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세력 생존의 기반 우리 역사 속의 국방과학기술

한국사를 관통하며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한국 국방과학기술의 역사를 알아본다.

한반도 세력 생존의 기반 우리 역사 속의 국방과학기술

역사 속에서 한반도 세력은 우수한 군사기술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영토 확장에 나서며 동아시아의 중심 세력으로써 불안정한 국제정세를 안정시켰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국방과학기술 개발에 소홀히 하였을 때는 동아시아의 주변부로 밀려났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한국사를 관통하며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한국 국방과학기술의 역사를 알아본다.


00.고구려인이 화살과 활을 싣고 말을 달리는 모습이 표현된 <고구려 말 탄 사람을 그린 벽화>,

쌍영총, 고구려 5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우리의 역사가 전개된 한반도와 만주 일대는 지리적으로 아시아 대륙 동북 지역의 다소 외진 곳이지만 지난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정세 변동의 출발점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편리한 교통과 풍부한 자원, 우수한 문화가 아우러진 지역이었으므로 다양한 세력이 성장하고 유입되었다. 대륙의 중화세력과 해양세력의 갈등이라는 현재의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를 결정지은 사건인 고구려의 멸망과 중화제국의 완성, 임진왜란과 해양세력의 도전이 모두 한반도 일대에서 벌어진 것을 보더라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중국 주변의 대부분 세력이 중화세력에 흡수 또는 복속되었던 것에 비해 격동의 공간에서 성장하였던 한반도 세력은 많은 도전과 위기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세력을 유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경이적인 사실이다. 이것이 가능하였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주변 세력에 비해 우수한 군사력을 적절히 확보하고 있었던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반도 세력은 수적으로는 적은 경우가 많았지만 유목적 전통에 기반한 뛰어난 전술 전기를 가진 기마 전투원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다양한 신형 무기를 개발, 도입하여 주변 세력을 제어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우수한 군사기술을 바탕으로 사회체제의 혁신과 함께 적극적인 영토 확장에 나서 동아시아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당시 국제정세를 안정시켰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군사과학기술 개발을 등한시하고 주변 정세 변동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경우에는 전쟁을 억제하는 것은 고사하고 전쟁의 주무대가 한반도가 되어 큰 피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에는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에서 주변 세력으로 밀려나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제정치의 방관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17세기 전반기 병자호란 당시 신형 화포인 홍이포(紅夷砲) 등을 장비한 청군에게 패배한 이후 300여 년 동안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주변부로 밀려났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픈 경험을 한 것은 주변 세력을 제어할 수 있는 우수한 국방과학기술 개발에 소홀히 한 결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01.평남대동 정백리 127호분에서 출토된 노(弩) ©국립중앙박물관

02.유통식 화기의 일종으로 조선 태종 때 만들어진 <대완구> ©국립중앙박물관



그럼 우리 역사에서 영토를 지키고 번영과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가져다 준 무기는 어떠한 것이 있었을까?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은 활과 화살, 즉 궁시(弓矢)이다. 중국에서 동이(東夷)라고 불린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활을 잘 쓰는 세력으로 알려져 왔다. 우리 민족은 북방 초원 지역에서 개발된 뿔과 여러 목재 등의 재료를 함께 붙여 크기는 작지만 탄성이 매우 높은 활을 제작하였다.

이에 더하여 우수한 기마술을 바탕으로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쏠 수 있는 전투 기술도 갖추었다. 따라서 주변의 여러 세력을 손쉽게 복속시키고 강력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기원전 1세기, 부여에서 남하한 주몽 무리가 남만주의 삼림 지역에 소국인 고구려를 건국한 이후 중원(中原) 일대의 여러 세력과 함께 동북아 4대 강대국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도 주몽 집단이 가지고 있던 우수한 성능의 활과 함께 궁술과 기마술을 결합한 전투력에 기인하고 있다.

삼국 중 가장 후발 국가였던 신라가 7세기 후반 고구려, 백제를 정복하고 당나라를 몰아내어 한반도에 통일된 국가를 형성한 것은 당나라와 맺은 나당동맹이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신라가 고구려의 기병을 멀리서부터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기계장치로 된 활인 쇠뇌, 즉 노(弩)를 개량하고 대량 생산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7세기 중반 신라에서 개발하여 당나라에서도 탐을 내었다고 하는 천균노(千鈞弩)가 대표적이다. 천균노는 사정거리가 1천 보(步), 약 1,200미터가 넘게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삼국 통일에 큰 역할을 한 쇠뇌는 고려시대에 더욱 개량되어 수질구궁노(繡質九弓弩), 팔우노(八牛弩)와 같이 다양한 각종 노가 제작되었다. 수질구궁노는 문양이 새겨진 9대의 노를 연결한 것으로 연속사가 가능한 연노(連弩)로 추정된다. 팔우노는 활줄을 뒤로 당기는 데 소 여덟 마리가 필요한 만큼 힘이 많이 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여러 발의 화살을 발사할 수 있는 쇠뇌를 개발한 고려는 거란과 여진 등 북방 세력과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고려가 거란과의 3차례 전쟁에서 승리하고 국경을 압록강까지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새로이 개발된 각종 노와 같은 원거리 무기의 뛰어난 능력도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고려 말인 14세기 후반 최무선에 의해 도입된 화약 제조법과 화약 무기 개발은 중국에 비해서는 늦은 것이었지만 일본 등 주변의 다른 세력에 비해서는 160여 년 앞선 것이었다. 화약무기를 개발하고 배치한 한반도 세력은 이제 주변 세력에 비해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고려 말 왜구를 진포(鎭浦) 해전에서 함포를 이용하여 크게 승리한 이후 왜구가 급속히 위축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화약무기의 개량과 개발의 양상은 계속되었다.

여러 발의 화살을 한 번에 사격할 수 있는 다전(多箭) 화포, 박격포와 비슷한 완구(碗口), 폭발물인 발화(發火) 등과 함께 로켓 화기인 각종 신기전(神機箭) 등의 화약무기가 개발되었다. 조선은 우수한 화약무기를 바탕으로 여진과 왜구의 근거지인 남만주와 대마도 등에 대한 여러 차례 정벌의 결과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영토를 넓히고 이 일대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조선초기 세종 시기의 정치사회적, 문화적 번영의 바탕에는 화약무기 등 국방과학기술의 발전이 뒷받침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종 시기 이후 오늘날까지 500여 년 동안 우리의 영토가 조금도 확장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15세기 전반 국방과학기술의 혁신성과 사회적 발전의 양상은 매우 역동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03.조선시대 로켓 화기인 <신기전 화차> ©전쟁기념관 오픈 아카이브



지난 2022년 6월 21일, 우리 자력에 의한 최초의 한국형 우주발사체인 누리호가 지구 궤도에 위성을 올려 놓는 데 성공하였다. 누리호 발사의 성공으로 한국은 1톤 이상의 실용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는 세계 7개국 반열에 올랐다. 첨단의 우주발사체 기술은 어떠한 우방국이라 할지라도 가벼이 관련 기술을 이전하거나 판매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기술을 한국이 확보하였다는 것은 지구 어느 지역에도 국가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폴란드 등 세계 각지에 전투기, 전차, 함정, 유도탄 등 첨단의 무기를 수출하여 지역 안보를 돕고 있다.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직후의 국토 분단과 6·25전쟁 등으로 인해 국토가 완전히 파괴된 이후 70년 만에 이룬 한국의 성취는 세계적인 기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 국가로서 학문과 과학 분야에서 많은 성취를 이루었던 역사적 경험과 함께 생존과 자주를 위해 쏟았던 열정이 있었다. 또한 국방과학기술은 한국 경제성장에 필요로 하였던 각종 원천 기술을 뒷받침하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다. 4차 산업혁명에 기반한 새로운 기술의 영향으로 미래 전장은 우주와 사이버 영역까지 확대되고 로봇 등 무인 자율전투체계가 활약할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러한 새롭고 혁신적인 국방과학기술을 우리는 시급히 확보하여 생존과 번영이라는 목표를 이룩하여야 한다. 아울러 평화와 공동 번영이라는 인류의 이상을 실현하는 중심 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어떤 어려운 도전도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선택이 아닌 실천하는 역사를 만들 의지와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노영구(국방대학교 군사전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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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