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리 반구대 일원1

아무것도 손대지 않는 자연 그대로가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대곡천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직도 문명의 바람이 불지 않아서이다. 자연은 글자 그대로 스스로 내 버려두면 제일 좋은 것이다.

대곡천 반구대에서

우리나라는 산천이 수려한데다 사계절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움을 더한다. 봄이면 온갖 꽃들이 앞다투어 피느라고 눈이 부실 정도이고 여름이면 온통 초록색으로 마음에 휴식을 가져다준다. 그러자 가을이 되면 울굿불긋한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들 곁으로 다가온다. 화려한 단청보다도 더 뛰어난 자태를 농염하게 뽐내며 이 땅에 한땀 한땀 수를 놓는다.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눈만 돌리면 누구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이 강산을 누리는 자는 모두가 그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주인이다. 이 땅에 태어난 것은 분명 축복이다. 더구나 해외에 나가 있으면 그야말로 조국이 절실히 그립고 애국심이 절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어제는 날씨가 궂어서 비바람이 몰아쳤다. 눈물 흐르는 창문 밖을 내다보고 단풍이 무사하기를 밤새 간절하게 빌어 보았다. 비록 일부 노쇠한 이파리들은 떨어지기는 했지만 단풍이 떨어진 사잇길도 운치가 제법 있었다. 대곡천 맑은 물길에 단풍잎도 따라서 태화강으로 달려가는 모양이다. 아마 낼모레쯤이면 시원한 동해를 만날 수 있겠지. 이곳 소식을 한아름 안고 가는 그 기분을 알 것만 같다. 마치 들떠 있는 것처럼 어깨를 들먹이며 신이 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은 근심이 없는 것이라고 하는데 떨어지는 저 낙엽도 근심 걱정이 있을까. 나의 상상력으로 저 낙엽에게 애써 근심을 실어 보았다. 세상 한가롭고 걸릴 것 없이 편해 보이는 저 낙엽 역시 돌고 도는 윤회의 굴레 속에서 벗어 나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 떨어지는 저 늙고 초라한 낙엽은 땅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고 다시 봄이 되면 새싹으로 태어난다. 좀 더 양지바른 곳에서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꿈을 꾸면서, 때로는 욕심도 부리면서 이웃과 다투기도 하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 때면 또 좋은 곳을 바란다. 훨훨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 사리를 몇 개 던져 놓고 간다 해도 그것은 부질없는 구슬일 뿐이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윤회의 수레바퀴일 뿐이다. 저 달을 가르키는데 손가락 끝만 쳐다보는 격이나 다름이 없다. 대승기신론을 한 줄 읽지 않아도 내가 곧 부처의 씨앗이리니, 내 스스로 불을 밝히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나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만유인력을 떠올리지는 못하지만 애환을 가득 안고 몸부림하며 치열하게 버티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군상이 보인다.



대곡천 흐르는 물을 보며 그 옛날 시인 묵객의 심사를 느껴 보고 싶다. 포은이나 한강도 대곡천을 무척이나 아꼈다고 한다. 벼룻길을 느긋하게 뒷짐 지고 가노라면 절로 붓을 들게 만든다. 깎아지른 석벽이 길을 가로막고 얼굴에 홍조를 띤 단풍이 가는 허리를 흔들며 쉬었다 가세요 하며 유혹을 한다. 재빠르게 달리는 물결은 숨이 차서 헐떡거리고 햇살은 은빛으로 물결 위에 춤을 추는 광경은 무릉도원이라 부르고 싶다.

아무것도 손대지 않는 자연 그대로가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대곡천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직도 문명의 바람이 불지 않아서이다. 자연은 글자 그대로 스스로 내 버려두면 제일 좋은 것이다.

선사시대부터 인간들은 여기에 터를 잡았으니 그것은 분명 명당이다. 또한 선사 이전에는 대형 초식 공룡 울트라사우러스 등이 이곳에 살았노라고 발자국을 남겨 놓고 갔다. 신라시대에는 왕족의 행차로부터 귀족들과 화랑들이 여기로 왔다. 진흥왕은 어렸을때 모후인 지소부인과 함께 찾아와서 큰 뜻을 품고 돌아갔다. 훗날 36년간 나라를 다스리며 가장 큰 영토를 확장하였다. 또 고려말에는 포은이 귀양을 와서 있게 되자 많은 선비들이 문턱을 넘나들었다. 지금도 반고서원에서는 포은과 회재, 한강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산천을 유람하던 겸재도 이곳에 발을 멈추고 붓을 들었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글과 그림을 남기고 간 자리가 더 아름다워 보인다. 다시 한번 자연의 소중함을 안고 돌아간다. 정태상ⓒ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태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