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5

충청도와 경상도를 잇는 죽령 옛길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5

충청도와 경상도를 잇는 죽령 옛길

명승 제30호 죽령 옛길은 경상북도 영주시와 충청북도 단양군을 연결하던 옛길이다. 현재 죽령을 통과하는 길 가운데 영주시의 희방사역에서 고갯마루의 죽령 주막에 이르는 구간이 죽령 옛길로 남아 있다.



20세기 초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죽령 옛길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 기능을 담당했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 다양한 물건을 짊어지고 나르던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길이었다. 그런데 죽령을 넘으면 ‘죽죽 미끄러진다.’라고 생각해 문경새재를 넘는 선비들이 많았다고 한다. 죽령 옛길이 매우 경사가 심한 구간에 자리했으므로 새로운 도로나 철도가 개통될 때 죽령 옛길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길로 다니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잘 수 있는 시설인 객점과 마방들이 길목 주요 지점에 설치되었고 아직 주막거리 터는 남아 있다. 과거에는 4개의 커다란 주막거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죽령 옛길 고갯마루에는 장승이 여러 개 세워져 있다. 장승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일부 장승은 특정 지점까지의 거리를 표기해 놓아 이정표의 역할도 했다.



옛길 주막터


죽령루



689m 죽령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경상도영주와 서쪽으로 충청도단양 땅이 보인다.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길목으로 오래전부터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이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8대 임금이었던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이 부하 죽죽에게 길을 만들라고 명하였고, 서기 158년에 소백산 서쪽의 계곡을 따라 고갯길 죽령을 처음 열었다(開竹嶺)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죽령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름에는 대나무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죽령 옛길에는 대나무가 없다고 한다. 죽령은 대재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는 큰 고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의 흰봉산 도솔봉과 단양군 단양읍에 있는 연희봉 사이의 가장 낮은 산허리를 넘어가는 구불구불한 길이다. 이들 봉우리는 해발고도가 1,300m를 넘을 정도로 험준해서, 죽령 옛길을 개척하는 데에는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은 험준한 산줄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경상도와 충청도 사람들은 큰 산을 넘어 왕래할 수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죽령 옛길이다. 이 길의 정상부는 해발고도가 689m에 달한다.




죽령 옛길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내륙지방을 통과하는 중요한 장소였다. 제일 먼저 자동차 도로가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 개통되었으며, 1940년 5월에는 소백산을 통과하는 중앙선 철도의 죽령 터널이 준공되었다. 1941년에는 죽령을 통과하는 중앙선 철도가 운행을 시작했다. 죽령의 산세가 험하므로 철도는 죽령 구간을 터널로 통과한다. 충청북도 단양과 경상북도 영주 사이의 구간은 경사가 급해, 터널 내에서 철로가 원의 형태로 회전하면서 경사를 이겨내는 루프(loop)식 뙤리굴로 만들어졌다. 2001년 12월에 개통한 중앙고속도로도 죽령 구간은 터널로 통과한다. 중앙선 철도의 죽령 터널은 길이가 4,500m이고, 중앙고속도로의 죽령 터널은 그 길이가 4,600m에 이른다.

근대 이후 자동차가 다니면서 죽령 옛길을 다니는 통행량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죽령 옛길이 매우 경사가 심한 구간에 자리했으므로 새로운 도로나 철도가 개통될 때에 죽령 옛길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소백산 국립공원에 있는 옛길로 옛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과 길게 늘어진 나무가 만들어 놓은 터널이 소백산 주요 능선 등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명승지이다. 2007년 12월 17일 151,115㎡의 면적이 명승 제30호로 지정되었다. 이미지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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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