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사 창건의 역사적 배경 군산(群山) 동국사(東國寺)는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한일합방.韓日合邦) 1년 전인 1909년 일본 승려(僧侶)선응불관(善應佛觀)스님에 의해 창건(創建)되어 일제 강점기 36년을 일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5년 8월15일 해방을 맞이하여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품으로 돌아온 뼈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리하여 대한제국(1897-1910순종,隆熙.3)과 일제 식민지시대(日帝時代, 1910년 8월 29일 ~ 1945년 8월 15일)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09년(己酉, 불기2453년, 단기4242년, 대한제국 순종隆熙.3년)은 일본 년 호로 명치(明治)42이다. 이 시기는 일본이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勝利)하였고, 1909년 7월에는 대한제국에 대한 강제 병합이 일본 각료회의에서 결정된 해이며, 마침내 1909년 10월 26일 이에 분노한 민족주의자 안중근의사가 중국 하얼빈 역(驛)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いとう ひろぶみ)를 암살(暗殺)한 해이다. 이를 기회로 일본 내에서 대륙 침략을 위장한 소위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는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대한제국(大韓帝國) 강제 병합(倂合)의 추진이 가속화되던 때이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경술국치.庚戌國恥)이 맺어지면서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가 되어, 소위 일본천황 직속의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 의해 1945년까지 36년간의 고통어린 식민지배(植民支配)가 시작되었다. 19세기 후반 전 세계적인 제국주의의 식민지 쟁탈전(爭奪戰)의 일환으로 탈 아시아를 외치던 일본은 조선 측에서 일본과의 외교 관계 수립을 거부한다는 것을 명분삼아 공식적으로 정한론(征韓論)을 제기한 이래 메이지 덴노(명치천황.明治天皇) 시대의 과두정부는 일본 국내에 대륙 침략을 위한 소위 정한론(征韓論)을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하였다.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일본 정부는 조선을 무력으로 식민지화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였고, 1894년 청일 전쟁과 1905년의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에 대한 침략을 가시화했다.일본 제국주의자들은 그 외에도 엄연한 독립국인 대조선국의 국권을 무시하고, 영일 동맹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으로 제국주의적인 침략을 본격화 하던 시기다.이렇게 볼 때 동국사는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합방에 앞서 그들의 국교이다시피 숭상되고 있는 불교를 한국에 가지고 들어와 왜색불교를 전파 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건너간 불교가 식민통치 수단으로 역수입 된 것이므로 종교도 국력 앞에서는 무기력 할 수밖에 없다는 좋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 군산 동국사 대웅전(群山 東國寺 大雄殿)는 전라북도 군산시에 있는 동국사의 대웅전이다. 2003년 7월 15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 동국사는 한일병합 1년 전, 1909년 6월 일본 조동종 승려 우찌다 스님이 일조통에서 금강선사란 이름으로 포교소를 개창하고, 1913년 현 위치로 옮겨와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다.1945년 해방을 맞아 정부 로 이관되었다가, 1955년 (재)불교전북교당에서 인수하고 당시 전북종무원장 김남곡 스님(1913~1983)이 동국사로 개명하고, 1970년 대한불교조계종 24교구 선운사에 증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대웅전은 정 면 5칸, 측면 5칸 정방형 단층팔자지붕 홑처마 양식의 에도 시대 건축양식으로 외관이 화려하지 않으며 소박한 느낌을 준다. 지붕물매는 75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건물외벽에는 미서기문이 많으며,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전통한옥과는 대조를 이룬다. 요사는 몸채를 퇴간으로 둘러싸는 일본 전통양식이고, 복도를 통해 법당과 요사가 연결되어 있다. 사용된 목재는 모두 일본산 쓰기목이다. 범종은 일본 교토에서 주조하였고 창건주 및 개산, 시주자, 축원문은 음각되어 있다. 동국사는 한국 개화기와 근대사의 역사를 증명하는 건축물로써 식민지배의 아픔을 확인할 수 있는 교육 자료로서 활용가치가 높다. 조계종 제24교구로, 선운사의 말사인 동국사(東國寺)는 1909년 일본 승려 선응불관 스님에 의해 창건, 일제 강점기 36년을 일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사찰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에 많은 창문이 일본색을 나타낸다. 그래서 동국사의 대웅전은 2003년 7월,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됐다. '동국사'의 본래이름은 금강선사 였다. 금강선사는1909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이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동종 사찰이다. 일본 불교는 1877년 부산의 개항과 함께 일본정부의 요청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동국사 경내에는 일본조동종에서 일본침략기를 사죄하는 비석이 한글과 일본어로 세워져 있다. 자료출처: 이치노헤 쇼코 스님의 <조선 침략 참회기>, 김중규의 <군산답사 여행의 길잡이>, 사진 ns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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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