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수군(僧水軍) 대장 자운스님

승군대장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승수군 대장 자운스님과 옥형스님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승수군(僧水軍) 대장 자운스님

승군대장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승수군 대장 자운스님과 옥형스님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호남에는 오대 본산이 있다.
송광사 가서 계율 자랑하지 말고 대흥사 가면 염불 자랑하지 마라.
선암사 가서 문장 자랑하지 말고 백양사 가면 인물 자랑하지 말고
화엄사 가면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불가의 말이 전해진다.

송광사는 승보종찰로 모범적인 수행자가 많이 배출된 곳이다. 선암사는 경운강백 문하에서 박한영, 진진응 같은 대강백이 배출되었다. 선암사 문장을 조정래 작가가 잇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선암사 시조 시인 조종현 스님이다. 대흥사에서는 서산대사의 법통을 이어 13대 종사와 13대 강사가 배출된 명찰이다. 불교 의식에 해박한 스님들이 많았다.

백양사는 근세 불교에서 종정 스님이 가장 많이 배출된 곳이다. 만암스님, 묵담스님, 서옹스님이 그 주인공들이다. 화엄사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 국난을 당했을 때 승장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다.

화엄사 산문 위의 부도밭에는 소박한 부도가 한기 있다. 부도의 주인공은 이순신 장군 밑에서 승수군 대장으로 장군을 보좌했던 자운윤눌 스님의 사리탑이다. 승군 대장으로 서산대사, 사명대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승수군 대장 자운대사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조선 시대 승려들은 천민으로 취급되어 큰 공을 세우고도 장군 몫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 정랑분이 지은 이충무공전서에 자운스님에 대한 기록이 있다...
호남에 사는 승려들이 장군을 위하여 제를 올리는데 사찰마다 올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 가운데 자운이라는 스님은 장군의 진중에 따라다니기도 하고 또 승군 대장으로 많은 공을 세운 사람이다. 이충무공이 돌아가신 뒤에는 정미 600석으로 노량에서 수륙제를 열고 음식물을 성대히 차려 충민사에 제사까지 지냈다.

- 구례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선학과 교학에 해박한 자운윤눌 慈雲潤訥 대사는 임진왜란 때 통제사 이순신 장군을 따라 방패와 창으로 나라를 지켰다.

- 여천 흥국사 선당상량기의 기록이다.

수전에 이긴 후에 자운대사께서 흥국사를 위하여 이 절에 머무는 동안 장군의 명령을 받은 박춘양이 일을 감독하여 불사를 이루었다.


영화 명량에 나오는 승수군이다. 여수 흥국사는 승수군의 본영이었다.



이상의 기록들을 보면 자운대사는 임진왜란 때 승군대장으로 역할을 크게 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복구사업을 주관하고 전사자들을 위해서 천도제를 베푼 것을 알 수 있다. 구전으로 끊임없이 내려오는 이야기의 진실도 밝힐 필요가 있다.

첫째는 호남 해안의 지리에 밝은 자운스님이 이순신 장군의 군사자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서 고해 바다의 중생들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반야용선을 거북선으로 설계하여 바쳤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신미대사가 있었다면 이순신 장군의 군사고문으로 자운 대사가 있었다. 거북선은 나주 출신 군관 나대용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것도 공식기록이 아니다. 거북선은 화엄경의 대가이며 해박한 지식을 갖춘 자운스님이 설계하고 나대용이 승군을 데리고 제작했을 것이다.

화엄사 출신 자운대사는 화엄사를 창건하신 연기스님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연기스님은 인도사람이다. 비구니 어머니를 모시고 연鷰을 타고 바다를 건너왔다. 연鷰의 머리는 용이고 몸뚱이는 거북이다. 날개가 달려있어 하늘을 날고 바다를 건너간다는 신비의 동물이다. 연을 타고 바다를 건너온 연기스님은 백제 성왕 10년 (서기 544년) 화엄사를 창건하고 이듬해에는 산내 암자로 연곡사를 지었다. 연곡사 승탑부도의 귀부가 뱃길을 건너온 연의 모습이다. 연기조사가 창건한 연곡사 승탑의 귀부를 자세히 살펴본다. 머리는 용의 형상이다. 몸체는 큰 거북이 형상이다. 거북의 등에는 날개가 달려있다. 거북선의 모습과 그대로 일치한다.


지리산 연곡사의 석비이다. 거북선 닮은 거북등에 날개가 달려있다.

옛 500원권에 실린 충무공과 거북선 도안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있듯이 자운스님의 임란기록 진중일기가 있었다.
자운스님의 진중일기에 거북선의 설계도가 있다고 한다. 여수 충민사에 전해지던 자운스님과 옥형스님 두승장의 진영과 진중일기는 일제 때 일본인 경찰서장이 탈취해 간 뒤 행방을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래 게송은 이순신 사당이 있는 여수 석천사 의승당에 걸린 한글 주련이다.

자운, 옥형 두 큰스님과 삼백의 승군 임진, 정유왜란에 온 중생 허덕일 때
연꽃 잡은 손으로 호국의 기치 들어 왜인의 침략야욕 파사현정 하셨네
충무공 순국하여 호국의 용 되시고 의승군 대승의 얼 등불 되어 빛나네
참고자료 티벳박물관장 석현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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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