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스님과 세월호·용산 참사 유가족들. 유가족들이 이날 법회에 동참했고, 명진스님은 이들을 참석대중들에게 소개했다. |
명진스님(단지불회 회주, 전 봉은사 주지)이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길거리 설법을 했다. 22일 오전 수원 화성행궁 건너편에 있는 여민각 앞. 이날 법회는 용주사신도비대위(위원장 장명순)와 경기불교청년회(회장 송병렬)가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기 위해 공동으로 주최했다. 용주사신도비대위 등은 매월 한 차례 ‘시민과 함께 하는 열린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법회는 용주사신도비대위 회원들과 단지불회 회원, 직선제 대중공사 허정스님, 이윤성 목사, 세월호‧용산 참사 유가족, 우희종 바른불교재가모임 공동대표(서울대 수의대학장), 허태곤 참여불교재가연대 상임대표, 김형남 변호사, 신학림 미디어오늘 전 대표, 오기현 한국PD연합회 회장 등 150여 명이 동참한 가운데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사회를 본 송재형 용주사신도비대위 사무총장은 명진스님의 법문에 앞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한완상 전 총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박재동 화백,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영화감독 정지영, 영화배우 문성근 씨 등이 이날 법회를 응원한다는 뜻을 알려왔다고 전했다.
법회 참석자들이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있다. |
“미안함과 격려, 고마움을 보낸다”
“정법 수호를 위해 싸우면서 이 자리를 만든 용주사신도비대위에 미안함과 함께 격려, 고마움을 보낸다”고 말문을 연 명진스님은 ‘고닷타경’을 인용하며 법문을 시작했다.
“정의를 따르다가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면서 이익을 얻는 것보다 낫다.
지혜롭지 못하면서 높은 평판을 얻는 것은 지혜가 있으면서 평판을 얻는 것보다 못하다.
어리석은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꾸지람을 듣는 것보다 못하다.
욕망에서 얻어지는 쾌락보다 욕망을 벗어나 자기를 단련하는 괴로움이 낫다.”
명진스님은 1시간여의 법문에서 최근 조계종으로부터 제적의 징계를 당한 것에 대한 소회, 출가의 의미를 새겼다. 자승 총무원장을 향한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조계종의 부패한 선거문화의 대안으로 제기되는 직선제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특히 성찰을 통한 보살행을 강조했다.
“징계? 유쾌하다. 웃음이 나온다”
명진스님은 징계와 관련된 심경을 밝히기에 앞서 송담스님의 탈종에 대해 “당신이 탈종한 것이 아니라 조계종의 범계승에 대한 엄한 질책을 통해서 조계종을 파면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명진스님은 “사람들은 내가 제적을 당했으니 굉장히 침울해하고 마음속으로 상처받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린다. 즐겁다고 하면 욕먹겠지만, 사실 저는 유쾌하다. 걸레들이 모여 있는데서 수건은 빠지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50년 몸담은 조계종 떠난다고 하면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재심 신청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명진스님은 “제적은 늦은 나이의 나를 다시 출가시켜준 선지식의 작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계종이 제시한 징계 사유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징계 사유의 첫 번째가 종정스님을 비하했다는 것이라고 밝힌 명진스님은 “종정스님을 욕한 적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후 유가족들이 피눈물을 흘릴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셔서 손을 잡아주고, 고통 앞에서 어떻게 중립을 지키느냐고 했다. 그 말이 나오는 게 선문답이다. 이듬해 광화문에서 무차대회 열린다. 그 행사에 국가예산 7억, 종단 예산, 동화사 본말사 돈 등 40억원을 들였다. 네팔에서 지진이 나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어느 법회 자리에서 일회성 법회 말고 그 돈을 네팔에 보내는 게 의미 있다는 얘기를 했다. 이게 어떻게 징계 사유가 되나?”
명진스님은 해인사에서 성철스님, 법전스님과의 법거량을 소개하면서 징계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명진스님은 1979년 동안거 해제 때 성철스님을 향해 “성철의 목을 한칼에 쳐서 마당 밖으로 던졌습니다. 죄가 몇 근이나 됩니까? 물었다”고 했다. “나는 잘 모르니 성철에게 물어라”고 답한 법전스님에게는 “죽음이 찾아와도 성철에 물으시겠습니까. 성철의 대가리가 깨지고 법전 창자가 터집니다”라고 소리치고 어간문을 박차고 나왔다면서 “그때도 멀쩡한 내가 제적을 당했다고 생각하니까 웃음이 나온다”고 말했다.
명진스님은 정작 징계를 할 사람에게는 징계를 하지 못하는 것이 조계종의 현실이라면서 “왜 그럴까”묻고, “징계할 사람이나 징계 받을 사람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는 지옥을 덮고도 남을 것이다. 인과는 분명히 있다”고 답했다.
용주사신도비대위는 법회가 열린 여민각 주변에 성월스님의 은처자 의혹을 제기하는 현수막을 설치했다. |
“직선제는 궁지여책…자승스님은 바라이죄”
명진스님은 이날 법문에서 “정신적인 지도자 되기 위해 돈을 쓴다?. 본사주지 하는데 돈을 쓴다? 총무원장 하는데 돈이 50억 들어간다? 조계종에 만연돼 있다”면서 ‘돈선거’가 문화가 될 정도로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돈 선거가 이뤄지는 것은 ‘욕망의 질주’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직선제에 대해서는 궁지여책((窮之餘策)이라고 했다. “직선제 하겠다는 것은 매수할 수 없게 숫자를 늘리자는 것이다. 창피하다. 돈 매수를 막기 위해 직선제하자는 것이니 얼마나 답답하냐”면서 직선제 불가피론을 폈다.
재임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승스님에 대해서는 바라이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재임 안 하겠다고 국민들과 불자들에게 공언을 한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한 거짓말은 바라이죄다. 바라이죄는 불통참회, 참회도 안 된다. 승복을 벗겨서 내쫓는 것이다.”
“손에 피를 묻히며 살생하는 수행자가 있다”
명진스님은 “부처님께서, 비구가 세상을 떠나 가사를 입고 고독하게 사는 것은 편안하게 먹고 살자는 것도 아니고, 다음 생에 좋은 세상에 태어나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살아가는 삶 속에서 고통의 실상을 꿰뚫어보고 끊임없이 사유하고 고뇌하는 수행을 통해서 세상을 맑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출가의 의미를 새겼다.
“열아홉 살에 절에 들어온 후 한 번도 후회한적 없다”고 밝힌 명진스님은 욕망을 떠난 자리가 바람직한 출가자상이라고 강조했다. “머리 깎고 승복 입는 게 출가 아니다. 출가는 내 마음 속에 항상 어질고 세상에 대한 연민, 나를 향한 성찰, 돌이켜봄. 왜 살까, 어떻게 살까. 내 행위 옳은 걸까, 이런 끝없는 물음 속에서 나를 단련시켜 나가는 것, 지혜를 얻어가는 과정을 밟아가는 사람들이 출가자입니다. 제가 만약에 잠깐이라도 욕망으로 달리면 중이 아니다. 여러분도 똑같다. 산다는 게 과연 뭘까, 어떻게 살까, 이런 물음을 던지면 머리를 기르고 있더라도 그 생각이 일어나는 자리가 출가의 자리고, 욕망을 좇아가면 세속의 자리다.”
명진스님은 계속해서 “수행하는 속인이 있고, 도살장에서 손에 피를 묻히며 살생하는 수행자가 있다”면서 “백정이 소를 잡으면서 이 생명의 근원 어딜까? 내가 잡는 소, 소를 잡는 나의 운명은 뭘까? 성찰하고 연민을 느끼며 안타까워한다면 그런 사람이 출가자다. 높은 자리에 앉아 금가사를 입고, 머리를 깎고 신도들에게 절을 받으면서 불전함 속의 돈을 본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출가자인가. 욕망으로 가득 찬 마구니 종자일 뿐이다”고 말했다.
“성찰…보살이 되어주시길 바란다”
명진스님은 성찰하는 삶을 당부했다. “내 마음 속에는 최순실이 없는가, 박근혜는 없는가. 나는 물질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집착으로부터 벗어났는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는 분노하지 않았는가. 자신에 대한 성찰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변화되어도 우리는 욕망에 빠져서 박근혜나 최순실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명진스님은 또 “질주를 멈추지 못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하늘에서 황금비가 쏟아져도 너희들의 욕심 만족시킬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안 그럴까. 멈출 수 있을까
“라고 물었다.
명진스님은 끝으로 “옳은 길을 위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중에도 성찰하는 불자가 되기 위해 이 자리 모였다. 소중한 인연이다. 부처님이 오도를 하시고 다섯 명의 제자들을 모아놓고 법회를 했던 그 자리와 버금갈 정도의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지혜를 증득해서 이 세상의 어려운 사람을 향해서 노력하는 보살이 되어주시길 바란다”는 당부로 법문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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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셔터가 내려진 경기불교문화원. 애초 법회는 이곳에서 봉행할 예정이었다. |
이날 법회는 애초 수원 팔달문 옆에 있는 경기불교문화원 법당에서 봉행키로 되어 있었으나, 경기불교문화원이 석연치 않은 ‘내부 문제’를 이유를 들어 장소 사용을 못하게 했다. 이에 대해 송재형 사무총장은 “스님 초청법회를 가로막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경기불교문화원은 철제봉으로 된 출입문을 내리고 자물쇠를 채워 법당 출입을 봉쇄했다. 문화원의 한 관계자는 법회 장소 이동을 알리는 메모를 붙이는 것에 대해 “경찰에 신고하겠다”면서 과민반응을 보였다.
경기불교문화원이 입주해있는 건물의 소유권자인 참여불교재가연대 산하 불교아카데미는 경기불교문화원의 처사가 매우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조만간 퇴거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경기불교문화원은 이 건물에 무상 입주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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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가 열리는 동안 은처승 비호하는 자승 총무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두른 황소가 화성행궁 광장을 거닐고 있다. |
명진스님의 거리 법회가 끝난 뒤, 오후에는 직선제 실현을 촉구하는 촛불법회가 이어졌다. ‘총무원장 직선 실현을 위한 대중공사’는 오후 5시 30분부터 같은 장소에서 총무원장 직선제 실현을 촉구하는 4차 촛불법회를 봉행했다. 건너편 화성 행궁에서는 연등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촛불법회 참가자들은 연등축제를 보기 위해 화성 행궁을 찾은 시민들에게 종단의 기형적인 의사결정 구조 현실을 알리며 직선제 실현 운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호소했다. 릴레이 발언을 이어가며 “불교 적폐청산 직선제가 희망이다” 구호를 외친 이들은 7시 30분 연등축제 시작에 맞춰 법회를 회향했다.
편집부 : 기사출처 (불교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