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리랑카 켈라니아사원에서 경을 읽고 있는 노인의 모습. 사진=김용섭 |
임종을 앞둔 당신을 바라보노라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왔네요. 당신, 지금 마음이 어떤가요? 나이 들어 병마저 깊어져 침상에 누운 채 일어나지 못한 당신에게 “반드시 쾌유할 것”이라고 격려하기 보다는 그저 마음 편안하게 갖기를 권하는 내가 행여 원망스럽지는 않습니까?
두려운가요?
불안한가요?
안타까운가요?
그럴 겁니다. 그럴 겁니다.
하지만 여보, 지금 이렇게 당신이 누운 자리, 언젠가 지금 이 병석에는 내가 누울 것이고, 또 언젠가 이 자리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빠짐없이 누울 것입니다. 당신의 지금 이 모습은 곧 내 모습이요, 저들의 모습입니다. 당신 혼자만 가는 길이라 하여 절망하거나 두려워마세요.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태어난 존재는 쇠약해지고 병들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마련이라는 것을. 누구나 이 길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지금 당신이 그 길을 걸어가고 있고 나 또한 가고 있지요. 아무도 대신 걸어가 줄 수 없는 길. 그러니 우리는 당당하게 생로병사의 길을 걸어갑시다. 부처님도 말씀하셨지요. 몸은 병들더라도 마음은 병들지 말라고요.
나는 당신과 만나 오랜 세월 결혼생활을 이어오면서 행복했습니다. 자식을 낳고 살림을 일구며 지내온 시절은 참으로 보람이 있었지요. 무엇보다 당신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가르침을 들었던 일은 가장 큰 행복이었어요. 절에 가서 가르침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는 차분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요. 자식을 기르고 살림을 하는 일이 가정주부의 하루 일과였지만 내 시간은 틈틈이 부처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채워졌습니다.
당신의 아내인 나 나꿀라마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보, 당신은 지금 무엇을 걱정하고 있나요?
행여 당신은 자신이 죽고 나면 아내가 계를 잘 지키지 않고 흐트러진 생활을 할까봐 그게 걱정인가요? 그런 염려는 내려놓으세요. 이 세상에는 여성불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계를 잘 지키기로 으뜸인 사람이 바로 나예요. 내 말이 의심스럽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부처님을 찾아뵙고 여쭤보아요. 그러니 그런 근심을 품은 채 임종하지 말아요. 근심을 품은 임종은 부처님도 질책하셨으니까요.
여보, 혹시 당신은 내가 마음의 번뇌를 완전히 다스리지 못하여 어리석고 안타까운 생각을 할까봐 염려스러운가요? 그런 걱정은 마세요. 나는 부처님의 여성 재가 신자들 가운데 마음의 번뇌를 완전히 다스린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지금 당장이라도 부처님께 나아가서 확인해 보아도 좋습니다. 그러니 그런 근심을 품은 채 임종하지 말아요. 근심을 품은 임종은 부처님도 질책하셨으니까요.
부처님을 따르는 숱한 제자들이 있습니다. 출가한 스님뿐만 아니라 당신과 나와 같은 재가신자들도 언제나 부처님 곁으로 달려가서 가르침을 청해들었지요. 우리는 부처님에게 복을 달라고 빌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부처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부처님은 복을 받고 싶으면 선업을 지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 당신께서 복을 주고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바르고 선량한 일을 하면 당연히 행복한 결과가 따라온다고 강조하셨지요. 그와 반대의 경우도 말씀하셨습니다. 자신만 생각하고 행여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괴로운 결과가 따라온다고 하셨지요. 부처님이 사람들에게 죄를 묻고 벌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악업을 지으면 당연하게 따라오는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될 뿐이라고 하셨지요. 그러니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선업을 짓기를 부처님은 우리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당신과 나는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가 지어야 할 선업이 무엇인가를 생각했고 부지런히 실천했지요.
하지만 그것으로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선업을 지어서 즐거운 과보를 받으며 이생을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라지 않았지요. 아무리 선업과 그에 따른 행복이 즐겁다 해도 덧없는 목숨 앞에 우리는 불안하게 마련이고, 그 불안감에 또다시 선업보다 악업을 짓게 됩니다. 악업에 따라오는 괴로운 과보 앞에 힘들고 서러워서 또 울부짖고 몸부림치고….
그래서 우리는 한 번 더 마음을 내었지요. 당신, 그렇지요? 우리는 세간을 벗어나는, 출세간법문을 청했습니다. 부처님은 재가불자들 중에서도 스님 못지않게 수행하는 이들을 위해 진지한 가르침을 베푸셨지요. 우리는 부부가 함께 수행의 길에 들어섰고, 어느 사이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도반으로 거듭났지요.
![]() |
스리랑카 켈라니아사원에서 경을 읽고 있는 노인의 모습. 사진=김용섭 |
나꿀라아버지, 여보.
그런데 지금 당신은 또 무엇이 불안한가요? 혹시 당신은 내가 부처님의 가르침과 진리에서 굳건하게 서지 못했고, 여전히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데에 다른 사람을 스승으로 섬기며 그 말을 따를까 염려스러운가요? 그런 걱정은 말아요. 나는 부처님의 여성 재가 신자들 가운데 가르침에 확고하게 섰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닦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내 말이 의심스럽다면 지금 당장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확인해보아요. 그러니 그런 근심을 품은 채 임종하지 말아요. 근심을 품은 임종은 부처님도 질책하셨으니까요.
여보,
당신은 무척 지혜로운 사람이었어요. 가정에만 얽매여 있던 내가 부처님 가르침에서 거듭 날 수 있었고, 부처님도 인정하는 재가여성불자가 된 것은 다 당신 덕분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를 나눴지요. 집안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가정사를, 그리고 부처님의 법문을 음미하면서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었지요. 부처님 가르침에서 어떤 부분이 이해되지 않으면 나는 스스럼없이 당신에게 물었고, 당신은 자신의 생각을 내게 들려줬지요. 당신 역시 내게 의견을 물었고 내가 들려주는 대답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습니다.
내게 귀를 기울이는 당신, 내게 살갑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당신, 그 정겨운 모습을 보노라면 부처님께서 당신을 가리켜 친절하기로 으뜸가는 재가신자라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다정하고 지혜로운 당신을 볼 때마다 내게는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넘쳐흘렀습니다.
하지만 지금 임종의 자리에서 당신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니 이게 웬일입니까?
마음을 놓으세요.
나는 당신의 아내, 당신의 누이, 당신의 도반입니다.
내게 평소처럼 힘을 주세요. 그게 당신이니까.
아, 그래요.
지금 당신의 표정에는 다시 예전처럼 아름다운 미소가 흐릅니다. 그 모습으로 우리 작별해요. 당신의 가장 아름답고 편안한 이 얼굴을 영원히 기억하겠어요.
지금은 당신이 베개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지만 이 모습은 내일 내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얼마나 잘 살아왔습니까. 이생에서 맺은 부부의 인연이 도반의 불연으로 거듭 나고, 이렇게 삶의 끝자락을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
초기경전에 등장하는 나꿀라부모의 이야기는 <앙굿따라 니까야>에 실려 있습니다. 병석에 누워있던 늙은 남편은 임종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하였지만 아내의 이 말을 듣고 두려움을 말끔하게 씻어내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격려에 힘입어 건강을 되찾고 부처님을 찾아가 아내의 이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를 말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나꿀라마따의 말대로 그녀가 재가여성불자로서 진리의 길을 걸어갔음을 인가했습니다.
예리하고 명석한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가장 인간적이고 본능적인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임종의 자리에 누운 늙은 남편을 위로하고 격려해준 아내, 경전에서 만나본 참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울러 부처님 재세시, 재가여성신도들이 당당히 수행의 길을 걸어갔으며 그 본보기가 바로 나꿀라어머니(나꿀라마따)임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