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석조문화 석불 1 민중의 모습을 새긴 소고리 마애여래좌상과 마애삼존석불

신라의 석불이 장엄하고 정밀하고, 또 신령스러움을 풍기고 있다고 한다면, 고려의 불상들, 특히 석불(石佛)들은 세속적이고, 투박하고, 희화적(戱畵的) 특징을 드러내는 것들이 많다.

불교 석조문화 석불 1
민중의 모습을 새긴 소고리 마애여래좌상과 마애삼존석불

신라의 석불이 장엄하고 정밀하고, 또 신령스러움을 풍기고 있다고 한다면, 고려의 불상들, 특히 석불(石佛)들은 세속적이고, 투박하고, 희화적(戱畵的) 특징을 드러내는 것들이 많다. 이는 고려의 건국이 지방호족의 세력으로 이룩한 것이기 때문에 민초들의 애환이나 바램 등 지방화 된 특색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마애불 역시 그러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76번지 일원에는 소고리 마애여래좌상(所古里磨崖如來坐像1984년 9월 12일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과 마애삼존불좌상(향토유적 8호)이 조성되어 있다.

마애불은 암벽이나 대형 석재 표면에 부조기법으로 불상을 조성한 것으로, 삼국시대부터 산악신앙과 불교가 습합하면서 유행했다. 경주 남산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이름난 명산에 조성된 마애불은 소형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 수 미터 이상의 대형으로 조성해, 불상이 조성된 산을 불국토로 만들려던 옛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소고리에 위치한 마애불은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마애여래좌상 1구와 그 아래 시대를 달리하는 삼존불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 소고리는 경기도와 고려시대 개경을 연결하는 교통요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전통적으로 중요 교통로 상에 사찰을 창건하고 불탑과 불상을 조성했던 전통에 따라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19879년 이천문화원 조사를 통해 알려진 마애여래좌상은 소고리 마을에서 서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계곡부위에 위치하는데, 현지에서는 부처박골이라고 불린다. 불상이 조각된 바위를 부처바위 혹은 미륵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높이 약 7m의 동향한 자연석 표면을 가공 후 선각기법을 이용해 여래좌상을 조각했다. 원형으로 표현된 두광과 무릎 부분 선각의 너비가 5~7㎜를 이루고 있는데, 이천시 지역에서 조성된 선각 마애불의 평균 선폭인 3~4㎜ 보다 굵은 선 처리를 특징으로 한다. 신체 모델링이 정교하며 안정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법의는 통견형식이고 대좌 위에 결가부좌 하고 있다. 대좌는 연화좌로 추정되나 신체 표현에 비해 간략히 상하구획선만 표현하였다. 법의 자락이 양어깨와 팔에 걸쳐 무릎에 이르기까지 유려하게 흘러내리고 있는데, 어깨 부위에서 외반 되었다. 통일신라 마애불과 비교하면 정적인 근엄한 얼굴표현, 간략화된 옷 주름, 세부표현의 형식화, 탄력감이 줄어든 모델링 등에서 진전된 고려시대 불상양식을 보여준다. 특히 수인(手印)은 법주사 마애불상과 비교되는 것으로 고려시대 조각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이천 소고리 마애여래좌상

마옥산(磨玉山) 부처바위라 불리는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에서 향토유적 8호로 지정된 마애삼존불좌상은 약 7m 아래 지점에 위치한 화강암 자연석 위에 조각되어 있다. 삼존 모두 해학적인 미소를 띠고 있고, 신체 표현이 어설픈 것으로 보아 전문 조각장인의 솜씨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 삼존불은 남서쪽을 향한 주형광배(舟形光背)에 가까운 편편한 자연석 면에 돌을 새김으로 조각되었으며, 모두 결가부좌한 좌상(坐像)의 형태이다. 안내서에서 밝히고 있듯 이 석불은 신라 시대의 토우(土偶)나 미개종족(未開種族)의 신상(神像)에서 볼 수 있는 희화적(戱畵的)이고 과장된 표현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

3불 모두 결가부좌한 좌상의 형태이다. 마애불 상단의 본존불 위쪽으로는 원호형 배수구가 마련되어 있고, 본존 주위를 일부 파낸 후 주위에 좌협시불은 60cm, 우협시불은 93cm로 조각했다. 본존불은 2m로 크기로 해학적인 얼굴표현과 큰 귀가 특징인데 민간에서 제작한 민속신앙 상과 유사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본존 머리에는 소발형 높은 유계를 표현했는데, 좌우 협시불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보관을 표현했을 가능성도 있다. 머리 위로는 굵은 띠 모양 두광을 표현했는데 보관에서 이어진 띠 장식으로 보인다. 본존의 수인은 가는 양팔을 가슴 부위에 모은 채 손가락을 편 모습으로 소고리 마애여래좌상과 유사한 설법인을 취하고 있다. 얼굴에 비해 신체는 매우 평판적이며, 복부에는 선각기법으로 역U자형 옷주름을 간략히 나타냈으며 결가부좌한 양다리 아래로는 연화좌를 표현했는데 오른쪽 발바닥이 외향한 채 드러나 있다.


                             소고리 마애삼존불

소고리 마애불상군은 기록이 전하지 않아 조성연대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마애여래좌상은 고려 중기 제작으로 추정된다. 삼존불은 민간신앙과 불교가 결합된 형태의 조각상으로 불상의 개념 보다는 민간신앙적 성격이 농후하다. 외형은 불상이지만 무속신앙의 대상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삼존불에서 보여지는 강한 토속성은 고려시대 마애불의 특징 중 하나지만, 말세사상이 유행한 고려 말 이후 다양한 민불(民佛)의 출현을 가져 온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둔다면 고려 말을 상회하지 않는 비교적 후대에 제작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이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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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