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아내가 병상의 남편을 위로하다

늙은 아내가 병상의 남편을 위로하다

나꿀라마따 이야기 ①


삽화=마옥경.

여보,
방금 의사가 다녀갔습니다. 긴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내게 들려준 그의 말은, 노환이라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고 누구나 겪어야 하는 아픔이라는 뜻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당신은 침상에서 일어나는 걸 무척 힘겨워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베개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런 순간을 상상해 왔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허탈하기까지 합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요?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온 지 60년도 훌쩍 넘었습니다. 나꿀라를 낳고 기르며 살아온 세월, 그리고 자주 절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그 그늘에서 쉬었다 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당신은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이들의 떳떳한 아버지로, 아내의 든든한 남편으로 당신은 살았습니다. 당신은 부지런히 일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경제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일을 하고 돈을 벌어오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틈만 나면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가르침을 들으러 가는 자리에 혼자서만 가지도 않았지요. 꼭 나와 함께 했습니다. 맑고 깨끗하고 달콤한 감로법문을 부부가 함께 들어야 한다는 것이 당신의 신조였지요.
우리는 이렇게 일생을 잘 살아왔는데, 역시 생로병사의 수레에 올라탄 목숨인지라 정해진 길을 따라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종착지가 다가오면 우리는 늘 불안합니다. 게다가 늙고 병들어 쇠한 몸과 마음이라면 그 불안은 더 커집니다.
평생 흔들리지 않고 평온하게 살아온 당신.
그런데 오늘 당신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여보, 근심을 품은 채 이승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임종은 부처님도 질책했지요. 마음을 편하게 가지십시오.

자, 말해보세요.
무엇이 두려운 가요?
그 속마음을 말하는 것도 망설여지나요?
그럼 내가 당신의 마음을 읽겠습니다.

지금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 내가 자식들에게 홀대를 받을지도 몰라 그게 걱정스러운가요? 자식들이 홀로 남은 늙은 어미를 돌보지 않고 심지어는 멸시하고 학대할까 두려운가요? 마음 놓으세요. 그런 걱정은 접으세요.
자식들이 어미인 나를 홀대할 일은 전혀 없겠지만 나 또한 내 힘으로 나의 생계는 책임질 수 있습니다. 나를 몰라요? 당신은 나와 있을 때 항상 편안해 하였잖아요. 그 믿음을 놓지 말아요.
집안의 가장이 없어져서 살림살이가 엉망이 되어버릴까 걱정인가요? 나는 수십 년 가정을 지켜온 사람입니다. 내게는 실 잣는 기술도 있잖아요. 실을 잣고 천을 짜서 생계를 꾸릴 자신이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와 함께 지내왔던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집안을 잘 꾸려나가겠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런 걱정을 품은 채 임종하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 지금 또 뭐가 불안한가요?
만에 하나, 당신의 몸에서 온기가 식기 무섭게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될까봐 불안한가요? 그런 걱정도 접어두어요. 당신을 만나 긴 세월을 함께 지내오면서 우리는 누구보다 다정한 부부였습니다.
젊었을 때는 당신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서로 사랑해서 자식을 낳고 기르며 나이를 먹고, 중장년을 지나 이렇게 노년이 되었지요. 어느 사이 당신은 내 인생의 유일한 친구가 됐습니다. 그런 내가 어찌 다른 이를 당신 자리에 두겠어요?
언젠가 당신과 함께 부처님을 뵈었을 때의 일을 기억해보세요. 그날 우리는 부처님에게 우리의 부부애를 자랑하였지요. 심지어 이렇게 여쭌 적도 있습니다.
“부처님, 우리 부부는 십대에 부부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사이좋게 잘 지내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도 이렇게 행복하게 함께 지내고, 죽어서 다음 생에도 부부로 만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 될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평소 애욕의 허망함을 꾸짖는 분이지만 정 깊은 우리 부부를 보시고 찬탄하셨지요. 그리고 이런 조언도 해주셨습니다.
“이번 남은 생도 행복하게 지내고, 다음 생에도 함께 부부로 살아가고 싶으면 네 가지를 함께 하십시오. 같은 신앙을 지니고, 함께 계를 받아서 잘 지키고, 부부가 함께 다른 이에게 넉넉하게 베풀고, 지혜를 쌓는 일도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면 두 사람은 언제 어느 생에서나 부부로 살아가며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니 근심을 품은 채 임종하지 마세요.

당신이 떠나가기 무섭게 부처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릴까 그게 불안한가요? 그런 불안한 마음도 놓아버리세요. 우리는 언제나 함께 부처님을 찾아뵈었지요. 출근을 하듯이 그렇게 했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부처님을 보면 공손하게 합장을 하며 가르침을 청했는데 우리 부부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는 부처님 손을 어루만지면서 “아들아!”라고 불렀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랬을까 싶네요. 당시 스님들도 이런 우리 부부 모습에 당황했고, 급기야 부처님에게 “저들 부부더러 부처님을 ‘아들아’라고 부르지 말게 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하게 만들었지요. 하지만 부처님은 뭐라고 답하셨던가요?
“저들 노부부를 가만 내버려두어라. 저들은 아주 오랜 전생부터 나의 부모님이셨다. 지금 생에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랜 세월 나를 부르던 습관이 남아 있어 나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이니 그대들은 괘념치 말아라.”
우리는 집에 가듯이 절에 갔고, 사랑하는 외아들을 대하듯이 부처님을 대하며 지내왔지요. 그런데 지금 당신이 세상을 떠난다고 해서 내가 절을 향하는 발걸음을 돌리겠어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근심을 품은 채 임종하지 마세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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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