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 4 – 대전 범골

사냥꾼이 새끼호랑이를 키운 마을, 대전 범골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 4 – 대전 범골

우리나라 곳곳에는 다양한 이름의 마을들이 있다. 그 마을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서로 다른 도시에 똑같은 동 이름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인 한 인물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새로운 지명을 낳기도 했다.

지명의 유래를 유형별로 나누어 그중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지명들을 살펴보았다.

“여우와 호랑이” 가 살던 곳
용 다음으로 많은 동물은 여우와 호랑이다. 색시로 둔갑한 여우가 죽어 나간 경북 칠곡군 왜관읍 여우골, 꼬리 긴 여우가 고갯짓해서 가르쳐준 마을인 전북 진안군 성수면 외궁리 고미동이 여우와 관련되어 있고, 사냥꾼이 호랑이와 함께 지낸 마을 대전 중구 호동(범골), 호랑이가 물 마시고 춤을 추던 충북 청주시 호무골이 호랑이와 관련되어 있다.
네발짐승만큼이나 새 관련 지명도 많다. 경북 의성군 세촌리 새목골은 새가 많이 모이는 마을이다. 천 마리 닭으로 지네를 없앤 경남 하동군 애치리의 봉계마을, 세 마리의 학이 하늘로 오르면서 생긴 전남 목포시 삼학도, 은혜 갚은 까치들이 살았던 충북 청주시 흥덕구 남촌리 까치말, 은혜 갚은 오리가 살던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사부실 등 전국 곳곳에 다양한 새 관련 지명이 존재한다.


사냥꾼이 새끼호랑이를 키운 마을, 대전 범골

대전광역시 중구 호동에서 대명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범골이라고 한다. 옛날 범골에 재주 좋은 사냥꾼이 살았다. 하루는 친구 병문안을 갔는데, 친구의 병이 호랑이 앞다리를 먹어야 낫는다고 했다. 사냥꾼은 친구를 위해 호랑이를 잡아 줬다. 그런데 죽은 호랑이가 어미였던 까닭에 새끼호랑이가 사냥꾼 집 앞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냥꾼은 새끼호랑이를 데리고 굴에 가서 그들과 함께 살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사냥꾼이 호랑이와 함께 살았던 곳이라 해서 범골이라 불렀다.

대전광역시 중구 호동에서 대명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골짜기가 있는데, 이 마을을 범골이라 한다. 옛날 이 범골에 힘이 세고 재치 있는 사냥꾼이 살았다. 그는 사냥을 좋아하고 잘하지만 농사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텃밭조차 가꾸지 않았다. 그는 비록 사냥을 좋아하지만 산짐승의 고기는 일절 먹지 않았다. 하루는 사냥으로 잡은 토끼를 들고 앓고 있는 친구를 방문하였다. 사냥꾼은 친구에게 토끼를 내어주며 “오늘 잡은 건 이것뿐이네. 크지 않지만 이걸 먹고 힘을 내서 빨리 일어나게나.” 친구는 “와주는 것도 고마운데 귀한 토끼까지 가져다주니 고맙네.” 하면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망설이다 친구가 입을 열었다. “여보게, 자네에게 부탁이 하나 있네.” “뭔가 말해보게. 친구가 부탁한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해줘야지.” “의원들이 내 병은 호랑이 앞다리를 먹어야 병이 낫는다고 그러더라고.” 호랑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사냥꾼은 잠시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는 “지금 호랑이라 그랬는가?” “응, 호랑이 앞다리!” “하필 왜 호랑이 앞다리야?” “그러게. 어렵겠지?” 사냥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호랑이를 잡아본 것이 오래전 일이라 약간은 걱정되네.” “미안하이.” “아닐세, 호랑이 앞다리를 먹어서 병이 낫는다면 먹어야지. 알았네. 내 가서 호랑이를 잡아 올 테니까 자네는 몸조리나 잘하고 있게.”


사냥꾼이 새끼호랑이를 키운 마을, 대전 범골


그날부터 사냥꾼은 친구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호랑이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산속을 다니던 어느 날 호랑이가 사냥꾼 앞에 나타났다. 호랑이는 사냥꾼이 자기를 쫓는 걸 알고는 깊숙한 곳에 숨어버렸다. 사냥꾼은 호랑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커다란 굴 앞에 이르렀다. 사냥꾼은 직감적으로 굴 안에 호랑이가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굴에서는 호랑이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 울음소리가 울려 나왔다. 사냥꾼은 숨어서 호랑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루, 이틀, 사흘이 되자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나와 좌우를 살피더니 어디론가 달려갔다. 사냥꾼은 이때다 싶어 굴에 들어가 새끼호랑이 한 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는 마을로 내려오는데 어미호랑이가 새끼호랑이를 구하려고 나타나 달려들었다. 사냥꾼은 호랑이와 결투한 끝에 호랑이를 때려눕혔다. 그리고는 호랑이를 친구에게 주었다. 호랑이 앞다리를 먹은 친구는 병이 나았고, 친구는 고맙다며 사례를 하려고 했다. 그러자 사냥꾼은 고사했다.

사냥꾼이 집에 돌아오자 언제 내려왔는지 호랑이 새끼들이 사냥꾼 집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냥꾼은 먹을 것을 준비하여 새끼호랑이를 키웠다. 자신이 죽인 어미호랑이를 생각하면 새끼가 클 때까지 도와줘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 새끼가 마을에 있으면 큰 호랑이가 모여든다며 사냥꾼에게 마을을 떠나라 했다. 친구가 마을을 다니면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친구는 사냥꾼을 찾아와 “미안하네! 이번에는 내가 자네를 도와줘야 하는데 쉽지가 않군.” “아닐세. 마을에 호랑이가 다니면 좋을 거야 없지. 내가 저지른 일이니 내가 정리해야지. 난 산에 가서 새끼호랑이들을 데리고 살아야겠어. 내 가끔 내려오겠네.” 하고는 산으로 들어갔다. 사냥꾼은 새끼호랑이를 데리고 굴에서 함께 살았다. 그때부터 사냥은 하지 않고 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사냥꾼이 호랑이와 함께 살았다 해서 이곳을 범골이라 불렀다. 참고자료 : 이영식 대전중구문화원 ,대전직할시 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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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