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단상

정지문이 삐걱하고 열리면 이어서 또각또각 하고 부엌칼이 도마 위에서 춤을 추는 소리가 들려온다. 된장찌개가 끓어서 냄새가 진동하기 전부터 이미 도마소리에 군침이 돌며, 허기진 배가 꼬르륵거리기 시작한다.

도마 단상

어린 시절의 추억 중에서 정겨운 우리의 소리가 있다. 정지문이 삐걱하고 열리면 이어서 또각또각 하고 부엌칼이 도마 위에서 춤을 추는 소리가 들려온다. 된장찌개가 끓어서 냄새가 진동하기 전부터 이미 도마소리에 군침이 돌며, 허기진 배가 꼬르륵거리기 시작한다.

도마소리의 역사는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궁금하다.

인류의 기원과 함께 의식주가 뒤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먹을 것을 자를 때 밑에 받치는 것이 있어야 하고, 옷이나 가죽을 걸치고 여밀 수 있는 허리띠가 있을테고, 또 비나 눈을 피할 수 있는 동굴이 그 시작을 알려준다.

박물관에 가면 허리띠 장식이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도마에 대한 연구는 아직 없는 걸로 안다. 도마는 무엇을 자를 때 토막 낸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아마 도마소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힘들고 배고픈 시절을 겪은 세대들은 더욱 그러하다. 한석봉이 어머니의 도마소리에 맞추어 글씨를 쓰던 일도 귀에 들리듯 하다. 또한 도마에 오르다는 말도 있다. 무엇인가 논란거리가 되거나 끝장 나는게 확실해진 상황을 뜻한다. 도마 위의 고기가 칼을 무서워하랴라는 속담도 있다. 하자고 결심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뜻이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 무엇이 무섭겠냐. 또 도마에 오른 고기는 이미 잡혀 옴싹달싹 못하고 죽을 지경에 빠졌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대개 우리의 음식문화는 썰고 다지는 것이 많아서 도마가 두꺼워야 한다. 옛날에는 굵은 통나무를 잘라서 그대로 평면지게 다듬어서 사용하다가 나무를 두껍게 켜서 넓게 만든 것도 쓰이게 되었다. 한낱 땔감에 불과한 나무도 좋은 사람을 만나면 예쁜 도마가 만들어진다.

사람 역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변하게 마련이다. 항상 좋은 사람만 만나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거울삼아 뒤돌아보는 것도 한가지 지혜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아무 나무나 도마가 될 수는 없다. 나무가 너무 단단하면 칼날이 쉽게 무디어지면서 손목에 자극을 줄 수도 있어 좋지 않다. 너무 무른 나무는 칼집이 많이 나서 좋지 않다.

세상사가 그러하듯이 무엇이든지 적당한 게 필요하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듯이 사람도 때로는 빈틈이 있어야 한다. 도마의 재료는 단풍나무와 벚나무가 제격이다.


사진은 경주 나무공방


요즘은 호주에서 자라는 캄포나무로 만든 도마를 알아준다. 캄포도마는 하드우드와 소프트우드 사이의 도마이며 항균작용도 뛰어나다고 한다. 플레이팅 용도로 써도 되고 요리할 때 직접 사용해도 좋다. 특히 김치를 썰어도 김치물이 안 들 정도로 우수하다.

또는 호두나무나 물푸레나무가 도마로 많이 사용된다. 실리콘 도마나 스테인레스 도마도 나오지만 역시 도마는 나무 도마가 제격이다. 나무 그 특유의 텍스처를 알고 나면 결코 나무 도마를 버리지 못한다. 사람은 사람다운 냄새가 나야 하고 나무 역시 나무의 느낌이 그만큼 중요하니까.

적당한 나무는 미리 베어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푹 삭혀야 한다. 나무의 골격이 편하게 자리를 찾아갈 때까지는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런 후에 제재를 하면 나무도 톱을 잘 받아준다. 그렇지 않으면 톱도 나무도 서로 궁합이 맞지 않아서 티격태격하고 만다. 미끈하게 제재를 마친 나무는 또 한번 바람을 쐬여야 한다. 속을 다 비운다는 마음으로 혹은 산중에서 정진하는 수행자처럼. 그리고는 생김새나 무늬에 따라 윤곽을 잡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이처럼 도마를 하나 만들 때도 만드는 사람이나 나무는 서로 교감을 가지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윤곽이 나온 도마는 고운 사포로 수없이 문질러 다듬고 또 다듬는다. 다시 또 더 고운 사포로 매끈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눈을 감고 어디를 잡아도 손에 걸림이 없이 착 달라 붙는 느낌이 와야 한다. 그 위에 식물성 유지를 도포하고 나면 꼭 양수 속에서 갓 태어난 아기와 같다. 눈도 뜨지 않았지만
너무 귀엽고 예쁜 것이다. 모든 새 생명이 무릇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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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