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잎 속에 담은 선조들의 정신, 제다(製茶)

물질을 향유하면서 정신성을 함양할 수 있는 제다야말로 인류의 심신 건강과 정신 문화를 선도할 소중한 유산으로 주목할 만하다.

찻잎 속에 담은 선조들의 정신, 제다(製茶)

 ‘제다(製茶)’는 차나무 재배의 북방한계선에 따라 한반도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봄철에 집중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제다를 통해 완성된 한국의 차는 단순한 음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의식, 불가의 수행, 유가의 다례, 그리고 문인의 다예 활동에 사용됨으로써 정치와 종교는 물론 사회,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나의 물질 음료를 만들어내는 기술이지만 정신성을 담아내는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제다는 다른 무형문화재와 구분되는 특징을 지닌다.


                            01.보성 영천리 봇재다원에서 제다의 첫 단계인 찻잎 따기를 하고 있다. ©보성군청



제다 - 차의 효능, 본연의 색·향·미를 찾다

제다는 차나무의 싹, 잎으로 찌거나 덖거나 발효하여 비비기, 찧기, 압착, 건조 등의 공정을 거쳐 차로 만드는 전통 기술이다. 우리나라에 전승된 제다는 그 형태에 따라 크게 잎차[散茶]와 떡차[餠茶]로 나뉜다. 잎차는 찻잎을 덖어서 산화를 억제하는 불발효차인 녹차가 있고, 반대로 산화를 촉진하여 만든 발효차인 홍차, 황차 등이 있다. 떡차는 찻 잎을 증제하고 찧어서 단단하게 성형(成形)하기 때문에 고형차[固形茶]라고도 불리는데, 둥글게 빚은 단차, 엽전 모양의 돈차 등이 있다.

그렇다면 선조들은 왜 차를 만들게 되었을까? 차 문헌에는 차가 잠을 쫓아내 수행을 잘하게 하고, 당뇨를 낫게 하며, 설사를 멈추게 할 뿐 아니라 심신의 응어리와 두통을 해소한다고 쓰여 있다. 현대 과학은 차 속에 들어 있는 카페인의 각성·이뇨 작용, 카테친·다당류의 혈당 저하, 사포 닌의 항균 작용, 비타민C, B₂, E의 항산화 작용, 스트레스 감소, 노화방지 등으로 그 약리적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몸을 이롭게 하고 마음을 안정되게 하는 차의 효능은 수행자와 문인 사대부의 관심을 끌면서 헌다용 의례품, 시·서·화가 펼쳐지는 아집(雅集)에서 기호품이 되었다. 더 나아가 차 본연의 색·향·미를 논하면서 ‘음용’을 위한 제다가 보편적으로 자리매김했다.

                      02.솥에서 찻잎을 덖는 모습 ©문화재청  /   03.덖은 찻잎은 멍석에서 비벼준다. ©차학인문연구소



지역 곳곳에 살아 숨 쉬는 제다의 유구한 역사

제다의 원료가 되는 우리나라 차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동부이고,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흥덕왕 (興德王)」(828)에 대렴이 차 씨앗을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기록으로 확인된다. 이에 앞서 『삼국유사(三國遺事)』 「가 락국기(駕洛國記)」(661)에 차를 제사상에 올린 기록이 있어 그 역사는 더 소급한다. 『고려사(高麗史)』에는 뇌원차, 대차로 불리는 고려차가 하사품 혹은 부의품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고, 차를 만들어낸 다소(茶所)가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는 것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 조선 후기 『부풍향다보(扶風鄕茶譜)』 (1755-1756)에서 향약차 제다를 알 수 있고, 『다신전(茶神 傳)』(1830)을 통해 덖음 녹차 제법의 유입을 확인할 수 있은 부의품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고, 차를 만들어낸 다소(茶所)가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는 것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 조선 후기 『부풍향다보(扶風鄕茶譜)』 (1755-1756)에서 향약차 제다를 알 수 있고, 『다신전(茶神 傳)』(1830)을 통해 덖음 녹차 제법의 유입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차와 선』(1940)에서 최초의 차상표가 붙은 ‘백운옥판차’와 전남 해안 지역의 돈차 제다법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다솔사·대흥사·불 회사·선암사·통도사·화엄사 등 주요 사찰과 강진·구례· 김해·무안·보성·순천·장흥·하동 등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우리 고유의 잎차, 떡차 제다의 전승을 마주할 수 있다.

04.떡차를 만들기 위해 찻잎을 찌는 모습 ©문화재청  /   05.돈차 ‘청태전(靑苔錢)’을 건조하는 모습 ©장흥군청



인류의 자산을 넘어 미래의 우주 문화유산으로

동아시아 삼국은 불교 전래와 함께 공통된 제다 문화를 계승해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역 ‘무형민속문화재(無形 民俗文化財)’란 명칭으로 녹차를 만드는 손유념제다기술 을 단체에 지정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국가급·지역급 ‘비 물질문화유산(比物質文化遺産)’이라는 명칭으로 차 종류 별 ‘대표성 전승인’을 지정하고 있다. 한국은 2016년 한· 중·일 삼국 중 유일하게 제다를 보유자나 보유단체가 없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종목 지정해다. 이는 한국의 제다가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활 속에 계승된 국민의 공동 문화유산임을 인정한 것이다.

국가무형문화재로서 제다는 국내적으로는 제다 전승과 연마를 위한 ‘지역 제다대회의 활성’, 단계별 제다 이수 과정을 체계화하는 ‘인증시스템 확립’, 그리고 문헌과 현장을기반으로 한 ‘한국 제다사’의 정립이란 과제를 안고 있다. 근래 하동전통차농업이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이러한 지역 단위의 성과는 향후 유네스코의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연결될 수 있는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또 새로운 행성에서 인간이 정착할 수 있는 자원 프로젝트에 차나무 식재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차나무의 잎을 원료로 하는 제다는 이제 국가의 무형문화재, 세계의 문화유산을 넘어 다가올 미래의 우주 문화유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물질을 향유하면서 정신성을 함양 할 수 있는 제다야 말로 인류의 심신 건강과 정신 문화를 선도할 소중한 유산으로 주목할 만하다.  고연미(차학인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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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