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총 발견 100년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전 경주 금관총의 금관이 세상에 드러났다.

경주 금관총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전 금관총의 금관이 세상에 드러났다.


1921년 9월 25일 오전 9시무렵, 조선인 아이 서너 명이 모여 열심히 어떤 물건을 찾고 있었는데 파란색 유리구슬 서너 개씩을 손에 들고 있었다. 고분에서 나온 구슬이 아닐까 짐작되어 조사해 보니 인근의 박문환씨 집터에서 사람들이 흙을 채취하기 위해 고분처럼 보이는 곳에서 계속해서 파는 것을 보고 당장 중지시켰다.

황금의 나라 신라의 존재를 알리는 중요한 발견이었다.

금관 외에도 금귀걸이, 목걸이, 금제 허리띠, 금팔찌, 금반지 등 장신구를 비롯하여 말갖춤, 무기, 그릇 등이 나왔다. 특히 구슬 종류만 총 3만 개가 넘는다. 금의 총중량만 7.5kg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이미 파괴된 고분인데다 정식으로 발굴 조사된 것이 아니어서 묘의 구조나 유물의 정확한 상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 국립경주 박물관에서 금관총 발견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발굴 당시 봉토는 남북 길이 36m 동서 너비 15m 높이 6m 정도가 남아 있어서 원래는 대형 고분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원래 봉분의 복원 규모는 저부 직경 약 45m에 높이는 약 12m정도로 되었을 것으로 본다. 봉토의 축조 수법은 자갈과 훍을 교대로 쌓아 올렸으며, 덧널 바닥은 지반을 깊이 약 40cm 정도로 파내고 돌을 깔아 만들었고 그 위에 세운 덧널(목곽)과 돌무지(적석부)는 모두 지상에 설치 되었다. 덧널 바닥에는 두께 약 9cm정도의 판재가 깔려 있었고 이 판재와 약간의 사이를 두고 일렬로 놓인 석렬이 돌아가고 판재와 석렬의 사이에는 냇돌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나무널(목관) 주위에는 장방형 덩이쇠(철정鐵鋌)가 열을 지어 있었으며 큰 칼 등의 무기가 출토되었고 나무널안 서쪽에 신발이 있었다. 나무널은 길이 2.5m 너비 1m인 칠관(漆棺)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내부에서 금관 등의 각종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이 무덤에서 출토된 금관은 국보 제 87호로, 허리띠 장식인 과대 및 요대는 국보 제 88호로 각각 지정되었다.

금관총의 축조연대는 출토된 유물들에 의거하여 대략 5세기 후반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되어왔는데, 최근에 이 고분을 자비마립간 등에 비정 하는 의견이 제시되어 있으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다른 견해도 있다. 금관총은 고분의 입지와 규모로 볼 때 봉황대(125호분)의 배총(陪塚) 중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봉황대의 배총으로 보는 것은 금관총(128호분)을 비롯하여 금령총(127호분), 식리총(126호분)이 있으며 봉황대 외에는 모두 발굴이 되었다.

금관총을 비롯해 금령총과 식리총도 500년 전후에 축조된 무덤으로 편년되며 봉황대는 비록 발굴되지 않았으나 눌지왕 또는 자비왕릉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금관총 주인공이 이사지왕이면 자비왕 또는 소지왕일 가능성이 있다. 이사지왕이 아니라면 금관총의 주인공은 봉황대의 주인공과 깊은 관계를 가진 인물이다. 여성일 가능성이 크므로 눌지왕 또는 자비왕과 깊은 관련을 가진 여성일지도 모른다.

2013년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하던 금관총 장식 대도의 칼집에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이어 2015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조사단이 금관총을 다시 발굴하는 과정에서 尒斯智王刀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진 칼집 조각과 일제강점기에 미처 수습하지 못한 유물을 여러 점 더 찾아냈다. 금관총에서는 총 3자루의 이사지왕 대도가 나왔다. 이 발굴을 계기로 금관총에 묻힌 인물이 이사지왕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졌지만, 이사지왕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이 고분의 부장품을 전체적으로 총괄하여 보면 금제 장신구 등의 유물이 많고 무기류가 상대적으로 적은데 이후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신라가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된 전성기로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금관총은 신라 고분 중 최초로 금관이 출토된 고분으로 그 뒤 신라 고분이 무수히 발굴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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