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등(法燈) 700년의 청류(淸流)

   法灯700年の清流

 

 日蓮正宗(にちれんしょうしゅう)は、建長5(1253)年4月28日に、日蓮大聖人(にちれんだいしょうにん)が“南無妙法蓮華経”の宗旨を建立されたことにはじまります。
日蓮大聖人は、多くの法難に遭いながらも、法華経(ほけきょう)の肝心である南無妙法蓮華経を弘め、弘安2(1279)年10月12日、信仰の根本である本門戒壇(ほんもんかいだん)の大御本尊(だいごほんぞん)を建立されました。その後、日興上人(にっこうしょうにん)を第2祖と定めて仏法の一切を付嘱し、同5年10月13日、61歳をもって入滅されました。
日蓮大聖人の入滅後、身延の地頭・波木井実長(はきりさねなが)が、仏法に違背する行為を重ねたため、日興上人は正応2(1289)年の春、本門戒壇の大御本尊をはじめ一切の重宝をお持ちして、門弟とともに身延を離れ、翌正応3年10月、南条時光殿の寄進により、富士上野の地に大石寺(たいせきじ)を建立しました。
以来700有余年、日蓮大聖人の仏法は、日蓮正宗総本山大石寺に正しく伝えられています。


-------------------- 일련정종에 대하여 ---------------------------------------


    법등(法燈) 700년의 청류(淸流)

 

 일련정종(日蓮正宗)은 1222년〔죠오(貞應) 원년(元年)〕 2월 16일 일본국에 출현하신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출가득도(出家得道)이래, 일체의 불법(佛法)의 연찬을 끝내시고, 1253년〔겐쵸(建長) 5년〕 4월 28일 32세 때, 구원본불(久遠本佛)의 근본의 법(法)인 南無妙法蓮華經의 깨달음에 의거한 종지(宗旨)를 확립선창(確立宣唱)하신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 후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은 가마쿠라(鎌倉)에서의 야습(夜襲), 다쓰노구치(龍之口)에서의 처형(處刑)과 두 번의 유죄 등 수많은 법난, 박해를 참고 견디면서 南無妙法蓮華經의 대법(大法)을 넓히시고, 또한 제자신도들을 육성하시어, 1279년〔고안(弘安) 2년〕 10월 12일, 전세계 일체의 사람들의 영원한 행복과 번영을 위한 본존(本尊)으로서 본문계단(本門戒壇)의 대어본존(大御本尊)을 건립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인 닛코상인(日興上人)을 제2조로 정하시어, 불법(佛法)의 일체의 오의(奧義)를 닛코상인(日興上人)에게 부촉(付囑)하시고, 1282년〔고안(弘安) 5년〕10월 13일에 안상(安祥)히 입멸(入滅)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닛코상인(日興上人)이 미노부산(身延山) 구온지(久遠寺)의 별당(別當)으로서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으로부터 부촉(付囑)을 받으신 미노부(身延)의 지두(地頭), 하기리 사네나가(波木井實長)가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 어입멸(御入滅) 후,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의 불법(佛法)에 위배하는 여러 가지 방법(謗法) 행위를 거듭했기 때문에 닛코상인(日興上人)은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의 정법(正法), 정의(正義)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1289년〔쇼오(正應) 2년〕봄, 본문계단의 대어본존(大御本尊)을 비롯해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의 일체의 중보(重寶)를 가지시고, 니치모쿠상인(日目上人) 등의 문제(門弟)와 함께 미노부산(身延山)을 떠나, 이듬해 1290년〔쇼오(正應) 3년〕 10월, 난죠도키미쓰(南條時光)님의 기진(寄進)과 외호(外護)아래 후지(富士)의 기슭인 우에노(上野) 땅에 다이세키지(大石寺)를 건립하셨습니다.
이래 700여년 구원(久遠) 이래의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의 불법은 일련정종(日蓮正宗) 총본산(總本山) 다이세키지(大石寺)에 엄연하게 올바르게 호지(護持), 전승(傳承)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이세키지(大石寺)는 이제야말로 전세계의 일련정종 신도가 갈앙(渴仰), 연모(戀慕)하여 참예하는 세계광포의 근본의 대도량(大道場)으로 되었습니다.


자료출처 : 일련정종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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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