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에 들어온 기독교 : 경교-네스토리우스교

[신라시대에 들어온 기독교 : 경교-네스토리우스교]

네스토리우스교는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368-450)의 양성설을 따르는 기독교의 종파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어 존재했다고 생각을 했으며, 마리아의 신모설을 반대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기독교로부터 이단으로 규정이 됩니다.
이후 네스토리우스교의 신도들은 동양으로 널리 퍼지는데, 특히, 페르시아를 기점으로 동방으로 나아갑니다.
페르시아에서는 토착종교인 조로아스터교와 갈등이 생겼으며, 얼마 후 이슬람교의 박해로 인도 및 중앙아시아로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네스토리우스교는 인도를 거쳐 당나라 때에는 중국까지 진출(635년)을 하는데, 당나라 사람들을 그들의 종교를 경교라고 불렀습니다. 당나라에서 크게 융성한 네스토리우스교는 당나라 황실에서도 환영을 받았으며, 250년간 몇 만명의 신도를 포섭할 정도였다고 하니, 불교 못지않은 지위를 인정받은 듯 합니다.

일본의 경우 <속일본서기> 성무천황기를 보면 783년 당나라사람 황보가 경교선교사 밀리스를 동반하여 천황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나라에서의 경교는 ‘회창법란(845)’과 ‘황소의난(878)’등 일련의 배타적인 소요에 휘말려 중국 본토에서는 거의 소멸되고, 잔존세력들이 몽골, 만주등 변방지역으로 흩어집니다.

발해의 팔련성 제2절터에서 발견된 삼존불에는 십자가같은 것을 매단 목걸이가 보이고,
(발해 팔련성 삼존불)

러시아 연해주의 아브리코스절터에서도 경교 십자가가 새겨진 점토판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브리코스절터 경교십자가)
이들은 발해에 경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아직은 확증하기 어렵습니다.

신라에서도 경교의 유물들이 발견(약 7~8세기경 추정)되는데, 1965년 경주 불국사 경내에서 출토된 돌십자가와 2점의 철제십자문장식, 성모상입니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특히, 돌십자가는 좌우상하의 길이가 거의 대칭으로 십자가의 5형중 초기 십자가형인 그리스형에 속합니다.

<삼국유사>에는 7세기말 고승인 혜통에 관한 글이 있는데, 그가 ‘마귀와 외도(外道)를 모두 서울에서 멀리했다’라는 기사가 나옵니다.
여기서의 ‘외도’란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를 뜻하는데, 당시 새롭게 접한 다른 종교란 경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혜통은 일찍이 중국 당나라에 들어가 밀교의 조사를 스승으로 섬겼는데, 그의 천거로 고종 딸의 병을 주술로 치유해준 덕분에 고종과 가까웠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고종은 경교를 정식으로 받아들인 태종에 이어 당에서 경교를 중흥시킨 장본인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주에 경교사를 짓도록할 정도로 경교에 경도된 군왕이었습니다. 이러한 고종과 친분관계를 맺고있는 혜통으로서는 당에 공전된 경교와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고, 그 내막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외도’란 곧 이 경교를 지칭하는 것이며, 그러한 외도를 ‘서울에서 멀리했다’는 것은 경교가 신라 안에 이미 들어와 있었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국유사> 중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전설이나 신화와 유사한 내용들이 발견됩니다.

예컨대, 사량리에 있는 알영정가에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어린 계집애를 낳았다는 전설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내용과 비슷하며, 태종대왕 때 청개구리 수만마리가 나무 위에 나타나자 놀란 서울시민들이 달아나다가 100여 명이 죽고 많은 재물을 잃었다는 기사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개구리 소동과 흡사한 점이 있습니다.

<삼국유사>와 <구약성서>에 나오는 전설들간에 어떤 상사성이 있다는 것은 인정되나, 아직은 연구의 미흡으로 인해 그 상관성 여부는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개화시기 급속도로 발전하는 한국의 기독교를 보면서 서양의 선교사들은 그 분석에 들어갑니다. 특히, 미국북장로교 소속의 로드스는 1933년 ‘조선기독교회약사’라는 서적을 간행하는데, 서적에서 한국기독교사는 경교에서 시작을 하여, 천주교를 거쳐 개신교에 이르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는 최근 백년동안 한국만큼 개신교가 급속히 발전된 곳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며, 한국에서의 40년 동안 개신교 발전은 다른 나라의 백년통계보다 나은 성적을 보이고 있는 원인으로 경교에 뿌리를 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기독교를 연구하면서 이미 경교까지 같이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교 사찰내에 기독교 유물. 결국 서로다른 문화의 포용으로 보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혹시 우리 정치권은 생각과 사상이 다른 상대 정파를 포용할 수는 없는 것인지?》

문헌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종교/사상론-선교사들의 한국교회사 연구),
한국사데이터베이스(신편한국사-발해의 문화와 발해사인식의 변천)
정수일 교수의 ‘문명교류’,
네이버지식백과,
소련학자 샤프쿠노프의 ‘발해국의 역사와 문화’,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사이트.

기사출처 : 이경덕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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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