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 5 – 진안 고미동

여우 덕에 마을을 이룬 진안 고미동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 5 – 진안 고미동

우리나라 곳곳에는 다양한 이름의 마을들이 있다. 그 마을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서로 다른 도시에 똑같은 동 이름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인 한 인물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새로운 지명을 낳기도 했다.

지명의 유래를 유형별로 나누어 그중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지명들을 살펴보았다.

“여우와 호랑이” 가 살던 곳
용 다음으로 많은 동물은 여우와 호랑이다. 색시로 둔갑한 여우가 죽어 나간 경북 칠곡군 왜관읍 여우골, 꼬리 긴 여우가 고갯짓해서 가르쳐준 마을인 전북 진안군 성수면 외궁리 고미동이 여우와 관련되어 있고, 사냥꾼이 호랑이와 함께 지낸 마을 대전 중구 호동(범골), 호랑이가 물 마시고 춤을 추던 충북 청주시 호무골이 호랑이와 관련되어 있다.
네발짐승만큼이나 새 관련 지명도 많다. 경북 의성군 세촌리 새목골은 새가 많이 모이는 마을이다. 천 마리 닭으로 지네를 없앤 경남 하동군 애치리의 봉계마을, 세 마리의 학이 하늘로 오르면서 생긴 전남 목포시 삼학도, 은혜 갚은 까치들이 살았던 충북 청주시 흥덕구 남촌리 까치말, 은혜 갚은 오리가 살던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사부실 등 전국 곳곳에 다양한 새 관련 지명이 존재한다.



여우 덕에 마을을 이룬 진안 고미동

조선 후기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외궁리에 고씨 성을 가진 이가 살았다. 그는 가난하여 산에서 나무를 해다 장에 팔아 생계를 잇고 있었다. 하루는 산에 나무를 하러 올라갔는데 여우가 자꾸 고갯짓을 하며 부르는 것 같아 따라갔다. 그랬더니 생전 처음 보는 넓은 들판을 접하게 되었다. 고씨는 의형제를 맺은 송씨와 조씨가 더불어 그 밭을 열심히 일구어 부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재산을 모았다. 이후 인근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꼬리가 긴 여우가 고갯짓을 하며 가르쳐준 마을이라 해서 고미동(顧尾洞)이라 불렀다.



옛날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외궁리에 고씨 성을 가진 이가 살았다. 그는 가난하여 산에서 나무를 해다 장에 팔아 생계를 잇고 있었다. 하루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커다란 여우가 나타났다. 고씨는 저 여우 정도는 크게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나무 베는 일에만 열중했다. 한참을 톱질하고 나무를 쓰러뜨리려는데 여우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고씨는 위험하니 비키라고 여우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여우가 비켜섰다. 고씨는 나무를 쓰러뜨리고 여우를 향해 “야, 이놈아 왜 위험하게 거기 서 있는 거야!” 호통을 치며 쫓는 시늉을 하였으나 여우는 오히려 고갯짓을 하였다. ‘저놈이 왜 그러는 거야!’ 하면서 고씨는 여우 가까이에 갔다. 그러자 여우는 피하지도 않고 마치 따라오란 듯이 고갯짓을 하면서 산으로 들어갔다. 고씨가 발을 멈추자 여우는 뒤돌아서서 따라 오란듯이 또 고갯짓을 했다. 고씨는 나무하던 일도 잊고 마치 여우에 홀린 듯이 여우 뒤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다.

여우 덕에 마을을 이룬 고미동


한참을 가니 여우는 어떤 굴 앞에 이르렀다. 고씨가 그렇게 나무를 하러 이 산에 다녔지만 이런 동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으나 여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고갯짓을 하면서 동굴 속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다. ‘에이, 겁날 거 뭐 있어. 설마 내가 저 여우에게 잡아먹히겠어!’ 중얼거리며 동굴로 들어갔다. 굴 속을 한참 들어가 밖으로 나오니 그곳에는 생전 보지 못했던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고씨는 자신도 모르게 ‘아니, 산골짜기에 이렇게 넓은 들이 있다니 참 신기하네!’하고 중얼거리며 앞장선 여우를 쳐다보니 여우는 보이지 않았다. 고씨는 나무하던 자리로 돌아와 지게를 대충 챙겨 마을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의형제를 맺은 송씨와 조씨에게 여우를 따라가 발견한 넓은 들을 설명하였다. 그러자 송씨와 조씨는 내일 아침에 함께 가보기로 약속을 했다. 고씨는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도 이야기를 했다. “그런 땅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우리 땅이 없으니 매일 열심히 일을 해도 세끼를 제대로 못 먹으니 속상해요.” 했다. “다 잘 될 거야. 그 땅은 우리가 먼저 농사를 지으면 우리 땅이 되는 거야!”

이튿날 세 사람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밥을 한 숟갈씩 뜨고는 고씨가 본 들판을 찾아갔다. 산길을 오르고 동굴을 지나 들판을 본 송씨와 조씨는 입이 벌어졌다. “아니, 이렇게 넓은 땅이 어떻게 그냥 있는 거야!” “우리를 위해서 있는 거지!” “그래 우리도 이 땅을 일궈서 한번 잘살아 보자고!” 세 사람은 서로를 격려하며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세 부인들에게 산에 올라 살펴본 너른 들 얘기를 했다. “처음에야 어렵겠지만, 그 들판이 우리 땅이 되는데 무엇이 걱정이고, 무엇이 힘들겠어요. 우리 여자들은 걱정하지 말고 남자들이 결정하세요.” 하면서 부인들은 남자들 의견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럽시다! 고생할 각오로 일을 한다면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세 집안은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땅 이야기만 했다. 며칠 후 고씨, 송씨, 조씨 세 집안 식구들은 여우가 안내해 준 터에 보따리를 풀었다. 짐이라야 이부자리와 식기류 몇 가지이지만 새로운 터전에서는 중요한 것들이다. 이후 세 집안에서는 열심히 일을 해서 부를 축적하여 인근 마을에서는 장자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고장자, 송장자, 조장자 등의 별칭을 얻게 되었다. 이후 인근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꼬리가 긴 여우가 고갯짓을 하며 가르쳐준 마을이라 해서 고미동(顧尾洞)이라 불렀다.  참조  이영식 진안문화원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