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감은사 동서 삼층석탑

신라는 깊이 잠이 들었지만, 감은사 석탑은 환한 조명을 받으며 건너오려고 손짓을 하고 있다. 돌마다 피어난 천 년 묵은 이끼가 대신해서 말을 전해주는 것 같다.

감은사 동서 삼층석탑

토함산에서 시작한 대종천이 봉길리 앞바다에 다다르기 전에 왼쪽으로 감은사가 남향으로 서 있다.

멀찍이 바라보면 하얀 돌로 된 석탑이 유난히 우뚝하다. 가까이 다가가면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는 것을 느낀다. 탑 하나가 13평을 깔고 앉았으니 큰 것은 사실이다. 그 자태는 단순한 것 같지만 웅장하고 기품이 있어 보인다. 그 힘은 바로 통일 신라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그 시대의 불상도 역시 당당한 자세로 서 있다. 가슴은 떡 벌어지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통일된 신라를 과시라도 하는 것 같다.



같은 시기에 와당의 연꽃무늬 문양도 단순하지만 큼직큼직하게 힘을 실어서 조각하였다. 꽃잎은 6개에서 점점 시대가 지나면서 꽃잎도 많아지고 복잡 화려하게 변신한다. 결국 말기에는 화려하다 못해 사치스런 풍조를 보이다가 멸망을 한 것이다.

성주괴공의 굴레에서는 모든 것은 그렇게 묻혀 갈 뿐이다. 문화의 한 양식이란 쉽게 넘길 수 없는 도도한 물줄기와도 같은 것이다. 한 시대를 주름잡다가 그렇게 또 넘어가는 길이다. 수나라는 불과 28년밖에 유지를 못했지만 그 수나라의 양식이란 것은 너무나 잘 남아있다.

그래서 문화재도 알고 보면 재미가 한층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단순하지만 아름다움을 갖춘 것은 비록 감은사 석탑뿐이 아니다. 성덕대왕신종도 단 하나의 음으로 세상을 울리는 오묘한 소리를 가졌다. 하나로 통한다는 것은 곧 화엄경의 요지이다. 그럼으로 감은사 석탑을 볼 때마다 숙연해지기 까지한다. 그 얼마나 많은 석공들의 정성이 들어갔는지 돌을 어루만지며 그 손등의 거친 숨결을 잠시나마 느껴본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탑돌이를 해서 풀도 자라지 못하고 하얀 속살을 하고 있는 맨땅을 본다.

달밤이면 밀려드는 파도 소리와 함께 수없이 많은 별들이 마구 쏟아진다. 대종천에 가라앉은 범종도 고래와 같은 울음으로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들어보라. 또 인적이 뜸할 때쯤이면 동해의 용은 슬슬 기지개를 켜고 나올 것만 같다.

신라는 깊이 잠이 들었지만, 감은사 석탑은 환한 조명을 받으며 건너오려고 손짓을 하고 있다. 돌마다 피어난 천 년 묵은 이끼가 대신해서 말을 전해주는 것 같다. 감은사 석탑은 통일 신라의 대표작이다. 규모도 크지만, 안정적이고 남아있는 찰주로 인하여 훨씬 상승감이 들어 보인다.

신라 석탑의 기준이 되고 전형적인 석탑으로 이와 비슷한 석탑이 고선사지 석탑이 있다. 고선사지 석탑은 수몰의 위기를 피해 경주박물관에 옮겨졌다. 삼국의 통일은 삼한을 합하여 문화까지 융합해서 새로운 도약의 길을 열었다.

각기 다르게 출발한 석탑도 통일하면서 여러 석공들이 머리를 맞대고 새 역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무디어진 정을 갈고 담금질해서 수천 수만번을 때리고 쳐서 다듬어진 공덕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다. 이 역사에 참여해서 이름도 없이 잊혀진 그 무쇠 같은 손의 석공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줄 수 있는 배려를 해야 당연하다. 1400년 긴 잠을 깨워서 향을 사르고 정안수 한 잔 올리고 싶다. 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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