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대통령 첫 심경고백 "지난 6개월간 주 4회씩 재판…참담·비참" 사실상 재판 보이콧
박근혜 전 대통령은 16일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지길 바란다"며 재판부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와 구속이 연장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데 대한 심경을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속행 공판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 도중 직접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전 대통령은 우선 "구속돼서 주 4회씩 재판을 받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참한 시간들이었다"며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돌아왔고 이로 인해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저를 믿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던 공직자들과 국가 경제를 위해 노력하시던 기업인들이 피고인으로 전락해 재판받는 걸 지켜보는 건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고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사사로운 인연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없다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믿음과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심신의 고통을 인내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변호인들은 물론 저 역시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변호인단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도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란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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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의 반격 / 朴변호인단 총사퇴 초강수 ◆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기소)이 침묵을 깨고 직접 법정에서 발언을 하고 '변호인단 총사퇴'라는 강수를 둔 것은 법리 싸움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향후 재판을 정치투쟁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선고형량 등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재판 보이콧 선언'으로 풀이된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80회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은 '배신'과 '보복'이라는 정치 프레임을 던졌다. 이는 소수로 남아 있는 자신의 지지층을 재결집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에서는 여전히 박 전 대통령을 비선실세 최순실 씨(61·구속기소)에게 속은 피해자로 여기고 있다. 과거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 덧씌웠던 '배신의 정치'를 다시 활용해 본인과 최씨의 공범 관계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문재인정부에서 '적폐청산'을 기치로 이명박·박근혜정부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새로운 혐의가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국정농단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들이 1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은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만 무죄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리얼미터가 이날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이전 정부에 대한 수사를 현 정부의 정치보복(26.3%)보다 적폐청산(65.0%)으로 보는 여론이 강한 것도 불리한 요소다.
이 때문에 오히려 자신과 문재인 대통령을 대결 구도로 설정하고 정권의 피해자로 본인을 규정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또 자신이 몸담았던 자유한국당이 본인을 출당시키려고 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의 법정 메시지는 지지자들을 다시 결속시키는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주말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 무죄 석방 서명운동본부'가 대학로에서 3000명 규모의 집회를 벌이고, '태극기시민혁명 국민운동본부' 역시 같은 날 500명 규모의 태극기 집회를 연다. 오는 26일에도 박정희 대통령 서거 38주년을 맞아 추도식을 여는 등 대대적인 세몰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정치적 움직임이 강해질수록 향후 재판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적법한 절차이며, 이를 따랐다는 이유로 변호인들이 사임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향후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 피고인 측에서 협조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판부 역시 "국민적 관심이 높아 실체 규명이 중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오히려 박 전 대통령 측은 구속 상태지만 법정 출두 거부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전례도 있다. 이들은 12·12 사태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내란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 중이던 1996년 7월 한 차례 법정 출두를 거부해 재판이 파행을 빚었다. 당시 변호인단이 "법원이 유죄 심증을 갖고 재판 신속성만 고려한다"면서 집단 사퇴를 했는데도 재판부가 재판을 강행하자 '출석 거부'를 선언했다.
박 전 대통령이 조속히 새로운 변호인을 선임하든지, 아니면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든지 상당 기간 재판 지연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날 재판부가 여러 차례 변호인 사임은 미결구금일수 증가로 박 전 대통령에게 오히려 더 피해가 간다고 언급했음에도 변호인단은 사임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치권 등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최종 목표가 사면에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할지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겠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분들이 있어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거라 믿는다"고 말한 점에서도 중형을 예상하고 있는 속내가 읽힌다. 이 때문에 현 정부에서 어렵다면 다음 정부에서 사면 등 정치적 타협점을 노려보겠다는 것으로 보는 의견도 나온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김영삼정부에서 수감됐다가 김대중정부에서 사면을 받았다.
일단 재판부는 오는 19일 81회 공판을 열고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58·구속기소)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상적으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설령 국선변호인단이 지정된다고 해도 이틀 만에 1만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기록을 살펴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는 박 전 대통령이 다른 변호인을 선임하겠다며 재판 기일을 미뤄줄 것을 요청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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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