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능에 행차하시네

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하는 것을 행행(行幸)이라고 하는데, 이 의미를 두고 정조는 1779년 8월 효종의 영릉(寧陵)과 세종의 영릉(英陵)을 뵈러 여주로 행차하는 길에 이렇게 말했다.

임금님 능에 행차하시네


조선시대 국왕이 선대왕이나 왕비의 무덤에 참배하러 가는 것을 능행(陵幸)이라고 한다. 단순히 능에 간다는 뜻이라면 行(갈 행) 자를 쓰면 될 것을 왜 幸(다행 행) 자를 쓰는 것일까. 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하는 것을 행행(行幸)이라고 하는데, 이 의미를 두고 정조는 1779년 8월 효종의 영릉(寧陵)과 세종의 영릉(英陵)을 뵈러 여주로 행차하는 길에 이렇게 말했다.


                                                《화성능행도병》 속 〈환어행렬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행행(行幸)이라는 것은 백성이 임금의 행차가 오는 것을 행복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임금의 행차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백성에게 미치는 은택이 있으므로 백성들이 다 이것을 행복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제 내 행차가 이곳에 왔으니, 저 백성이 어찌 바라는 뜻이 없겠는가? 옛사람이 이른바 행행의 의의를 실천한 뒤에야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였으니, 경들은 각각 백성을 편리하게 하고 폐단을 바로잡을 방책을 아뢰라.1)
1) 『정조실록』 8권, 정조 3년(1779) 8월 3일 갑인 1번째 기사.


임금이 행차하는 것은 행차가 닿는 곳의 백성을 행복하게 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임금의 행차는 말과 가마, 수레 등 탈것, 왕의 위엄과 권위를 보여주는 의장물,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 왕을 호위하는 군사들과 행렬을 따르는 관료 등 수천 명에 이르는 인원이 동원되는 대규모 행렬이다. 이렇게 큰 행렬이 움직이려면 지나는 곳마다 백성이 불편과 부담을 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임금의 행차가 백성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임금이 행차가 지나는 길목 백성들의 고충을 살피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행차의 목적은 선왕의 능을 살피고 의례를 거행함으로써 현재 국왕인 자신의 정통성을 굳건히 하는 것이겠지만, 왕이 궁궐을 나와 목적지인 능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에서 백성들을 만나 그들의 어려움을 살펴 덜어주고 그들을 위로하는 것 역시 능행의 큰 목적이었다.

1779년 8월 3일 정조는 여주 영녕릉으로 향하는 능행길에 올랐다. 정조는 선원전에 모신 역대 국왕의 어진에 인사를 드리고 창덕궁을 나서, 흥인지문을 거쳐 관왕묘에 배알하고 광진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한강을 건너 남한산성 행궁에 도착했다. 광진에서는 백성들이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담장처럼 늘어서 임금의 행차를 구경했는데, 길을 끼고 구경하는 서울 백성들을 막지 말라고 명하였다. 그다음 날 행차가 이천에 이르자 백성들이 임금을 뵈러 나온 것이 산과 들에 가득 찰 정도였는데, 정조가 거가를 멈추고 묻게 하니 가까운 데 백성뿐 아니라 경상, 전라, 충청도와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에서도 올라온 백성이 많다 하였다. 한 노인이 길가에서 수박 한 소반을 받들어 임금에게 바치려 하다가 위졸에게 막히기도 했다. 정조는 백성의 뜻을 알 만하나 받도록 허락하면 폐단이 있을 것이라며 받지 못하게 했다.

이번 연로(輦路)에서 구경하는 백성이 많은 것은 처음 본다 하겠다. 저 많이 모인 자가 다 내 백성인데, 어떻게 하면 한 사람도 안정할 바를 얻지 못하는 한탄이 없게 하겠는가? 한 사람이라도 얻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밀어서 도랑 속에 넣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2)
2)『정조실록』 8권, 정조 3년(1779) 8월 6일 정사 1번째 기사.

정조는 광주, 이천, 여주 백성의 사역과 세금을 면해 주는 혜택을 내렸고, 과거시험도 시행하였다. 암행어사의 보고를 받아 민폐가 많은 고을의 수령을 파직하게 했으며, 특히 노고가 많은 남한산성 백성의 빚돈을 탕감했다.
능행길에 남한산성의 군사시설을 꼼꼼히 점검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화성능행도병》 속 〈환어행렬도>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아버지의 묘소인 현륭원을 다녀오는 길에서 어가행렬의 좌우로 백성들이 산과 들에 자유롭게 몰려나와 행차를 구경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조선이 건국된 1392년부터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세상을 떠난 1926년까지 535년 동안 총 939회, 연평균 1.76회의 능행이 있었다. 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 해 한두 번은 있었던 임금의 능행 행차는 백성이 국왕의 존재를 실감하는 이벤트로 먼 지방에서도 소원을 담아 찾아올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임금에게도 어가 행렬을 통해 능행로상에서 실제로 백성을 만나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해결해 주는 기회는 소중했을 것이다. 백성들에게 각종 의장물을 앞뒤로 늘여 세우고, 고위 관원들과 악대를 앞세워 호위하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다가오는 국왕의 행차는 평소엔 그 존재를 잘 느끼지 못했던 임금님과 국가의 존재를 눈앞에서 실감시켜 주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임금님은 조상의 묘소를 찾아가 참배하는 효를 몸소 실천하는 중이고 그 길에 백성의 행복도 챙겨 주는 것이다.  글. 이홍주(궁능유적본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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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