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과 나반존자

원래 삼성(三聖)은 고려 말의 3대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지공, 나옹, 무학대사를 봉안하였다

 독성과 나반존자

원래 삼성(三聖)은 고려 말의 3대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지공, 나옹, 무학대사를 봉안하였다.

조선 시대 후기에는 산신과 독성, 칠성 등 삼신을 모시는 전각으로 변하게 된다. 가람의 배치나 지역적인 여건에 따라 산신각이나 칠성각, 독성각이 따로 세워지거나 영험에 따라 세 전각 가운데 하나만 모셔 놓은 곳도 있다.

혼자서 스승 없이 독수 선정하여 도를 깨우친 성자로 나반존자 또는 빈두루존자로 부르는 독성은 남인도 천태산에 머무르다가 말법 시대가 되면 무릇 중생의 복덕을 위해 출현할 것이라고 전한다.

독성, 산신, 칠성을 따로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삼신을 함께 모시는 전각을 삼성각이라고 부르고 독성을 단독으로 모시는 경우 독성각, 천태각, 신통전, 단하각 등으로 부르며 유난히 괴팍하고 까다로운 신령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독성은 부처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얻고 석가모니의 수기를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천태산에 머무르다가 말세 중생을 제도하고 중생의 공양을 받아 대복전이 되었다고 한다.

18나한의 하나인 빈두루는 원래 발치국 사람으로 어려서 출가하였는데 일찍이 신통력이 남달리 뛰어나 연기법을 깨달았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성도한 지 6년째 되던 해에 왕사성 거리에서 신통을 부렸다가 외도들의 조소를 받았으므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부질없는 신통을 나타내지 말라는 책망을 하였다고 전한다. 따라서 특별히 복을 기원하는 신도들의 경배대상이 되었다.

아라한과에 속하는 독성은 불교국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유난히 우리나라에서만 삼성 가운데 하나로 현세 구복을 기원하는 상징 자리를 지키고 있어 산신의 발생과 함께 특이한 신앙 형태의 하나이다.

독성은 불교적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과 도교적인 측면에서 발생하였을 것이라고 보는 경우가 있다. 또 도교적인 칠성, 무교적인 산신, 불교적인 독성 등을 무불선이 통합된 신앙 형태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독성에 관한 기록은 숙종19년 (1693년)에 풍남거사가 지은 삼각산 경국사의 천태성전 상량문이 있으며 19세기에 접어들면 산신과 함께 많은 자료들이 남아 있다.


독성도는 대개 16나한탱화와 같은 구도법으로 그려지는데 나무와 산, 괴석 곧 천태산을 배경으로 늙은 비구가 홀로 앉아 긴 눈썹을 휘날리며 석장을 짚고 노한 듯 웃는 듯 고요 속에 잠겨 있다. 때로는 동자가 차를 달이는 모습을 하거나 주변에 폭포, 꽃, 새, 불로초, 거북 등이 등장하여 민화의 수복도를 보는 듯한 경우도 있다.

불교의식집의 독성청 유치를 보면 나반존자는 '층층대 위에 조용히 머물러 참선을 하거나 낙락장송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눈처럼 흰 눈썹이 눈을 덮고 있으나 空을 觀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독성도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독성도에는 청문의 내용을 충실히 구상화하려는 것이 보인다. 


영주 희방사 나반존자 탱화는 '우초 정태상' 선임기자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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