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소금강산

신라 오악의 하나로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졌으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서라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주 소금강산

서라벌을 감싸고 있는 사방의 산은 동쪽으로는 명활산이 있고 서쪽에는 선도산, 남쪽에는 금오산, 북쪽에는 소금강산이 있다.

소금강산 앞으로는 알천이 좌에서 우로 흐르는 길지로 굴불사와 백률사, 탈해왕릉이 있다. 신라 오악의 하나로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졌다. 소금강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서라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교통이 편리하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다.



그렇다면 신라 시대에도 그만큼 많았다고 할 수 있다. 토질은 마사토로 큼직큼직한 화강암이 많이 솟아있다. 소나무가 주로 많은데 양지쪽으로는 참나무도 많고 아래쪽에는 대나무도 제법 자란다. 지금은 가을이 무르익어 타는 듯한 단풍과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한창이다.

법흥왕 14년(527)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 위하여 이차돈이 순교를 하였다. 그의 목을 베자 흰 피가 솟았고 그 목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소금강산에 떨어졌다. 그래서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그 자리에 자추사를 세워 이차돈의 명복을 빌었다. 자추사나 백률사는 같은 뜻으로 자(刺)는 잣, 곧 백(栢)이고, 추(楸)는 밤, 곧 율(栗)로 서로 통하는 말이다.

대웅전은 높직한 축대 위에 세웠는데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어 선조 때 다시 중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이 자리에 아주 빼어난 불상 금동약사여래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높이 약 179cm로 통일신라 시대 최대의 금동불이다.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함께 통일신라 시대 3대 금동불 중 하나로 손에 꼽히는 작품이다.

대웅전 앞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바위 면에 마애삼층석탑이 있다. 마모가 심하여 알아보기 힘들다. 대웅전 앞은 자리가 협소하여 그렇게 할수 밖에 없는 자리이다. 경내에는 초석과 석등부재, 우물돌 등이 남아있다.

굴불사지는 주차장에서 입구를 지나 산길을 올라가자말자 나온다. 절은 사라지고 우뚝 솟은 바위에 새긴 불상이 눈에 들어온다. 신라 35대 경덕왕이 백률사에 나들이하는 도중 이 근처를 지나는데 땅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스님의 독경처럼 들렸는데, 이상하게 생각한 왕은 그곳을 파보라 하였다. 그러자 거기서 각 면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나왔다. 이에 감동한 왕은 석불을 파내었다 하여 굴불사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지금은 절은 남아있지 않고 자연 암석에 조성된 사방불만 남았다. 원래 동서남북 사면에 불상을 조성하는 것은 사방 정토를 상징하는 것으로 대승불교의 발달과 더불어 성행한 사방불 신앙의 한 형태였다. 사방불의 사면에 어떤 부처를 모시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신라의 사방불은 대체로 서방에 아마타불 동방에 약사여래 남쪽에 석가모니 북쪽에 미륵불을 모신다.


여기서는 서쪽이 정면으로 아미타불과 양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만들었다. 아미타의 머리는 다른 돌로 만들어 올렸다. 높이가 약 3.9m이다. 좌우에 배치한 보살상은 다른 돌로 만들어 세워서 삼존불 형식을 갖추었다. 대세지보살의 머리 부분은 많이 허물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다. 왼쪽 관세음보살은 허리를 약간 비틀어 율동감을 표현하려고 했다. 높이는 1.95m이다.


동쪽에는 왼손에 지물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가 있다. 결가부좌가 뚜렷하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들어 올려 있지만 손이 마멸되어 알
수 없다.


남쪽에 현재 남아있는 두 보살상은 몸체의 굴곡 표현이나 옷 주름 등을 볼 때 균형이 잘 잡혀있다. 이들은 모두 높은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다.


북쪽의 보살입상은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왼손은 내리고 천의를 잡고,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들었다. 그 옆으로 선각으로 된 보살상은 6개의 손에 11면의 얼굴인 보살상이다.


백률사 뒤로 계속 가면 마애삼존불 좌상이 있다. 조각 수법은 우수하나 보존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 가운데 여래상을 큼직하게 조각하였으며 머리둘레에는 두광을 2중으로 하였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을 큼직하게 조각하였으며 내부에 선을 돌렸고 얼굴은 넓적하게 조각하였다. 옷은 양어깨에 걸친 것으로 보이며 왼손은 무릎에 올리고 오른손은 들어 올렸다. 오른쪽 보살상은 길쭉한 얼굴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둘레에 두광을 2중으로 하였다. 정면을 향하지 않고 본존을 향하여 앉은 모습이 특이하다. 왼쪽 보살상은 얼굴과 몸체 부분의 바위가 떨어져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머리둘레에 2중으로 두광을 돌리고 머리에 쓴 보관에 불상이 새겨져 있어 관음보살로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삼존불은 가운데가 아미타여래이고 오른쪽은 대세지보살 왼쪽은 관음보살이다. 옷의 표현 등 조각 수법을 보아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본다.   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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