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불멸]
사람에게 영혼이 없느냐? 하는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어왔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면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생을 존경할 것이고 만일 영혼이 없다면 세상은 무윤(無倫)하여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 생각은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단지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생각이 만물의 척도가 되어, 하늘과 땅의 구별을 내는 까닭이다.
『옛날 가섭이라는 동녀가 구살라국 사파헤촌에 있을 때 「다른 세상도 없고 또 다시 태어남도 없고 선악의 갚음도 없다.」고 하는 폐숙(幣宿) 바라문이 찾아왔다.
폐숙이 가섭 동녀에게 물었다.
「나는 내세를 믿지 많고 또 다른 세계도 믿지 않는다. 따라서 인과응보도 있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동녀가 반문했다.
「그대는 저 해와 달을 보는가?」
「본다.」
「그것은 이 세상의 것인가? 다른 세상의 것인가?」
「다른 세상의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대는 다른 세상이 없다고 하는가?」
「가섭 동녀여, 나의 친척 가운데 무서운 병을 않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선을 지으면 천당에 가서 나고, 악을 지으면 지옥에 가서 난다.> 하여 나는 그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만일 그대가 죽어 다른 세계에 가서 나거든 반드시 나에게 또 거처를 알려다오> 하고, 그런데 그는 결국 오지 않고 말았다.」
「폐숙이여, 들으라. 어떤 사람이 죄를 지어 왕에게 끌려가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에 임했을 때 잠깐만 고향에 돌아가 처자권속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올 터이니 놓아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면, 그를 놓아줄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또 어떤 사람이 변소에 빠져 고통하는 것을 보고 그를 건져 몸을 깨끗이 씻기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음식을 주며, 또 좋은 집을 마련하여 그로 하여금 길이 향락을 누리게 하여 준다면 그가 다시 변소에 빠질 생각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다. 죽은 자가 태어나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것이 꼭 이와 같다.」
「아니 그렇지 않다. 내 친족 가운데 살생과 도둑질, 간음, 거짓말을 아니하여 평생에 죄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하고 약속하기를 <내가 도리천에 가서 나면 꼭 와서 자네에게 알려 줌세>하고 갔는데, 간 지 벌써 30년이 넘었으나 꿈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브라만이여, 생각해 보라. 도리천의 하루 낮 하루 밤의 수명은 인간세상 100년에 해당한다. 만일 그가 도리천에 태어나는 즉시 온다 하더라도 일주야는 묵게 될터인즉, 어떻게 그 사람이 그대를 만나볼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겠다.」
「또 브라만이여! 어떤 장님이 나면서부터 장님이 되어 온 이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과 가지가지의 색, 산수를 보지 못하는데 그를 이야기해 준다 해서 꼭 그와 같이 믿을 수 있겠는가?」
「믿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대 생각도 꼭 그와 같다.」
「아니다. 동녀여, 그래도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옛날 어떤 악한 도적을 잡아 죽였는데, 나는 그 놈의 영혼을 아주 잡아 없애기 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놈의 가죽을 베끼게 하고. 또 살을 여미고 뼈를 찧고 그것을 가마솔에 넣어 뚜껑을 덮고 진흙으로 그 뚜껑을 발라 영혼이 나가지 못하게 지키라 하였는데 그자의 혼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고 말았다.」
「브라만이여, 당신은 꿈을 꿀 때 꿈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보는가?」
「본다.」
「그러면 당신이 그 꿈속에서 보고 느낀 것을 당신의 권속이나 몸종들도 같이 보는가?」
「보지 못한다. 그들은 나와 몸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산 사람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죽은 사람이야 더 말할 것 있겠는가? 브라만이여,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미련한 동자에게 불을 보라하고 그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주인이 나간 뒤 다른 아이들과 장난하고 놀다가 그만 불이 꺼지는 줄도 몰랐다.
늦게야 와 보니 불은 꺼지고 타다 남은 나무 조각만 식은 잿더미 위에 있었다.
그 아이는 불씨를 찾기 위하여 온 잿더미를 뒤지고 또 마지막엔 그 타다 남은 나무를 쪼개고 나무 껍대기를 벗기고 또 그것을 절구통에 넣어 가루를 만들었다.
그러나 불씨는 나오지 않았다.
주인이 와 그 어리석음을 보고 크게 꾸짖은 뒤 송곳으로 나무에 구멍을 내고 부비니 신기하게도 연기가 나다가 얼마 아니 되어 불이 일어났다. 마치 그대도 저와 무엇이 다르랴.」
「아니다. 동녀여, 내가 전날 어떤 사람의 병관을 하는데 살아서는 이리저리 팔 다리를 움직이고 않고 누웠지만, 죽어서는 전혀 그렇게 움직이지 못했다.
또 살았을 때 그 몸무게는 모두 16관이 되었는데 죽어서 달아보니 17관이 되었다.
만일 영혼이 그 안에 있었다면 살았을 때는 그 안에 있고 죽어서는 그 곳을 빠져 나갔을 것이니 더 가벼워져야 할 터인데 왜 더 무거워졌는가?」
「브라만이여, 어리석은 소리를 하지 말라. 죽은 사람을 다는 것은 마치 식은 쇠를 다는 것과 같고, 산 사람을 다는 것은 마치 달군 쇠를 다는 것과 같다. 쇠에 불이 붙으면 불이 있으므로 더 무거울 것 같지만 사실은 더 가볍다. 열의 전도가 인력을 따라 발산하는 까닭이다. 옛날 어떤 악사가 소라고동을 가지고 한번 부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보고
「그 소리가 어디서 났느냐?」
물었다. 악사가 소라를 가리키며
「여기서 났다.」
하니, 사람들은 그 소라를 만지며
「소라야, 소리를 내 보라.」
하고 외쳤다. 그러나 소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악사가 다시 들고 부니 아름다운 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졌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목숨이 있고 의식이 있고 숨결이 있어야 몸을 굽히고 펴고 바라보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브라만이여, 그대는 마땅히 그 사견을 버리고 바른 도에 나아가라.」
「동녀여, 그대의 말이 옳다. 그러나 나는 이미 단멸론사(斷滅論師)로 이름이 난 사람이다.
나는 그것으로 내 생명을 유지해 왔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이익을 추구해 왔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것을 버리고 나설 수 있겠는가?」
「동녀여, 만일 그대는 그러한 것(영혼이 죽지 않음)을 믿고 안다면 어찌하여 단 칼에 목을 베어, 이보다 더 좋은 세계에 나기를 원하지 않는가? 아마도 삶을 탐하여 죽지 못하는 것 아닌가?」
「브라만이여, 듣지 못하였는가?
옛날 어떤 여자가 남편의 재산을 탐내어 뱃속에 든 아이의 性(아들이면 재산을 주고 딸이면 주지 않는다 했으므로)을 알고자 배를 갈랐다가 저도 죽고 아이도 죽었다는 말을-」
「그렇다 동녀여, 나의 논리는 마치 그 여인의 죽음과 같구나, 나도 죽고 남도 죽이는 일, 이것은 마치 놀음을 즐기는 사람이 독약 바른 주사위를 머금은 것 같이, 조그마한 재주를 부려 귀한 생명을 죽이는 것 같구나.」
하고 곧 그에게 귀의하여 단멸론을 가지고 계 가짐을 다시는 범하지 않았다한다.』<幣宿經>
사실 이 설화는 브라만들의 사악한 견해를 타파하기 위하여 폐숙 브라만의 단멸론을 파척한 가섭 동녀의 비유설화를 빌려 쓴 것이다.
그러나 불교 그 자체는 이 단멸론 뿐 아니라 생멸거래 일이(一異) 상단(常斷)등 어떠한 이론도 용납하지 않고 진공무아(眞空無我)의 중도로서 제법실상을 현양한다.
불법은 유에도 있지 않고 무에도 있지 않으며 또 유무양변에도 있지 않아 이두변(有無兩邊)을 초월하여야 가히 열반묘심을 증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에 이르지 않았던가?
「무릇 있는 바 모든 존재가 모두 다 허망한 것이니, 만일 그 모든 존재가 존재 아님을 보면 곧 진리(如來)를 본다.」고
또「만일 색으로써 나(佛)를 보고 음성으로서 부터 구하는 사람은, 삿된 길을 걸으므로 능히 진리를 보지 못한다.」고-
조작된 모든 법은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또 번개와 같으니 진리는 항상 그 가운데 고요하여 적멸해 있으니, 불자가 이러한 도리를 알고 행한다면 결정코 불도를 이룰 것이다.
• 기사출처 : 폐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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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