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웃음으로

하회탈과 병산탈은 드물게 보이는 목조탈로 격식과 세련미를 갖췄다. 무엇보다 그 표정이 일품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읽히지만, 대체로 웃는 모습이다. 그 자체로 흥이 오르고 신명이 난다.

한바탕 웃음으로

우리나라의 가면은 보통 탈놀이가 끝난 후 불태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하회탈과 병산탈은 드물게 보이는 목조탈로 격식과 세련미를 갖췄다. 무엇보다 그 표정이 일품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읽히지만, 대체로 웃는 모습이다. 그 자체로 흥이 오르고 신명이 난다.


01.국보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양반탈

02.우리 전통사회에서 미인으로 꼽던 얼굴인 부네탈

03.탈놀이에서 서낭신 대역으로 등장하는 각시탈



인간의 순수한 생명 본성, 흥

“우리 한바탕 춤이나 춰 보세!” 탈춤판에서 초랭이가 할미에게 춤을 권하며 두 팔을 벌리고 춤을 춘다. 할미도 굽은 허리에 엉덩이를 흔들며 흥을 낸다. 할미는 부네와 놀아나는 양반 선비와 어울리려다가 외면당한 처지이다. 양반이 저리 가라고 밀치는 바람에 땅에 쓰러진 것이다. 초랭이가 쓰러진 할미를 일으켜 세워 춤을 추자, 할미도 엉덩이춤을 추며 신명풀이를 한다. 원래 춤은 할미처럼 못난 사람들끼리 또는 초랭이 같은 아랫사람들끼리 춰야 흥이 나고 신명이 오른다. 양반, 선비처럼 잘난 사람들은 잘난 체하느라 신명풀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부네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춤은 신명의 춤이 아니라 욕망의 춤이다. 욕망이 들끓으면 흥이 오르지 않는다.

흥은 인간의 순수한 생명 본성이다. 목적이나 욕심 없이 오직 놀이의 신명을 즐겨야 흥이 오른다. 일할 때보다 놀이를 하면 흥이 나는 까닭이다. 흥을 더 적극적으로 오르게 하는 힘은 음악장단에서 나온다. 줄다리기나 동채싸움을 하면서 풍물을 치는 까닭도 놀이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이다. 풍물처럼 신명나는 음악을 듣게 되면 흥겨워서 자기도 모르게 어깨춤이 절로 난다. 흔히 가무일체라 하듯이 노래자랑에 나가면 노래만 부르지 않고 으레 춤도 같이 춘다. 풍물패도 악기만 연주하지 않는다. 춤을 추는 춤꾼들과 놀이를 하는 잡색들이 한패를 이룬다. 풍물을 쳐서 장단을 지피고 춤을 춰 흥을 돋우는가 하면, 잡색들의 놀이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풍물판은 가장 흥겨운 신명풀이 놀이판이다.


흥겨운 풍자 한마당, 탈놀이

풍물의 잡색놀이가 확대된 것이 탈춤이다. 탈춤판은 춤판이자 웃음판이다. 탈춤은 크게 춤대목과 극대목으로 나누는데, 앞뒤의 춤대목 사이에 광대들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극대목이 연출된다. 극대목은 양반의 신분적 특권이나 아는 체하는 선비의 오만을 풍자함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단순한 희롱의 웃음이 아니라 엉터리 양반과 거짓 지식의 허세를 폭로하는 풍자적 웃음이다. 양반은 자기 조상이 문하시중(門下侍中)이었다고 자랑했지만, 선비가 자기 조상은 문상시대(門上侍大)였다고 으스대자 기가 죽는다. ‘문상시대’는 없는 벼슬인데도, 문하시중보다 더 높은 벼슬인 줄 알고 양반의 기세가 꺾였던 것이다. 이 사태를 구경하는 민중은 양반과 선비 모두 신분이 낮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서 신나게 웃는다.

선비가 아는 체하며 사서삼경을 읽었다고 우쭐거리자, 양반은 그 갑절인 ‘팔서육경’을 읽었다고 윽박지른다. 그러자 선비는 “팔서육경이라니 도대체 육경이란 무엇인고?” 하고 양반에게 따진다. 양반이 머뭇거리자 초랭이가 나서서 육경을 열거한다. “팔만대장경, 중의 바라경, 봉사의 안경, 약국의 길경, 머슴의 새경, 처녀 월경”을 말하자, 양반은 “종놈들도 아는 육경을 선비라는 자가 몰라?” 하고 오금을 박는다.

구경꾼은 양반이나 선비나 무식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마음껏 웃는다. 더 큰 웃음은 양반과 선비의 소불알 다툼에서 나타난다. 백정이 소불알을 사라고 외치자 양반은 상스럽다고 외면한다. 소불알을 먹으면 양기에 좋다고 하자, 선비가 먼저 소불알을 사겠다고 나선다. 양반도 귀가 솔깃해 소불알을 사겠다고 백정의 소불알에 매달린다. 그러자 백정은 “내 불알 터진다”고 아우성이다. 관중의 웃음은 절정에 이른다.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우리의 흥

하회탈 중 양반탈은 특히 그 웃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그는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줄 모르니 더 태평하게 웃는 것이다. 양반탈의 웃는 표정은 곧 한국인의 웃음을 상징하게 됐고, 세계적 명성도 높다. 활짝 웃는 얼굴 표정엔 구김살이 없다. 진정한 웃음은 눈웃음과 함께 얼굴을 환하게 열어서 파안대소를 이루어야 한다. 더 큰 웃음은 허리를 잡고 몸을 흔들며 온몸으로 웃는다. 따라서 가장 적극적인 웃음은 몸웃음이다.

온몸으로 웃는 것이 춤이므로 춤을 ‘몸웃음’이라 한다. 몸웃음인 춤에 이르면 누구나 흥에 겨워 하나가 된다. 탈춤이 무르익으면 탈광대뿐 아니라 구경꾼도 탈판에 뛰어들어 함께 흥겨운 춤판을 이룬다. 뒤풀이 춤이야말로 대동춤판으로서 집단신명의 흥을 마음껏 누린다. 풍물을 치며 탈춤을 추는 보름 동안, 하회마을은 민중이 주체가 되는 해방구가 되어 한바탕 축제판을 이룬다.  글. 임재해(안동대학교 민속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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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