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장군 순천의 백의종군로

한양의 의금부를 출발하여 경기-충청-전북-전남-경남 진주까지 120일간 험난한 행군을 하게 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여 내려온 순천의 백의종군로

이순신이 백의종군해서 걸어 내려온 640km의 길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은 일본 수군이 기습적으로 공격해올 것을 경계하여 신중한 군사작전을 펼쳤다. 이에 1597년 2월 26일에 ‘조정을 속이고 적을 치지 않았다’라는 죄목으로 체포된다. 한산도에서 서울로 압송된 후 3월 4일부터 4월 1일까지 투옥되었다. 이순신 장군은 출옥한 후에도 선조에게 일체의 관직과 벼슬 없이 평복으로 참전하는 백의종군의 처벌을 받았다. 한양의 의금부를 출발하여 경기-충청-전북-전남-경남 진주까지 120일간 험난한 행군을 하게 된다.

2015년 2월 1일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가 고증하였다고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고 옥고를 치르고 다친 몸을 이끌고 걸어 전장으로 되돌아가던 ‘백의종군로’는 서울-경기-충남-전북-전남-경남 도원수부(都元帥府)까지 그 거리가 총 640.4km에 이르는 긴 여정이었다고 한다.

전남 순천시의 백의종군로는 선평삼거리에서 구례읍에 이르는 약 25km의 길로, 1597년 4월 26일 남원 운봉을 거쳐 구례읍에서 도착한 이순신 장군은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 날 도원수(권율)를 만나기 위해 순천부를 향한다. 순천의 송원(현재의 선평삼거리)에 거처를 마련하여 17일간 머문 후 다시 구례(현재의 구례역 부근)로 돌아간다.

구례읍에서 순천부까지의 백의종군로는 이순신의 조선 수군 재건을 위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의 패배로 조선 수군 1만여 명을 잃고 100여 척의 배가 침몰하고 겨우 12척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8월 3일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조선 수군을 재건하고자 군사와 군수품을 모으고, 명량대첩지인 진도 울돌목에서의 승리까지 44일간의 피눈물 나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열악한 조선 수군의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1597년 8월 15일 전남 보성 열선루에서 선조에게 장계를 올린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우면 능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인 8월 18일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은 진도 울돌몰에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다. 이로서 조선수군은 칠천량 해전의 참패로부터 전세를 뒤집었다.



                                          순천 백의종군로 서천변

전국의 백의종군로 640여km 중 구례읍에서 순천 선평삼거리까지 25km 구간은 도보 탐방이 가능하다. 중간에 송치재에서 황전면의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국도 17호선과 나란히 강을 끼고 나 있는 뚝방길로 이어져 있으며, 학구마을에서 선평삼거리 구간은 뚝방길 옆 천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나 있다. 봄에는 벚꽃이 가득 피고, 여름에는 녹음과 시원한 물소리가 가득하고, 가을에는 길을 따라 물든 단풍을 만끽할 수 있으며, 겨울에는 철새들이 살을 찌운다.

생동하는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백의종군로를 따라 걸으며 이순신 장군의 땀과 눈물과 고뇌, 역사의 흔적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걸음을 떼는 곳마다 하늘과 물이 조화롭고 평화로운 길 걸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게 존경을 보내고, 지금 이 시대가 바라는 나라와 공동체를 위한 삶의 자세를 되새겨 보자. 순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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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