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볍(妙法)의 양약을 먹어라
제바달다품에서 지적보살과 사리불은 용녀의 성불을 의심하였으나 여인 성불이 눈앞에 드러나자 입을 다물고 할 말을 잃었도다. 지적보살과 사리불의 의심은 방편(方便)의 별교(別敎)의 입장이다.
이승삼승(二乘三乘)과 오역죄인 일천제(一闡提)와 여인등이 성불함은 볶은 종자에 싹이 트는 것과 같고 고목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음과 같도다. 이는 오로지 묘법연화경이 아니면 이루지 못할 일이로다. 팔세 용녀가 돈초성불(頓超成佛)함은 원교(圓敎) 보살의 일이로다.
별교(別敎)는 원교(圓敎)의 깊고 광대함을 알지 못한다.
“법화 이전의 모든 경전에서는 부처가 되어야 할 자도 부처가 되지 못하고 법화경에서는 부처4가 되기 어려운 자도 한결같이 부처가 됨이라.”(일연대사)
그러므로 세존께서 이법을 한 게송이라도 들을지라도 모두 성불함이 의심이 없노라. 내지어일게(乃至於一偈) 개성불무의(皆成佛無疑)라 하셨다.
만약 성불을 원하고자 한다면 묘법연화경을 놓치지 마라.
“나무묘법연화경” 제목을 소리높이 부를 때가 곧 중생이 성불할 때이니라.
만약 성불을 원하고자 하는 사람이 묘법연화경을 떠난다면 가난한 자가 재물을 버림과 같고 밤길 가는 자가 등불을 버림과 같고 나루에서 배를 버림과 같고 굶주린 자가 식량을 버림과 같으니라.
백천만억 빗방울이 바다에 떨어지면 하나같이 바닷물이 되듯이 구법계(九法界) 모든 중생이 “나무묘법연화경” 소리높이 부를 때 기법일체(機法一體)되어 성불하게 됨이니라. 기법일체란 제목을 부르는 중생과 법본존인 묘법연화경이 하나가 되어 중생이 중생인채로 불도에 들게 됨이니라.
매자작시의(每自作是意) 이하령중생(以何令衆生)
득입무상혜(得入無上慧) 속성취불신(速成就佛身)
매양 스스로 생각하기를 어떻게 하면 중생으로 하여금
무상지혜 들게 해서 부처의 몸을 속히 이루게 할 것인가 하노라.
세존께서 매양 중생 성불을 간절히 애타게 바라신 게송이로다.- 여래수량품
중생이 성불할 수 없는데 성불하라 하심은 부처님의 허물이고,
중생 성불의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가지 않는다면 중생의 허물이다.
화엄경에서는 고산(高山)에 연꽃이 필 수 없듯이 이승(二乘)은 성불할 수 없고 또 여인은 지옥의 사도(使徒)라 하여 여인 성불의 문을 닫았으나
법화경에 와서 이승작불(二乘作佛)과 여인 성불의 문이 활짝 열렸으니,
어찌 이승과 여인이 법화경을 떠나리오.
만약 이승과 여인이 이 경을 떠난다면 물고기가 물을 떠남과 같으리라.
“한량없고 가이없는 불가사의 아승지 겁을 지날지라도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리니, 왜냐하면 깨달음의 크고도 곧은 길을 알지 못하는 까닭으로 험한 길을 가는데 고난이 많은 까닭입니다.
- 무량의경
위의 경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묘법연화경은 법계 모든 중생 성불의 직도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성제지어(誠諦之語)를 금생에 만났으니 애꾸눈 거북이가 바다에 뜬 널빤지 구멍을 만난 것과 같으리라. 금생에 이 몸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또 어느 생을 기약하리오.
여시오악(如是好樂) 이불긍복(而不肯服)
이와 같은 좋은 약을 먹지 않으니,
묘법의 양약을 먹음으로 해서 전도된 중생의 병은 반드시 나으련만 이 양약을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 양약을 먹지 않으니 기막힌 노릇이다.
묘법의 양약을 먹으면 반드시 본래시불(本來是佛)을 회복하련마는......
이 약을 먹되 차도가 나지 않을까 근심하지 말아라.
전도된 중생의 병만 나으면 바로 그냥 불성은 드러나리라. 오역죄인 조달이가 천왕여래(天王如來) 기별 받고 비기오장(非器五障) 용녀가 돈초성불(頓超成佛)함도 한결같이 법화경의 힘이로다.
부처님의 성교(聖敎)가 아니면 무엇으로 불사(佛事)를 행하겠느냐. 만약 법화경이 없다면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으리라. 나무묘법연화경 제목을 소리 높이 부를 때 저마다 자신 가울데 잠들고 있는 부처가 깨어나는 때이니라. - 혜성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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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