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3.1만세운동의 현장을 찾아가다

필자는 우리나라 3대 3.1운동의 하나인 안성과 안성 3.1운동 기념관을 찾았다.


안성 3.1운동기념관

https://www.anseong.go.kr/tourPortal/41/main.do



안성군의 만세시위운동은 3월 30일 안성읍내의 시위를 발단으로 죽산·원곡·양성 등으로 평화적인 시위운동이 확대되었다. 이 평화적 시위가 전국 3대 만세시위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폭력적인 운동으로 전환하게 된 것은 4월 1일 원곡면과 양성면의 연대시위에서 시작되었다. 3월말 이유석(李裕奭)·이양섭(李陽燮)·이덕순(李德順)·이근수(李根洙)·최은식(崔殷植)·홍창섭(洪昌燮) 등이 4월 1일을 기하여 양성면과 원곡면 연대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이양섭이 원곡면을, 이근수가 양성면의 지휘 책임을 각각 맡기로 했다. 4월 1일 오후 8시경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있던 원곡면사무소에서 1,000여 명의 시위군중에게 홍창섭이 서울에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고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후, 횃불을 들고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친일면장을 끌어내고 원곡면 주재소를 습격한 뒤 양성면으로 행진해갔다. 행진 도중 양성면과 원곡면 경계 언덕에 이르러 만세시위 주동자들은 원곡면 내 경찰주재소·우편사무소 등을 습격하고 일본인 거주자들을 축출할 것을 결의했다.









한편 양성면에서 면민 수백 명이 이근수 등의 지휘하에 9시 30분경 경찰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양성면으로 진입하는 원곡면 시위대와 합류했다. 연대시위군중들은 다시 양성면 주재소로 가서 이를 방화·파괴한 다음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호적원부를 꺼내어 소각하고 기물을 파괴했으며, 면장을 포박하고 면사무소를 불태워버렸다. 또한 양성면에 거주하면서 고리대금업을 하던 일본인 다카[隆秀知]의 상점을 습격·파괴했다. 이들 시위군중들은 4월 2일 새벽까지 일대를 돌면서 시위를 전개하다가 각각 해산했는데, 원곡면 시위군중들은 원곡면으로 돌아와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해산했다. 일제는 4월 2일 오전에 수많은 병력을 이끌고 나타나 안성군 내 각 부락민을 닥치는 대로 체포해갔다. 그후에도 2개월에 걸쳐 3차례나 일본군을 파견하여 주민 24명이 죽고 124명을 투옥하는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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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