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공국사 승묘탑

원공국사는 고려 태조 13년(930년)에 출생하여 8대 현종9년(1018년)에 89세로 입적한 고려 초기의 고승이다.

 원공국사 승묘탑(부도탑)

원공국사는 고려 태조 13년(930년)에 출생하여 8대 현종9년(1018년)에 89세로 입적한 고려 초기의 고승이다.

법명이 지종(智宗)으로 경기도 양평 사나사에 머물던 인도 승려 홍범에게 득도하였다. 홍범이 인도로 돌아가자 광화사 경철에게 배우고 다시 영통사 관단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희양산의 형초선사 밑에서 수행하였고 954년 승과에 합격하였다.

광종 10년(959년) 중국에 유학하였다가 970년에 귀국한 뒤 대선사를 거쳐 왕사에까지 올랐다. 원공국사는 중국 법안종 3대 조사인 영명연수 스님으로부터 법을 받아 고려에 전했다. 특히 고려 광종이 영명연수 스님을 흠모하여 학승 36명을 중국에 유학시켰다. 그 당시 중국에서는 법안종이 쇠퇴하여 임제종으로 흡수되었으나 고려에서는 크게 발달하였다.

원공국사는 거돈사에 들어가 입적하였는데 그의 탑비가 '太平乙丑秋七月'에 건립되었다. 태평은 거란의 연호이며 을축은 고려 현종 16년(1025년)이 된다.



부도탑은 본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거돈사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불법 반출되어 서울에 사는 일본인이 자기 집으로 가져가 소장하다가,  해방 후인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왔으나 원래의 있던 곳인 원주 거돈사로 가지 못하고 지금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에 있다.  탑비와 이 부도탑의 지대석은 거돈사지에서 동쪽으로 60m 떨어진 곳에 그대로 있으며, 원주시에서는 2006년 12월 13일부터 2007년 11월 21일까지 국,도,시비 2억원을 들여 재현품을 제작(제작자:중요무형문화재 120호 석장 이재순)설치하게 되었다.​

하대석은 8각으로 각 면에는 일반적인 안상이 1구씩 있고 그 안에 화형이 양각되었다. 상면에는 갑석형을 나타내고 16엽의 복판연화가 있는 가운데 3단의 몰딩이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 또한 8각으로 아래위로 테를 돌리고 각 면에는 좌우에 1단의 굴곡을 둔 간략한 안상을 두었으며 그 안에 전면에 걸쳐 팔부중상이 1구씩 조각되었다. 상대석은 화형을 나타낸 단판연화 16엽씩 아래위로 겹으로 돌려 앙련을 만들었다. 탑신은 8각으로 귀퉁이에 기둥형이 화문대로 특이하게 장식되었다. 각 면에는 문비형과 창살문형 그리고 사천왕을 양각하였다. 옥개석 역시 8각으로 4단의 옥개 받침이 있고 그다음에 각형의 연목과 부연이 가지런하고 추녀와 사래도 정확하게 표시하였다. 추녀는 얇고 귀퉁이에는 반전이 뚜렷하다. 옥개상면에는 8조의 우동형이 곡선을 그리며 흐르다가 전각에 이르러 화형을 달았다. 낙수면에는 기와골을 조각하여 추녀에 와서는 암막새 숫막새를 만들었다. 그래서 목조 건축의 지붕을 많이 표현해서 그 당시의 건축물을 엿볼 수가 있다. 정상에는 8각형의 보개로 되어 있으며 탑의 높이는 2.68m로 비례가 적당하게 맞으며 중후한 품격을 갖추고 있다. 탑에 새겨진 조각이 화려하며 장엄하여 1938년 10월 18일 보물 제190호로 지정되었다.

박물관 뜰에 쓸쓸히 서 있는 탑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태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