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가르침과 배움의 통치 교육에서 공존 교육까지

어제와 오늘 가르침과 배움의 통치 교육에서 공존 교육까지

 

어제와 오늘 가르침과 배움의 통치 교육에서 공존 교육까지 가르침,

그리고 배움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 세계에서도 나타난다.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에게는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을 통해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는 구체적인 구성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조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적 전통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르침과 배움의 전통이 이어져 왔다. 그 내용은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형성된 전통이며,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면서 전승되고 있다.

 

고대국가에서 조선 시대까지, 교육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내용

유교는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형태로 고대국가 단계에서부터 국가가 만든 학교의 주요 교과로 자리매김했다. 유학을 주요 교과로 채택한 이유는 왕 중심의 지배 질서 유지를 지향한 고대국가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통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면서도, 관리들의 기본 소양을 갖출 수 있는 교과목으로의 체계화된 논리성도 갖췄기 때문이다.

 

고구려에서는 4세기 소수림왕 대에 귀족 자제들을 대상으로 국립교육기관인 태학에서 유교 경전, 5세기 장수왕 대에는 지방에 설치한 학교인 경당에서 한학을 가르쳤다. 백제의 교육기관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5경 박사 제도가 있었던것으로 보아 유교 경전과 그 교육을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라에서도 원광법사가 만든 화랑도의 세속오계에 유교관련 내용이 있고, 임신서기석을 보면 2명의 화랑이 3년 내에 ‘시·상서·예기·전’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세한 것을 새긴 금석문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경전 교육을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남북국시대에 이르러 유교 경전에 대한 교육이 좀 더 구체화되고 심화됐다. 신라 신문왕은 국학을 설치하여 유교 경전을 교육하고,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설정하여 9년간의 학업을 마치면 나마나 대나마에 임용했다.

 

고려에서도 유학 교육과 관리 양성을 목적으로 학교를 운영했다. 태조는 개경과 서경에 학교를 설치했고, 성종은 ‘교육이 아니면 인재를 얻을 수 없다’는 조서를 발표하고 992년 국자감을 설치해 유학부에서 유교 경전과 함께 정치, 역사, 문학을 가르쳤다. 지방에는 향교를 설치하고 전국 12목에 경학박사를 파견해 유학을 가르쳤다.

 

조선 시대에는 사농일치의 교육제도를 바탕으로 교육 기회가 양인 전반에 확대되었고, 수령의 주요 역할 중의 하나가 교육 진흥이었다. 조선의 교육제도는 과거 제도와 연관되어 있고, 양반 중심의 교육이었으며, 유학 교육을 숭상했다. 이를 위해 중앙에 성균관과 4부 학당, 지방에는 향교와 서당(천자문과 동몽선습 교육)을 설치해 유학 교육을 강화했다. 사립 교육기관인 서원이 조선 중기에 설치되어 선현에 대한 제사와 교육을 담당했다.

 

이미지 01. 성균관 <명륜당> 보물 제141호 인재양성을 위하여 서울에 설치한 조선시대 국립대학격의 유학교육기관

이미지 02 동강서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85호 동강 이희정이 세운 이래 많은 유학도를 배출하였으며 19세기 말

이후에는 사설학원으로 바뀌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보통학교 2년 과정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기술 교육과 무인 양성 과정

고구려는 지방 학교인 경당에서 평민 자제를 대상으로 무술을 연마하게 했고, 백제는 전문가 집단인 박사 제도를 운영하여 의박사·역박사를 둔 것으로 보아 기술 교육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신라는 화랑도 제도를 통해 무술을 연마하게 했다. 좀 더 구체적인 기술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을 알 수는 없으나, 고구려·백제·신라의 역법과 각종 공예품, 철 생산, 조각품, 축성 등 현재 전해지는 유물과 유적을 통해 세부 분야별로 매우 체계적인 교육과 지식관리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남북국시대에도 기술 교육이나 무술 교육을 실시했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당시 계속된 전쟁, 그리고 남겨진 유물·유적, 그리고 교류 흔적 등을 통해 삼국시대의 전통을 계승해 민간차원에서 체계적인 기술 교육과 전승이 이루어졌다고 볼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국자감에 유학부와 함께 기술학부인 율학[법률], 서학[서예, 그림], 산학[수학]을 설치하여 교육하였는데, 평민들이 입학하여 교육받을 수 있게 했다.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에도 의학박사를 파견해 의학교육을 한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는 잡학을 국가 차원에서 매우 중시했고, 그 대상 분야는 법률, 서예, 그림, 수학, 의학 등 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교방(敎坊)은 향악을 담당했던 기관으로 기생학교를 겸했으며, 이 제도는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조선 시대의 기술 교육은 주로 중인들이 담당했는데, 해당 관청에서 교육했다. 의학은 전의감, 천문·지리는 관상감,외국어는 사역원에서 담당했다. 기생 교육의 경우 평양에서는 이른바 기생서재(妓生書齋) 또는 예기서재에서 이루어졌으나, 관기 제도의 폐지를 전후로 하여 주로 퇴기들이 집에서 기생이 되고자 하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가무와 서화 등을 개인 교습식으로 가르쳤다.

 

03. 1883년 민간에 의해서 함남 원산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근대적 교육기관인 원산학사 ⓒ조선일보DB

04. 평남평양 기생학교 수업 광경 ⓒ국립중앙박물관

 

교육으로 부국강병을 꿈꿨던 개항 이후 교육

1876년 개항 이후 조선 정부는 신사유람단·영선사·보빙사를 해외에 파견했으며, 다양한 문물을 접하면서 교육의 목적과 내용에도 큰 변화를 보였다. 큰 틀에서 본다면 국가 입장에서는 부국강병을 위해 근대 문물 교육과 외국어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민간에서는 대중 계몽을 통해 자주 의식을 고취하고자 한 개화운동의 일환으로 다양한 교육을 시도하게 된다.

 

최초의 사립학교인 원산학사는 고종 20년(1883) 함경남도 원산에 설립되어 외국어, 자연과학, 국제법, 무술 등 실용 학문을 가르쳤다. 이후 국립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이 고종23년(1886)에 설립되면서 미국인 교사를 초빙하여 상류층 자제들을 대상으로 영어, 수학, 지리학, 정치학 등의 근대학문을 가르쳤다. 또한 통역관을 양성하기 위해 동문학을 세워 외국어 교육도 실시했다.

 

1894년 단행된 갑오개혁의 결과로 반포된 홍범14조에 실린 교육 관련 항목은 ‘총명한 젊은이들을 파견해 외국 문물을 학습하고, 기예를 견습하며, 장교를 교육한다.’라고 적시하면서 근대 교육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반영했다. 고종은 근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1894년에 학무아문을 설치하고, 1895년에는 교육입국조서를 반포했다.

 

고종 황제는 교육에 대한 관심을 실천하기 위해 한성사범 학교와 외국어학교 관제를 공표하고, 경성의학교, 철도학교, 광업학교, 상공학교, 광무학교, 한성학교 등 중등교육기관을 설립했으며, 유학생을 파견하여 선진 문물을 습득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민간 차원에서도 배재 학당(중등), 이화 학당(여성 전문), 경신 학당(전문 상업) 등 개신교 계통의 사립학교가 만들어졌고, 애국계몽운동 등 민족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대성학교, 오산학교 등 사립 학교와 서북학회, 기호학회 등 교육단체를 설립했다. 사립학교와 교육단체를 만든 목적은 국가의 존망 위기에서 백성들을 깨어나게 하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하고자 함이었다. 이와 같은 노력은 일본이 1908년 사립학교령을 제정해 통제하고, 교과용 도서 검정 규정을 공포하면서 시련에 처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는 해외에서 독립을 챙취하기 위해 신흥무관학교, 서전서숙, 비행학교 등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국내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교육에 반발하며 야학 중심의 민족 교육, 문맹 퇴치 운동을 실시해 민중들을 계몽하고자 했으며, 조선교육회를 중심으로 민립대 설립 운동을 전개해 민족을 이끌어 갈 지도자들을 양성하고자 했다. 비록 이같은 노력들이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교육 활동을 독립운동과 연계해 진행하려 한 피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교육은 열 번의 교육 과정 개편을 거쳐 진화하게 된다. 현재 운영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모든 학생이 배우는 공통과목을 도입하고,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며, 소프트웨어와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핵심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05. 배재학당. 고종 22(1885)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중등과정의 사립학교 ⓒ문화재청

06. 1886년 서울에서 선교사 스트랜튼 여사가 세운 초·중·고등과정의 사립학교로,

우리 나라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 ⓒPublic Domain

 

교육의 가치와 나아가야 할 방향

위에서 언급한 제도권 중심의 유학, 잡학, 무술 교육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문명 자산들에 대한 교육활동이 초기국가 단계에서부터 지금까지 전개되고 있다. 고구려 고분을 예로 들면, 고분 축조 기술과 함께 고분 벽화에 보이는 음악, 기예, 각종 신앙 행위, 각종 전통 지식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부 종목에 대한 교육활동들이 있었을 것이다. 전통지식에 대한 교육은 교육생을 모집하거나 별도로 찾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있었으나, 실제 각 종목 교육은 일손을 도와주는 보조로 들어와서 오랜 기간 동안 경험하면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전통지식이 전승되는 사례들도 많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교육은 교육활동이 펼쳐지는 해당 시기에 강조되는 이데올로기와 지배층을 중심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배경을 반영하여 전개된다. 그러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불리는 교육이기에 어떤 형태의 교육이 이루어지든 ‘①인류 문명 성과물 전승 교육, ②활용 교육 ③가치관·인성 교육’을 중심으로 각 시대 상황을 반영한 다양한 교육활동이 전개되었다.

 

지금은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 개인의 핵심 역량 강화를 추구하는 시대이다. 개인이 지닌 역량과 지식을 체계화하여 다양한 형태(Youtuber, webtoon, 1인 방송 등)로 전승하고, 이를 받아들여 개인들의 핵심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다시 다른 이들과 공유하여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하는 세계를 지향하는 가르침과 배움의 세계가 열려야 할 것이다. 글. 김도현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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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