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를 향한 인간의 열망과 꿈 ‘수(壽)자’ 그림

‘지금 당장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지만 오래 살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것 한두 가지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며 현재의 부귀보다 긴 수명을 바라본다.

장수를 향한 인간의 열망과 꿈 ‘수(壽)자’ 그림

그림 새해, 생일, 백일 등 각종 기념일과 기념품에는 인간의 원초적이고 세속적인 염원인 ‘오래 살고 싶다’는 ‘장수’의 기원이 담긴다. 조선시대 왕실과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에도 무병장수를 바라는 목숨 ‘수(壽)’자가 새겨지고 그려졌다. 목숨 ‘수’ 문자도는 회화적 그림보다는 함축적이고 상징적이며 장식적이라 전달력이 강해 더욱 애호되었다. 장수를 향한 선조들의 열망이 담긴 ‘수(壽)자’ 그림을 알아보자.


                                     01.이형록,《백수백복도10 폭병풍》 중 ‘壽’字 부분 ©서울역사박물관

                                     02.잡체전 글씨를 그림으로 변형한 《백수백복도4폭병풍》 부분. 19세기,

                                           비단에 채색, 102.0x29.0cm ©계명대학교행소박물관



상서로움이 깃든 글씨체로 표현한 문자형 수자도

갑골문은 본래 ‘점쳐서 얻은 예언[占卜]과 신탁을 적은 종교성이 강한 글자’였다. ‘spell’이 철자를 의미함과 동시에 ‘주문을 외운다’라는 뜻이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자는 출발부터 주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더욱이 동양의 한자문화권에서 갑골문을 비롯해 금문인 종정문(鍾鼎文), 전(篆)은 귀한 문자로 인식되어 경전과 부적에 사용되며 액막이 목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즉, 오래된 문자인 갑골문, 종정문, 각종의 전서체로 쓰인 문자는 액막이와 길상의 의미를 모두 내포한다고 하겠다. 그중 장식성이 강한 다양한 전서체(篆書體) 문자는 길상적, 주술적 성격을 갖추고 있기에 병풍으로 제작되어 장식되었다. 특히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처럼 장식 서체인 ‘잡체전(雜體篆)’ 같은 상서로운 글씨체로 다양한 종류의 수자를 100번 써서 집안에 장식하거나 장수의 상징물을 수자와 결합해 제작하는 그림이 등장한다.

인간의 오복 중 첫째인 무병장수의 염원과 상서로움이 깃든 글씨체가 만나 제작된 것이 ‘수문자도’이다. 문자도는 글씨 형태와 그림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글씨 형태는 뜻이 상서 롭고 모양이 장식적인 전서체를 응용했다. 문자형 수복문자도 형식은 초기 큰 글자 속에 작은 글자를 넣는 삽입형에서 시작해 이후 100개의 수복자를 잡체전으로 써서 배열 하는 방식으로 변화된다. 배열형은 꼭 100개의 글자 수를 채우지 않더라도 기본 잡체전을 유지하는 방식과 도안화된 잡체전을 기계적으로 반복한 수복문자도 있다.

옛날부터 궁정과 왕실 곳곳에서 전서체를 상용했던 것은 전서체가 천하만물의 생성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조화의 조짐을 나타내는 상서로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었을 것이다. 이들 서상(瑞祥) 문자의 표상화는 임금의 성 덕으로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왕실은 물론이고 일반 백성에게까지 미래의 행복과 복락을 예시하고자 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을 대신했던 고대 임금의 정치활동은 곧 상서로운 자연현상에 의지하곤 했으니 자연물을 형상화한 상서로움의 결정체인 잡체전이야 말로 궁정과 왕실, 임금과 기득권자들의 모종의 의도가 반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03.허련,<매수문자도(梅壽文字圖)> ©소치박물관

                                                      04.미상,<송록수문자도 (松鹿壽文字圖)> ©전주역사박물관

                                                      05.미상,<송학수문자도(松鶴壽文字圖)> ©가회민화박물관



다양한 화제(畫題)와 결합한 도화형 수자도

글씨 형태의 문자도는 20세기 전후 민간에서도 유행하면서 도안화된 문자도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화가가 등장했다. 이미지화된 문자가 효제문자도나 화조화 등과 조합되거나, 길상과 수복을 상징하는 물상과 조합하거나 이들 물상을 문자화한 형식으로 제작된다. 수문자도는 민화적인 성격을 띠며 백수백복도의 글씨를 그림으로 변형시킨 유형이 있고, 각종 상서로운 신선과 동자, 동식물과 수자가 어우러진 수복동자도, 백록선인도를 비롯해 고사인 물화, 화조영모화, 효제문자도 등의 다양한 화제와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먼저 백수백복도의 잡체전 글씨를 그림으로 변형한 대표적인 예는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의 ≪백수백복도4폭 병풍≫이다. 이형록의 작품처럼 기존 문자의 형태를 유지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전서체의 상징 의미를 극대화하거나 수와 복을 상징물을 형상화하는데 주목했다. 특히 각각 전서체의 유래와 의미를 알 수 있게 물상을 도형화한 수자를 작게 써넣는 방식이 특이하다. 동물로는 기린전의 기린 모습, 호서의 호랑이, 과두전의 올챙이, 조서의 새 모습, 유서(瀢書)의 물고기가 떼 지어 노는 모양 등이 있고, 기물로는 고정전의 정(鼎) 모양, 고종전의 종(鐘) 모양 등의 고동기가 많고, 죽서(竹書)처럼 대나무 같은 꽃과 식물을 형상화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당시 민간에서 유행한 책거리의 기물이 등장하고 표현 방법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소치 허련이 80세에 농묵으로 그린 <매수문자도>는 화면 중앙에 농묵으로 수자를 초서로 고목처럼 그리고 가는 줄기를 치고 매화 꽃송이를 그렸다. 잡체전에는 매화꽃 어우러진 글씨를 ‘매화서’라 하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매화서라 이를 수 있겠다. 매화보다는 노송, 학, 사슴, 영지, 돌 등이 장수를 상징하고 이른 시기부터 장수와 관련지어 그림으로 그려졌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송학수문자도>와 전주역사박물관 소장 <송록수문자도>는 모두 수자형으로 소나무를 그리고 화폭 하단 주변에 학이나 사슴, 영지 등의 장수를 상징하는 소재를 배치했다.

이를 통해 근대기 민간에서 수복문자도와 아울러 장수와 복락을 상징하는 이러한 문자형 길상작품이 상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수와 관련된 다양한 수자 그림은 죽음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누구나 장생복락을 꿈꾼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 당장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지만 오래 살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것 한두 가지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며 현재의 부귀보다 긴 수명을 바라본다.

이 글은 아래 논문의 내용을 포함한다.
강영주, 「수복문자도의 유형과 성격 - 잡체전(雜體篆)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를 중심으로 -」, 『한국민화』 14, 한국민화학회, 2021.  글/ 강영주(문화재청 인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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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