이라는 불교적 세계관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체험하게 하는 위무의 공간이었다.
창녕 관룡사의 명부전은 바로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양란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652년에 조성되었다.1)현재 남아 있는 존상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한 삼존불, 저승에서 심판을 맡는 시왕상 열 존, 귀왕과 판관 각 한 존 그리고 인왕상 두 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명부전에는 사자상과 동자상도 함께 모셔지지만, 관룡사 명부전의 경우에는 이 두 상은 전하지 않는다.
관룡사 명부전 불상들은 조각승 응혜(應惠)와 8명의 승려 장인들이 힘을 모아 완성한 작품이다. 조선 후기에는 승려 장인들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며 활동했는데, 응혜는 그중에서도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를 무대로 삼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스승 청헌과 승일의 계보를 이어받은 장인으로, 관룡사의 지장보살상에서도 그 계보적 전통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수인의 차이다. 이 시기의 지장보살상은 오른손을 가슴께로 들어 올린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관룡사의 지장보살상은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린 독특한 결인을 맺고 있어 흥미롭다. 이 차이는 단순한 손 모양의 변형이 아니라 응혜가 계승한 전통과 동시에 자신만의 조각적 개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흔적이다.
창녕 관룡사 명부전 지장보살삼존상 / 명부전 내부 향좌측 상세 Ⓒ경상남도 도청
지장보살은 명부전 안 중앙에 삭발한 승려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그 좌우에는 문관 복식의 무독귀왕과 두 손을 합장한 채 서 있는 도명존자가 협시하고 있다. 열 존의 시왕은 면류관이나 원유관을 쓰고 홀을 들거나 무릎 위에 명부를 펼친 채 앉아 망자를 심판한다. 특히 제5 염라대왕은 관모 위에 금강경을 얹어 다른 시왕들과 차별화된 위상을 보여준다. (그림 02) 양관을 쓴 귀왕은 조복을 걸치고 당당한 기세를 드러내며, 판관은 사모와 조복 차림으로 관료의 위엄을 풍기고 있다. 인왕은 짧은 치마에 천의를 두른 채 전각 가장자리에 서서 시왕의 명을 기다린다. (그림 03) 이렇게 배치된 불상들은 저마다의 역할과 상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명부전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전각을 넘어 사후 세계의 법정과도 같은 장면을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관룡사 명부전의 존상들은 각각의 역할과 의미가 또렷하게 드러나는 신앙적 장치였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건져내는 자비의 화신으로, 시왕은 망자의 삶과 업을 심판하는 재판관으로서 저승 세계의 질서를 구현했다. 판관과 귀왕, 인왕 역시 저승의 위계와 권위를 상징하며, 이 모든 존상들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죽음을 단순히 두려움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심판과 구원의 두 시선 속에서 사유하고 성찰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영화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저승사자는 사실 동아시아가 오래도록 품어온 사후 세계 상상의 일부다. 관룡사 명부전의 불상들은 그러한 상상이 조선 시대 불교 미술 속에 어떻게 구현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전쟁과 불안 속에서 구원을 찾던 옛 사람들의 마음이 불상마다 깃들어 있고, 그 울림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닿아 있다. 죽음 너머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오래된 물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명부전은 그 물음을 사색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묵묵히 남아 있다. 출처: 장은영(국가유산청 부산항 문화유산 감 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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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