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순력도》 속 귤 그림 이야기

겨울 향긋하고 새콤달콤한 맛으로 기쁨을 주는 귤에 보답하기 위해, 조선에서 귀하게 여겼던 진상품인 귤의 상징성과 진상 과정, 진상 후 베풀어진 귤 잔치에 대해서 《탐라순력도》 속 그림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탐라순력도》 속 귤 그림 이야기

왕에게 진상했던 귤은 이제 더이상 귀한 과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5~6월은 햐얀 귤꽃 향기가 제주 섬 전체를 휘감아 고아한 감흥을 일으키고, 10월부터는 금빛, 주황빛 과실이 침샘을 자극하여 괜한 목울대를 울린다. 매해 겨울 향긋하고 새콤달콤한 맛으로 기쁨을 주는 귤에 보답하기 위해, 조선에서 귀하게 여겼던 진상품인 귤의 상징성과 진상 과정, 진상 후 베풀어진 귤 잔치에 대해서 《탐라순력도》 속 그림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01.이형상 기획, 김남길 그림, 〈감귤봉진〉 《탐라순력도》(보물 제652-6호), 1702년, 종이에 채색, 각 56.7×36.0cm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02.이형상 기획, 김남길 그림, 〈귤림풍악〉《탐라순력도》(보물 제652-6호), 1702년, 종이에 채색, 각 56.7×36.0cm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변치 않는 마음과 효(孝)를 상징하다

귤은 고대부터 소나무나 측백나무와 같이 뿌리가 깊어 잘 옮겨 다니지 않고, 귤 꼭지가 단단해 잘 떨어지지 않는 속성을 가지며, 상록의 잎은 인간의 변하지 않는 마음인 지조와 절개를 표상하고, 순백의 아름다운 꽃은 아름다움과 청렴한 마음을 상징하는 인격화된 수목이다. 굴원(B.C. 343~277)의「귤송(橘頌)」에 의해 ‘세한(歲寒)’의 뜻을 지닌 귤은 ‘북쪽의 세한 측백’과 함께 ‘남쪽의 세한 귤목’으로 지식인들의 애호 대상이었다. 서리와 눈비를 이겨내고 싱싱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붉은 귤은 인간의 변하지 않는 단심(丹心)에 비유되기도 했다.

또한 『삼국지』 손권의 참모인 6세의 어린 육적이 원술을 만나 얻게 된 귤을 소매 속에 넣었다가 작별할 때 바닥으로 떨어진 귤을 보고 무안해하며 “늙은 어머님께 드리려고 먹지 못했습니다”라는 말로 원술을 감동하게 하여 ‘육적회귤(陸績懷橘)’이라는 고사가 나왔다. 때문에 조선시대 문자도 중 ‘효(孝)’자에는 항상 귤이 등장한다.

이러한 유래로 조선의 왕은 봉진된 귀한 귤을 종묘에 올리고, ‘황감제(黃柑製)’를 열어 시험을 치른 성균관 유생에게 귤을 하사하였다. 특히 정조는 근신에게 귤배(귤껍질 술잔)를 하사하기도 했다. 군주의 마음을 녹여 담은 향긋한 귤잔에 담긴 술은 어떤 맛이었을까? 민간에서는 큰 귤인 대귤(大橘)이 대길(大吉)과 발음이 유사하여 ‘매우 길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그림으로 그려 주고받았다.


제주 귤의 진상 과정을 그림으로 기록하다

이러한 오랜 역사와 다양한 뜻을 품은 귤을 주제로 한 조선의 그림이 있다. 숙종대인 1702~1703년 제주목사 이형상(1653~1733)이 주도하고 제주 화공 김남길이 그린 43폭의 기록화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보물 제652-6호)에 제주 귤의 진상을 위한 봉진과정을 정세하게 기록한 〈감귤봉진〉, 귤과원에서 향연을 베푸는 〈귤림풍악〉 등의 그림이 전해진다.1

먼저 〈감귤봉진〉은 제주목관아 망경루 앞 동헌의 연희각(延羲閣) 내외에서 진상할 감귤과 한약재로 쓰일 귤껍질인 진피를 확인하고 포장하는 과정을 그린 그림이다(도1). 작품 하단 화기에는 귤의 진상은 9월부터 시작하여 이듬해 2월까지 10일 간격으로 21회나 이루어졌다고 쓰여 있다.2

연희각 안에는 큰 목곽에 가득 담긴 감귤을 지위가 있어 보이는 여러 명의 남성들이 소매를 올리고 적극적으로 선별하고 있고, 관노가 선별된 귤을 소반 위에 담아 전각 가장 안쪽에 앉아 있는 목사 앞에 올리고 있다. 차양이 처진 동헌 마당에는 머리를 올린 여인들이 선별된 감귤을 가득 담아 마당으로 옮기고, 2열로 나란히 앉아 선별된 바구니의 귤을 큰 나뭇잎에 포장하고 있다.

남자들은 각종 연장으로 귤을 넣은 나무 상자를 만들고 조립하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길고 가는 짚풀과 두 줄로 묶인 폭이 넓은 마른 잎사귀 뭉치를 나르고 정리하고 있다. 작업장 주변으로 군인 및 관원들이 깃발을 세우고 정렬하고 있어 귤 선별 과정이 매우 엄격하고 진중하다 못해 경건하게 치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도3). 실제 제주특산품인 말과 귤의 진상이 잘못되어 파직된 관리가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종묘제사나 황감제에 사용되는 진상용 귤의 선별 작업이 제주 목사의 막중한 임무이며 목사는 자신의 책무를 실수 없이 수행하였다는 일종의 업무내용을 기록한 그림으로 보인다.

1. 강영주, 《탐라순력도》의 화풍적 특징과 회화사적 가치, 『《탐라순력도》의 문화재적 가치 재조명을 위한 학술 세미나』(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2020.11.20.)에서 발췌
2. 〈감귤봉진〉 하단 화기의 진상품목에는 당금귤 678개, 감자 25,842개, 금귤 900개, 유감 2,644개, 동정귤 2,804개, 산귤 828개, 청귤 876개, 유자 1,460개, 당유자 4,010개, 치자 112근, 진피 48근, 청피 30근이라 표기되어 있어 당시 제주의 감귤 종류가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03.〈감귤봉진〉 중 감귤선별 → 감귤포장 → 귤상자제작 등의 과정을 기록한 장면


귤과원에서 귤 향연을 열다

같은 화첩의 〈귤림풍악〉은 감귤진상을 마치고 제주목관아 내 북과원에서 베풀어진 잔치를 묘사한 그림이다(도2). 제주목사는 대나무로 보이는 울타리로 둘러싸인 과원 중심에 자리 잡고 악공과 가녀의 노래를 듣고 있다. 빨갛고 노란 과실로 보아 다양한 종류의 감귤이 한 과원에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노란 귤은 금칠을 해서 왕에게 진상했던 귀한 과일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시대 왕공 사대부는 자신의 거처나 소유지를 배경으로 계회나 연회 등의 모임을 갖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러한 회화경향이 실경산수화와 진경산 수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상기할 때 화공 김남길은 제주에서 최고 높은 관료인 목사의 유거공간을 사유지로 봤으며, 귤의 상징성을 인식하고 있던 과원 연향의 문아한 생활을 보여주는 산수화풍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여행에 성수기 비수기가 없어졌다. 그럼에도 5~6월 귤꽃 향기가 제주를 감쌀 때 ‘제주가 가장 향기로울 무렵’이라는 걸 아는 육지인은 드물다. 그리고 지금 다양한 귤목이 숲을 이룬 숙종대 제작된 43폭 《탐라순력도》의 중심 장소인 제주목관아에는 귤을 선별하던 망경루와 잔치를 열었던 귤 과원이 망부석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출처: 강영주(제주공항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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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