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사는 데, 나아가고 물러감에 있어 ‘의’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죽고 사는 것 그리고 나아가고 물러가는 데 있어 의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항쟁한 조헌 선생과 700여 명 의사의 정신이 엿보인다. 그들의 정신, 마음가짐은 칠백의총 그리고 칠백의총기념관을 통해 현재에도 전해지고 있다.

죽고 사는 데, 나아가고 물러감에 있어 ‘의’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충절의 혼이 서려 있는 성역, 칠백의총 사생진퇴 무괴의자(死生進退 毋愧義字). 이는 칠백의총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에 새겨진 문구다. 죽고 사는 것 그리고 나아가고 물러가는 데 있어 의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항쟁한 조헌 선생과 700여 명 의사의 정신이 엿보인다. 그들의 정신, 마음가짐은 칠백의총 그리고 칠백의총기념관을 통해 현재에도 전해지고 있다.


01.사적 금산 칠백의총 전경



금석문으로 남은 의로운 정신

연곤평에 해가 기울기 시작하여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갈 즈음, 이미 승패가 갈린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애당초 유불리를 잰 다음 이기고자 시작한 싸움이 아니었다. 오로지 의(義)에 부끄럽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화살은 이미 떨어졌지만 그들은 맨주먹으로 적과 맞서고 있었다. 타는 듯한 붉은 석양이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오자 연곤평 벌판은 붉게 물들어 갔다. 1592년 8월 18일 2차 금산 전투가 끝났다. 조헌(趙憲)과 그 휘하 700여 명의 의사(義士) 그리고 영규대사와 승병들이 그렇게 스러져 갔다. 한 달 전에는 불과 5리 남짓 떨어진 눈벌에서 고경명과 휘하 의병들 역시 이렇게 스러져갔다.

냉정하게 전술적 이해득실만 따졌다면 싸울 수 없는 전투였다. 군세의 대소와 지리적 유불리를 일일이 재 가면서 싸움을 피하거나 미룰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되냐, 안 되냐가 문제가 아니라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였던 것이다. 금석에 새겨진 대로 그들의 몸은 그렇게 부서졌지만 그 기운은 하늘로 뻗쳐 올라가 결국 왜군의 호남 진격을 막아냈다.


숱한 역사의 변곡점에도 그 의는 이어져

그들의 부서진 몸을 수습해 연곤평 언덕자락에 무덤을 만들었는데, 이곳이 ‘칠백의총(七百義塚)’이라 이름 붙여졌다(조헌과 영규는 옥천과 공주에 따로 묘소를 마련하였다). 1603년 ‘일군순의비’가 세워져 그들의 ‘의로움’을 금석에 아로새겼으며 1634년에는 이들에게 제향을 올리기 위한 순의단이 설치되었다. 이후 재사 같은 전각이 지어졌고 마침내 1663년 현종은 ‘종용사’를 사액하여 국가제향의 의지를 분명하게 하였다.

자체 사우(祠宇)가 있어 제향이 이루어졌던 조헌, 고경명과 달리 종용사는 조헌과 고경명, 영규대사는 물론이고 그 휘하 이름 없는 사졸까지 제향을 드렸던 사우로서 조선 후기에도 그 권위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1871년 서원철폐 때도 일부 전각은 헐렸던 것으로 보이나 완전 철폐에는 이르지 않아 순의단 제향만큼은 단절 없이 드릴 수 있었고 대한제국 시절인 1898년에도 25원의 제향비용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정도로 중시되고 있었다.

1910년 국권피탈 이후에도 금산 지역 유림을 중심으로 제향의 향불은 꺼지지 않고 이어졌으나 1940년 일본 경찰은 일군순의비와 주변 시설을 훼손하기에 이른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자 1952년 땅에 묻혀 있던 비석조각이 수습되었고 종용사 사당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 모두가 이름 없는 금산 군민의 의지였다. 400여 년 전 이름 없는 백성들에 의해 나라가 보전되었고 이제 이름 없는 군민의 노력으로 칠백의사의 사당과 제향이 다시 이어지게 된 것이다.

02.조헌 선생의 강인한 의지가 새겨져 있는 일군순의비 비문 03.올해 3월 문을 연 칠백의총기념관



기억과 교훈을 얻어가는 호국의 사적지

이후 칠백의총은 국가적으로 사적 지정과 보수정화가 이루어졌으며, 매년 9월 23일을 제향일로 지정하면서 다시금 순의제향과 위업선양이 공식화, 정례화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엄숙한 전통적인 추모와 선양 방식이 더는 일반 국민의 관심을 끌기 어려워짐에 따라, 2015년부터 유적을 정비하여 국민에게 보다 쉽고 편안하게 칠백의사의 애국정신을 소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1차적인 결과물이 올해 3월 문을 연 ‘칠백의총기념관’이다. 격식을 갖춘 전통적인 추모제향은 종용사 사당에서 유지·계승하되 ‘칠백의총기념관’은 젊은 세대에게 보다 쉽게 칠백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알릴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 제1 전시실은 임진왜란과 금산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의 경과와 개요, 이후 칠백의총의 연혁을 소개하고 있으며 제2 전시실은 조헌, 고경명 등 그 당시 인물과 관련된 보물급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전시공간 이외에 현대적인 칠백의사 추모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문헌으로 확인되는 칠백의사의 실명을 영상과 음향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제 칠백의총과 칠백의총기념관은 과거의 분노와 슬픔을 되새기는 공간에서 기억과 교훈을 찾아가는, 미래를 내다보는 호국의 사적지로 거듭나고자 한다. 출처/ 윤인수(칠백의총관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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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