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계시는 숲 성황림(城隍林)

신이 계시는 숲 성황림(城隍林)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에는 천연기념물 제93호(1962년 지정) 원주 성남리 성황림(城隍林)이 있다.

 

이 성황림은 마을 숲이고, 이 숲속에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당집이 있다.  이 당집이 성황당이고,  당집을 둘러싸고 계곡을 따라 400~500미터 가량의 길이로 고산식물에서 야산 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물과 소나무·전나무·팽나무·벚나무·왕느릅나무 등 많은 나무들도 있다.  이 숲은 희귀종인 토종식물들도 포함하고 있고 산간지대인 치악산 기슭의 청정지역이라 다양한 생물도 서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은 생물 다양성 보존에 중요한 지역으로 보인다.

 

마을을 지키는 비보숲 성황림

성황림이 있는 성남리는 신림면 사무소에서 3km 떨어진 북쪽에 위치해 있고,  이 마을은 행정적으로 1리와 2리로 구분된다.  1리와 2리에는 모두 당숲이 있다.  1리는 소나무가 주류를 이루는 숲으로 ‘아랫당숲’이라고 하고, 2리는 자연잡목림으로 ‘웃당숲’이라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냥 자신의 마을 숲을 ‘당숲’이라고 한다.  마을 지명도 당뒤(성황림 동쪽 내 건너의 들),  당숲굴(작은지렁골 안쪽에 있는 당숲이 있는 곳의 굴.  옛날 화전민들이 살 때에는 이 굴에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당숲약수(서낭당 옆에 있는 샘), 당후동 서낭당(당뒤에 있는 서낭당을 말한다) 등 성황림을 중심으로 제당과 관련된 것을 여러 마을에서 만날 수 있다.

성남리가 속한 신림면의 신림(神林)이란 명칭도 바로 이 성황림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성남리에 있는 성황림을 신(神)적인 수림(樹林)이라 하여 ‘신림(神林)’이라 하였고,  이것이 현재 신림면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1리의 당숲은 1972년과 1990년에 일어난 홍수로 숲의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소나무 몇 그루만 남아 았는 상태다.  하지만 2리의 당숲인 성황림은 넓은 계곡을 따라 좌우로 오랜 세월 동안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적인 식생(植生)들의 보고(寶庫)로 여겨진다.

 

당집 마을의 신을 모신 신당

 

이렇게 잘 보존된 것은 옛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숲의 나무가 다치면 동네가 망한다.  마을을 번창시키려면 마을 앞을 숲으로 막아야 한다.” 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성황림은 마을 앞에 탁 트인 곳을 막아 마을과 주민을 보호하는 ‘비보숲’ 이자 마을의 수호신이 있는 신성공간이다.

오늘날 성황림이라고 하는 ‘당숲’은 옛부터 마을신이 사는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 평소 함부로 접근하지 않고 나무도 훼손하지 않았으며,  숲안에는 마을의 신을 모신 신당이 있어 이를 ‘당집’이라고 하였다.

 

 

성황림마을 봄 성황제 ⓒ김정민

 

성황림의 서낭제

성남리는 1리와 2리 두 개의 마을이 있고,  마을숲도 각각 있으며,  마을제사도 각각 지냈다.  성남리라는 하나의 마을 안 두 곳에서 마을제사를 지내면 대체로 남신과 여신으로 구분된다.  성남리에서 모신 신은 ‘서낭신’으로, 2리 ‘당숲(윗당숲)’.  즉 현재 성황림에 있는 신이 남신이고,  1리 당숲(아랫당숲)의 서낭신이 여신이라고 한다.  마을제사 ‘서낭제’는 2리의 당숲에 모신 남신에게 먼저 제사를 지내고,  그 다음 1리의 당숲에 모신 여신에게 지냈다고 한다.  성황림 내의 당집은 과거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집의 양쪽에는 오래된 전나무와 엄나무가 서있다.

 

지금은 서낭제를 2리 성황림 내의 당집에서만 지내고 있다. 과거엔 음력 4월과 9월에 지냈으나,  이 역시 현재는 10월에 한 번만 올리고 있다.  성황림 내의 당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제사에서는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정성을 다한다.  서낭제는 마을주민들의 삶의 일부이고, 신앙이다.

주민들은 “성황림이 잘 보존되고 서낭제를 정성 들여 지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마을에 큰 우환이 없었고, 동네에서 외지로 나간 사람들도 모두 건강하게 돌아왔다.”고 믿는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마을제사를 ‘성황제’라고 하지 않고 ‘서낭제’라고 하면서도,  당집은 성황당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숲의 명칭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면서 ‘성황림(城隍林)’으로 명명하였다.  당집안에 신위도 ‘성황지신위(城隍(之神位)’이다.  그러면 마을신은 성황(城隍)인지 서낭인지가 의문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것은 조지훈 선생의 견해가 참고될만 하다.

 

“성황은 중국 성지(城池)의 신이니, 성지신(城池神)의 수호신으로서의 의의가 고유신앙의 산신·부락신의 수호적 의의와 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황신은 외래신이요,  그만큼 이 계통 신앙 중 가장 늦게 생긴 이름이다.  그러나 이 성황신이 문자 기록상으로는 이 계통 신앙의 대표적인 명칭이 되고 말았다.”

 

“명칭은 성황이라도 형태는 중국의 성황이 아니요,  고유의 천왕당· 선왕당· 산신당과 같을 뿐만 아니라 문자로 성황당이라 써 놓아도 식자층 이외에 일반 대중은 그대로 ‘서낭당’이라 부른다.  어쨌든 이 계통 신앙 중 발달된 당집, 곧 전각(殿閣)으로 된 신당은 그 현판(懸板)과 신위(信位)가 십중팔구 성황당이요, ‘성황지신위(城隍(之神位)’인 것이 사실이다.

 

조지훈(趙芝薰, 1920-1968)선생이 이야기한 바와 같이 성황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이후에 중국에서 들어 왔고,  조선시대에 들어 전국의 신당들이 성황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일반 백성들은 ‘서낭’이라 한 것을 중국 성황신이 들어 오면서 ‘서낭’이 한자식으로 ‘성황(城隍)으로 표기했을 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현재의 서낭제

현재 서낭제는 천연기념물 성황림과 연계한 마을민속문화 행사로 지내고 있다.  제물은 통돼지를 올리고 과일과 떡, 북어 등을 준비한다.  제관들은 제복과 유건을 쓰고, 제사는 유교식으로 초헌을 하고,  축을 읽고 아헌과 종헌 등의 순서로 진행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당집에서 소지를 올리는데,  이와 함께 당집 옆에 엄나무에도 제물을 차리고 단헌으로 제사를 올린다.  당집 제사에는 시의원,  조합장,  마을노인장 등이 헌관으로 참여하였다.

제사는 과거 마을주민들 중심으로 올리던 것을 개방적으로 바꾸어 시의원이나,  지역의 조합장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고,  밤에 하던 제사를 낮 시간대로 하는 등 변화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마을에서 전승하던 전통성을 가지고 충실히 시행하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마을숲인 성황림의 보호와 마을주민들의 안녕을 위해 올리는 제사라는 점에서 마을주민들과 지역민들이 천연기념물의 보호와 연계된 제의행사로는 적절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행사가 마을제사라는 점에서 너무 정적인 요소들로만 구성되어 보는 사람들에게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제사 후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 행사가 있는데,  그 다음에 뒤 따르는 농악 놀이 등을 하면서 외부인들에게 먹거리와 함께 볼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성황림과 마을 탐방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면 성황림이 갖는 역사문화와 자연유산자원의 더 좋은 활용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  글. 석대권(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민속분과 위원) / 사진협조.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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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