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도의 총본산 골굴사

여러 개의 동굴로 형성된 골굴사의 석굴사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이 유일하다

선무도의 총본산 골굴사


함월산 기슭의 골굴사에는 수십미터 높이의 거대한 응회암에 12개의 석굴이 나 있으며, 암벽 제일 높은 곳에는 돋을새김으로 새긴 보물 제581호인 마애불상이 있다. 여러 개의 동굴로 형성된 골굴사의 석굴사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이 유일하다. 중국이나 인도 등지에서는 고대 석굴사원의 유적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예컨대 인도의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 중국의 돈황, 운강석굴과 용문석굴이 그 대표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겠다.

기림사의 사적기에 의하면, 약 1500년 전 천축국(인도)에서 건너온 광유성인 일행이 함월산 지역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광유스님 일행들이 인도의 사원 양식을 본따 창건한 전형적인 석굴사원이다. 응회암 지층으로 형성된 암반 정상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주변에 12곳에 석굴을 파서 목조 와가로 전실을 건조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했다.


기림사는 통일신라 시대 원효대사에 의해 크게 중창되어 사명이 개칭되기 전에는 임정사(林井寺)라고 하였으며, 오종수(감로수, 화정수, 명안수, 오탁수, 장군수)의 설화를 전하고 있다. 또한 불국사보다 약 200년이 먼저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골굴사는 신라 시대 불교가 처음 유입될 당시 신라인들의 호국불교 정신과 정토적인 이념을 배양한 정신문화의 산실로써 경주 함월산 유역의 성지로써 유서 깊은 도량이다.


골굴사는 원효대사가 열반한 혈사(穴寺)로 추정되는 곳이다. 입적 이후 가장 이른 시기에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는「고선사서당화상탑비에 의하면 원효대사는 686년(신문왕 6) 70세로 혈사에서 입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살던 혈사에서 가까운 곳에 아들 설총의 집이 위치했던 것으로 보아 그 위 위치가 신라 왕경에서 멀지 않은 경주 남산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랑들이 수련하던 선무도의 총본산이며 이를 전승 보급하기 위하여 많은 외국인을 포함하여 수련에 임하고 있다. 선무도화랑사관학교란 이름으로 선무도(禪武道)는 물론 조신법(調身法), 조심법(調心法), 조식법(調息法), 불교 강의와 한문교육, 영어회화, 다도, 판소리와 국악, 서예, 활쏘기, 승마, 성지순례 등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다.
선무도는 불교의 아나파나사띠(anāpanasati,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경에서 가르치는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수행법이다.


                                                               겸재 정선의 교남명승첩


​조선 중기의 화가 겸재 정선의 교남명승첩에 수록된 골굴암 석굴도를 보면 여러 개의 기와지붕으로 지어진 석굴의 전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또한 토함산 산중일기를 쓴 성리학자 정시한 선생의 기행문에도 당시 골굴암의 모습을 상세히 전해주고 있는데, “여러 채의 목조 와가로 지어진 전실을 연결하는 회랑이 있고 단청을 한 석굴사원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병풍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표기하고 있다.

​불교학자들에 의하면 조선 중후기에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사람이 살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오다가 조선 말기 박씨 일가가 상주하면서 개인 암자로 전해왔다. 1989년에 한 개인에게 매매되어 넘어간 상태였던 것을 당시 기림사 주지였던 설적운 스님이 매입해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본사 불국사의 말사로 등록되었다.


보물 제581호인 마애아미타불, 우측 손이 마모되어 없어졌고 하반신은 거의 표현되지 않았지만 얼굴 부위는 온화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주불인 마애아미타불은 보물581호로써 동해안의 문무대왕수중릉을 향하고 있다.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라한굴, 신중단, 칠성단, 산신당 등의 굴법당이 있고, 특히 수천 년 전부터 전래 된 남근바위와 여궁의 음양 조화로 득남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이 간직된 설화가 유명하다. 골굴사는 12처 석굴사원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골굴사 오륜탑 비 내용


오륜탑(五輪塔)은 청정법신(淸靜法身) 대일여래불(大日如來佛)을 상징하는 만다라(曼茶羅)로서 모든 덕과 지혜를 갖추었음을 뜻하며, 오지륜(五智輪)이라고 한다. 불교의 수행법인 밀교(密敎)에서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 오단의 형상은 물질계인 사대(四太 : 地, 水, 火, 風)와 정신계인 호의 조화를 의미하며 중생(衆生)의 육신과 오대(五大)를 대응시켜 자기 몸 안의 오처(五處)에 오륜을 관(觀)하여 육신이 곧 법신(法身)임을 체득케 한다. 1500년 전 인도(天竺國)로부터 불법을 전래한 골굴사(骨窟寺)의 창건주 광유성인(光有聖人)을 받들어 이 탑(塔)을 조성하며 태국(泰國)에서 모셔온 불사리(佛舍利) 삼과(三果)를 봉안(奉安)했다.


                                 선무도 수련


감포 문무대왕릉에서 감포항 방향으로 약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이 20분 거리 안에 기림사, 감은사지, 문무대왕릉, 이견대, 장항사지, 석굴암 등을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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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