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안(弘安) 3년(1280년) 2월 59세 어작(1443~4쪽)
【 본문 】
그러므로 제2의 비유품에는 「신(信)으로써 들어감을 득(得)하였지 자기의 지분(智分)은 아니로다」라고 하여지혜제일(智慧第一)의 사리불도 오직 이 경(經)을 수지하고 강성한 신심으로써 부처가 되었으며, 자기의 지(智慧)로써 부처가 되지 않았다고 가르치셨느니라. 사리불(舍利佛) 조차도 지혜로써는 부처가 되지 못했거늘 하물며 우리들 중생이 약간의 법문을 터득했다고 해도신심이 없이 부처가 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느니라. 말대(末代)의 중생은 법문을 약간 알면 승(僧)을 멸시하고 불법(佛法)을 등한히 해서 악도에 떨어진다고 말씀 하셨느니라. 법을 터득한 증거로써 승을 공경하고 법을 숭앙(崇仰)하며, 부처를 공양할 지어다. 지금은 부처가 계시지 않으니 해오(解悟)의 지식(智識)을 부처라고 공경할지니라. 어찌 덕분(德分)이 없겠는가. 후세를 원하는 자는 명리명문(名利名聞)을 버리고 아무리 천한 자(者)일지라도 법화경을 설하는 승(僧)을 생신(生身)의 여래(如來)와 같이 공경할 지어다. 이것은 틀림없는 경문이니라. |
【 해석 】
그러므로 법화경 제2권 비유품(譬喩品)에 「신심을 가지고 비로서 법화의 묘리(妙理)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고 자신의 지혜에 의한 것은 아니다」라 하여 지혜 제일의 사리불도 오직 이 경을 수지하고 강성한 신심에 의해서 성불할 수 있었던 것이며 자기의 지혜에 의해 성불한 것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리불조차도 자신의 지혜로써 성불한 것은 아니다. 하물며 우리들 말법의 중생은 약간의 법운을 알고 있다고 하여도 신심이 없으면 성불할 수 없는 것이다. (경문에는) 「말대의 중생은 약간의 법문에 민심을 일으켜 승려를 경멸하고 법문을 소흘히 하여 결국은 악도에 떨어질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시고 있다.
정말로 부처의 가르침을 알고 있는 증거로써 승려를 존경하고 법을 숭상하여 부처를 공양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부처가 안 계시므로 해오(解悟)의 선지식(善知識=승려)을 부처라고 존경해야 한다. 해오의 지식에 어찌 불(佛)의 덕분(德分)이 없을 것인가. 말세에 성불을 원하는 자는 명분명리를 버리고 아무리 천한 자(者)일지라도 법화경을 설하는 승려를 생신의 여래처럼 존경해야만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경문에 의한 것이다.
【 용어 해설 】
◆ 제2권 : 법화경 28품은 8권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제2권에 『비유품 제3』과『신해품 제4』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비유품 제3의 문(文) 「여사리불 상오차경 이신득입 (汝舍利佛
尙悟此經 以信得入」 (신개결 174~5, 구239~240)
◆ 해오(解悟)의 지식(智識) : 해오란 법화경 『제바달다품 제12』에 「무량중생 문법해오 득불퇴전
(無量衆生 聞法解悟 得不退轉)」(신개결 369, 구433) 이라고 있듯이 도리를 획득하여
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함.
또, 지식이란 선지식을 말하며 법을 설하여 선처로 인도하는 사람을 말한다. 선우(善友)
라고도 한다. 본래 지식이라는 뜻은 친구의 별명으로 자기가 그 사람을 알고 그 모양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그 상대의 사람이 선(善)이라면, 선우(善友), 선지식(善知識)이 되고
악(惡)이라면, 악우(惡友), 악지식(惡知識)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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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