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수행자와 도덕적 권위

출가수행자와 도덕적 권위

 

 헌법에서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 정치와 종

 교가 완벽하게 분리되기는 어렵다.  다만 국교 제도를 유지하던 전제왕

 조 시절과 달리 정치와 종교 사이에 상하‧주종 관계보다는 비공식‧간접적

 인 관계로 맺어지고 있을 뿐이다. 1945년 민족 해방 이후 미군정과 이승

 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치(정부)

 가 종교를 하위로 다루고 종교계도 여기에 끌려가는 분위기였지만,  1987년 민중항쟁과 직선제 개헌 이후의 민주화 시대에는 정치권이 종교계에 표를 구걸하게 되면서 선거 때가 되면 종교계가 정치권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불교를 예로 들면,  1987년 이후 국무총리‧각 부처 장관과 여야 당대표 등이 취임하자마자 조계종 총무원을 찾아 인사를 하고 덕담을 듣는 것이 이제 당연한 관례가 되었지만 민주화 이전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일이다.  이것은 불교뿐 아니라 가톨릭과 개신교 주요 교단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종교계 어른들의 좋은 말씀을 들어 지침으로 삼아 정치를 잘 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지라도,  이들이 종교인을 찾아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정치를 잘 해준다면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현실 상황은 그리 좋게 봐줄 수 없다.  종교 지도자들을 찾는 정치인들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해당 종교계의 민원 해결사를 자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종교 지도자들도 거의 모두 자기 종교의 현안 해결을 부탁하거나 압박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런 모습은 각 종교계 언론의 보도를 통해 해당 종교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공개된다. 그러나 종교인들이 이런 식으로 정치에 참여 또는 간여하게 되면 국민들에게서 비판을 받게 되거나 아예 외면을 당할 수도 있다.  특정 종교에 대한 정치권력의 과도한 후원이 오히려 그 종교에 대한 국민 대중의 의구심을 조장하고 반감과 이탈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분야와 달리 종교인들의 발언과 행동에는 무엇보다도 ‘도덕적 권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기본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설프게 정치에 간여했다가는 오히려 해당 종교계에 치명적인 결과,  구체적으로는 해당 종교 신자들은 의례 참여와 보시(헌금) 거부를 하고 심지어는 자식들의 출가를 막거나 종교를 떠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며,  비(非)종교인들에게서는 국고지원 반대 등 거센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종교지도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기대하고 있으며,  이 도덕성은 종교지도자들이 사회에 영향력을 유지‧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종교조직은 오로지 그 도덕적 권위 때문에 권력을 갖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종교사회학자 강인철의 표현대로 “종교지도자들이 강한 도덕적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극소수에 의한 도덕적 일탈조차 전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도덕적 추문은 ‘도덕적‧윤리적 자살’과 다름없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여야 구도와 관계없이 거의 모든 정치권력은 권력을 비판하는 종교인들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어 꼼짝 못하게 하려고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인들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앞에 와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하지만 결점을 찾아내려고 하는 정치인들에게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2022년의 대통령선거‧ 지방자치 선거 등 주요 정치 일정이 가까워지면서 정치인들이 스님들을 찾아 ‘표’를 호소하면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며 생색을 내려 할 것이다.  이럴 때에 민원 부탁 없이 편안하게 “정치 잘 해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시는 것 말고 바랄 것이 없다”는  진짜 덕담만 해주면 출가자의 도덕적 권위는 저절로 지켜질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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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