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매정에 얽힌 사연

재매정 (財買井) 김유신의 옛 집터, 사적 제246호

 재매정


(財買井 김유신의 옛 집터, 사적 제246호)

재매정은 월성에서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이며 남쪽으로는 문천이 흘러가고, 그 너머 남산이 마주 보이는 양지바

른 곳이 신라의 명장 김유신(金庾信)의 옛 집터이다. 사적 제24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정면적 5,481㎡이다.  현재 위치는 경주 흥륜사(興輪寺)터와 월성(月城)터의 중간에 있다.  1.25m 가량의 사각형 우물로 우물가에는 유허비가 있는데, 이는 조선 고종 9년(1872년)에 경주부윤이던 이만운이 김유신의 유허비를 이 자리에 세웠다.

삼국유사 진한조에는 신라 전성기에 178936호의 집이 있었고 이 가운데 재매정은 신라 전성기의 화려한 대저택을 일컫는 금입택(金入宅) 35채 중 하나인 재매정 댁에 있던 우물이다. 재매정 댁은 김유신 집안의 종택이다.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김유신의 위인전을 읽고 나라에 충성하는 법을 배우며 자라왔다. 그것의 유효기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건만 요즘 말하는 MZ세대들에게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는지 사뭇 궁금하다.

그래서  재매정은 충성심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을 찾아보고 그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한걸음에 달려왔다. 이제 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본다.

신라 제27대 선덕 여왕 13년 (644년)에 김유신은 소판이 되었고 9월에 上將軍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의 성열성, 동화성 등 일곱 성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그다음 해 정월에 돌아왔으나 아직 왕을 배알하기도 전에 백제의 대군이 신라의 매리포성을 침공한다는 급보를 받고, 왕은 또 김유신을 상장군으로 삼아 이를 막으라고 명령하였다. 김유신은 왕명을 받고 가족들을 만나보지 못한 채 출정하여 백제군을 쳐 이들을 패주 시키고 2000여 명을 베어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그해 3월에 왕이 귀환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김유신이 집으로 가기도 전에 또다시 백제의 군사들이 국경에 나와 주둔하고 장차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쳐들어 오려 한다고 급히 알리자 왕은 다시 김유신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공은 수고롭겠으나 뻘리 나가서 적들이 전비를 갖추기 전에 이를 방비 하라'고 하므로 김유신은 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곧 군사를 훈련하고 병기를 수선한 다음 서쪽으로 백제를 막으러 나갔다.


이때 집사람들은 모두 문밖으로 나와서 장군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런데 김유신은 문앞을 지나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가다가 50보쯤 되는 곳에 이르러서 말을 멈추고 종자에게 집에 가서 물을 떠오라 명령하여 물을 마셔 보고는 말하기를 '우리 집 물맛이 아직도 옛날 그대로구나'하고 그냥 길을 떠나니, 이를 보는 모든 군졸들이 말하기를 '대장군도 이와 같은데 우리들이야 어찌 골육의 가족들과 이별함을 한탄 하리요'하며 싸움터로 나갔다고 한다. 재매 부인도 차마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으리라.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곳이 되었는데 알고 보면 뜻이 깊은 곳이다. 하늘은 속내를 알고 있는 것일까. 포항 해병대에서 날아온 헬기들이 굉음을 내며 연이어 날아온다.  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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