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타일, 청자자판

청자자판(靑瓷瓷板)은 당시 건물의 벽면을 장식했던 타일(Tiel)의 일종으로 다채로운 문양이 시문되어 있었다. 그러나 청자자판은 현존하는 수량이 많지 않고 관련 문헌 자료도 부족하여 연구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고려시대의 타일, 청자자판


영롱한 비취색을 머금은 청자는 식기는 물론이고 차와 술을 담은 다기와 주기, 매병이나 화분과 같은 관상 용기로 제작되었다. 고려인들의 청자에 대한 애정은 단순한 생활 용기가 아닌 청자기와나 자판(瓷板), 전(塼), 연봉(蓮峯) 등과 같은 화려한 건축 부재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그중 청자자판(靑瓷瓷板)은 당시 건물의 벽면을 장식했던 타일(Tiel)의 일종으로 다채로운 문양이 시문되어 있었다. 그러나 청자자판은 현존하는 수량이 많지 않고 관련 문헌 자료도 부족하여 연구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01.청자상감갈대물새무늬자판[靑瓷象嵌葦蘆水禽紋瓷板], 고려 13세기, 길이 20.5㎝,

ⓒ일본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02.청자상감모란구름학무늬자판[靑瓷象嵌牡丹雲鶴紋瓷板], 고려 13세기, 길이 30.3㎝,

ⓒ국립중앙박물관



타일의 시작, 고려시대 청자자판

고려시대의 청자자판은 〈청자상감갈대물새무늬자판〉처럼 직사각형의 납작한 형태로 제작되거나 〈청자상감모란구름학무늬자판〉처럼 네 모퉁이를 조금씩 잘라내어 팔각형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청자자판의 규격은 길이 20~40㎝, 두께 2~3㎝로 우리가 사용하는 타일보다는 크고 두꺼운 형태였으며, 쓰임에 맞게 다양한 규격으로 생산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상과 여기(餘技)를 담은 청자자판

이러한 청자자판에는 다른 청자 건축 부재와 달리 여러 가지 기법으로 다채로운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예를 들면 화려한 패턴으로 구성된 문양이 표현되어 있는가 하면, 한 폭의 회화 작품을 연상시키는 문양이 펼쳐져 있기도 하였다. 〈청자상감모란구름학무늬자판〉은 중앙에 능화창을 만들고 그 안에 모란꽃 가지를 흑백상감하였으며, 능화창 밖에는 구름과 학 무늬를 가득 배치했다. 그중 모란은 꽃 중의 왕으로 불리며 부와 명예, 화목을 상징하고 운학은 상서로움을 담고 있어 고려인들은 자신의 소망과 이상을 담아 청자자판에 표현한 듯하다.

〈청자상감매화대나무새무늬자판〉에는 한 폭의 화조화를 연상시키는 문양이 시문되어 있다. 자판의 중앙에는 가느다란 대나무와 매화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는 새의 모습이 클로즈업한 듯 과감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새와 나무의 표현은 북송 제8대 황제 휘종이 그린 《오색앵무도》와 매우 유사하다. 이는 고려인들이 당시 감상했던 회화의 구성을 모티브로 청자자판을 제작하였음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다.

03.청자상감매화대나무새무늬자판[靑瓷象嵌梅竹鳥紋瓷板], 고려 13세기, 길이 27.3㎝,

ⓒ국립중앙박물관

04.조길(趙佶), 《오색앵무도》, 권(卷), 오대(五代), 비단에 채색, 53.3×125.1㎝,

ⓒMuseum of Fine Arts, Boston.



고려 상위 계층을 위한 건축 부재, 청자자판

이처럼 다채롭고 아름다운 청자자판은 양질의 비색청자가 제작되었던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 지역에서 생산되었고, 왕실 구성원이 머물렀던 고려 궁성이나 파주 혜음원지와 같은 건물의 건축 부재로 공급되었다. 그 당시 청자자판은 고려의 최상위 계층이 사용하는 고급 건축 부재이자 품격 있는 공간 장식 재료였던 것이다.

은은한 비취색 바탕에 화려한 흑백상감기법으로 구성된 다채로운 문양이 장식되어 있는 청자자판은 왕실 관련 건물의 벽면에 부착되어 공간의 장식 효과를 배가하는 역할을 했다. 한편 최씨 무신정권과 관련이 깊었던 강진 월남사지에서는 음각기법으로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는 청자자판이 다량 출토되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사용자의 기호에 따라 청자자판이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청자자판은 도자기 강국인 중국에서도 제작되지 않았던 고려만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기물이자 당시 높은 수준의 청자 제작 기술이 반영된 산물이기도 하다. 고려인들은 그릇이 아닌 다양한 건축 부재를 만들어 품격 있는 청자문화를 일구었으며, 그 중심에 아름다움과 독창성을 갖춘 청자자판이 자리하고 있다. 출처/김세진(김해공항 문화재감정관실 문화재감정위원)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