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은 하느님의 선물…새 대통령은 안보부터 챙겨야“

“부활절은 하느님의 선물…새 대통령은 안보부터 챙겨야“

천주교 원로 정의채 몬시뇰 “이제 共存·共助·共榮 시대…좌·우파는 상대 존재 인정 필요” 


"퇴행(退行)적이다."
 3년여 전, 그러니까 취임 1년째를 맞이한 박근혜 전(前) 대통령에 대해 천주교 정의채(鄭義采·93) 몬시뇰(명예 고위 성직자)이 내린 평가였다. 불행하게도 이 말은 기우에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 국민원로회의 위원이기도 했던 그는 역대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이 시대 원로 중에 원로이다.
 
정의채 몬시뇰의 서울 선릉로 사제관 낮은 장롱 위엔 작은 십자가와 초, 성수(聖水)를 담은 유리병이 놓여 있다. 10여 명의 사제가 함께 사는 사제관 1층엔 경당이 있지만 그는 "가끔 혼자 이곳에서 미사를 드린다"고 했다. 정 몬시뇰은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지성이다. 로마 우르바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가톨릭대와 서강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웬만한 신부들은 다 내 제자"라고 말할 정도이다.
 


평북 정주 출신으로 함남 원산 덕원신학교 재학 중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학업을 중단했고, 피란을 내려오다 생사(生死)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 그는 "위협이 다가오면서 처음엔 '사제로서 1년만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공산군이 내 이마에 권총, 배에 따발총 부리를 갖다 댔을 때는 '하루만이라도 사제로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무사히 월남해 1953년 사제품을 받고 지금까지 미사를 드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 했다. 정의채 몬시뇰은 1925년 평북 정주 출생으로, 1952년 가톨릭대를 졸업했고 1953년에 사제 수품을 했다. 이어 1961년 로마 우르바노대 철학박사, 가톨릭대 철학교수(1961~1985), 서강대 철학교수(1985~1988), 가톨릭대 총장(1988~1991)을 역임했다. 2005년에 교황 몬시뇰(명예고위성직자)에 서임됐고 대통령 국민원로회의 위원(2009~2010)을 지냈다.
 
“밤이 깊어지면 새벽 와…우리는 저력 있는 민족” 
 
부활절(4월16일)을 맞아 정의채 몬시뇰을 만나 예수 부활의 의미와 최근 상황을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관한 발언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에게 혼돈의 시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물었다. 작은 체구에 백발이 성성한 모습인 정 몬시뇰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실망이 컸지만 놀라지는 않았다"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올해 부활절은 어떤 마음으로 맞으십니까?
 
"부활절을 맞을 때마다 하느님의 섭리를 느낍니다. 매년 부활 주일쯤이 되면 겨우내 죽은 것 같았던 나무들이 일제히 소생합니다. 그늘진 곳에 있는 풀도 다 새싹이 나오고요. 이런 기쁨과 은혜는 신자들뿐 아니라 모두에게 주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물론 신앙인들에게는 그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오겠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평양의 신자들을 생각하며 매일 기도합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복잡합니다. 대통령 선거는 1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도 심각합니다.
 
"북한은 공산주의라는 발판 위에 건설된 왕조국가입니다. 혈기 왕성한 절대 권력자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습니다. 북한은 적화통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핵을 반드시 사용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안보에 관해서는 남에게 의탁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어떤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가겠다'고 했다는데 위험한 생각입니다. 과거 영국 체임벌린 총리가 히틀러에게 속았고, 김구 선생도 김일성의 평화 공세에 이용당했습니다. 저는 좌·우파가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눈도 귀도 좌우가 함께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좌파 분들께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우(右)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새 대통령은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할까요?
 
"무엇보다 안보를 우선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기일수록 솔선수범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처칠 총리는 포탄이 떨어지는 가운데에도 항만을 거닐면서 부상자들을 돕고 노약자를 돌봤다고 합니다. 대선 주자들이 그렇게 국민 속으로 들어가 소통할 때 국민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겉으로는 국민 통합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끼리끼리 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습니다."
 

▲ 천주교 최고지성 정의채 몬시뇰은 “요즘도 매일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 기도하고 묵상한다”며 “특히 요즘은 상황이 워낙 엄중해서 6·25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고 말했다.  


-3년여 전에 '퇴행적'이라는 평가가 현실화됐습니다.
 
“ '퇴행적'이라는 말은 당시 정책을 포함해 넓은 의미를 내포한 말이었지요. 그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실화된 것이 우리의 실정입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착하다 해도 직무상 무능하거나 대통령의 권한을 지난날의 개인적 도움의 대가로 남용한 것은 큰 잘못입니다. 이런 가능성을 내다보며 '퇴행적'이란 표현을 쓴 것이지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잘못할 줄은 생각을 못했지요. 아버지가 대통령이었던 시절을 길게 살았으니까 여러 가지를 보고 들은 것도 있고, 국회의원으로 경험한 것도 있고….”
 
-야당도 무책임하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야당은 권력을 빼앗겠다는 것밖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금도 권력 외에 국민을 위한 정치는 보이지 않아요.”
 
-한국 사회는 이제 누구도 믿지 못하는 불신 사회가 됐습니다.
 
“우리 사회가 신뢰 사회로 가느냐는 전적으로 최순실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최순실 사태는 순리대로 풀어야합니다. 복잡하지만, 핵심은 최순실과 대통령의 관계입니다. 어떤 관계인지, 어떻게 이런 문제가 일어났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그런 것을 토대로 흐트려놓고 망가뜨린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시뇰님은 항상 한국의 미래는 밝다며 희망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진학, 취업, 결혼 등의 삶의 고비마다 문턱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젊은이들이 희망입니다. 우리는 늘 내부에선 다투고 갈등을 겪다가도 마지막 순간 극적으로 단결합니다. 그런 저력을 믿습니다.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지만 기술 문명의 발전은 곧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전혀 다른 세상을 열 것입니다. 제가 다섯 살 때부터 붓글씨를 배웠는데 한 5년 지나니 연필, 다시 5년쯤 지나니 만년필 시대가 됐습니다. 지금 주판 사용하는 사람이 있나요? 앞으로는 인터넷 정도가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시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세 번째 1000년대(2000년대)는 '공존(共存)' '공조(共助)' '공영(共榮)'의 인류 공통 문화 시대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할 일이 많습니다. 젊은이들은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 개도국 가운데 선두이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나라입니다. 개도국이 선망하는 나라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개도국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도록 정부가 뒷받침해야 합니다. 대신 요즘 젊은이들은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발적으로 우리의 뛰어난 기술과 예술적 재능을 활용해 전 세계를 누비도록 뒤에서 도와야 합니다. 봉사와 헌신의 힘은 강합니다. 세계가 우리를 존경할 것입니다."
 
-요즘은 어떤 주제로 기도하시나요?
 
"저는 천주교 사제이기 때문에 늘 기도하려고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요즘도 새벽 5시 반쯤 일어나 세수하고 2시간 정도 독서 기도와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평소에는 어린이와 장애인, 빈민, 노인들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요즘은 무엇보다 '이 민족에게 6·25와 같은 또 다른 비극이 없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 시름에 빠진 국민에게 하실 말씀은. 
 
“한국사에 그간 놀랄 일이 얼마나 많았나요. 4·19혁명과 이승만 대통령 하야, 군사혁명, 10·26…. 이승만 하야 때는 쫓겨나면서도 끝을 잘 맺었어요. 끝까지 북진통일을 주장해, 추방당하면서도 미군을 잡아놓고 갔죠. 무슨 일이든 나쁜 일에는 좋은 것도 나타나요. 밤이 깊어지면 사람과 만물을 일깨우는 새벽빛이 떠오르는 법입니다. 지금 우리가 불행하더라도 지금 대선을 앞두고 마무리하기에 좋은 기간입니다. 우리는 곤경 속에서도 전화위복을 맞이한 저력 있는 국민입니다.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그것도 반쪽 남한이 50년이란 단 시간에 세계 경제 10대국을 넘보는 나라가 됐습니다. 참 신기한 민족입니다.”  

‘고령화’ 등 한국교회 진단·대안 제시…평신도 중요성·역할에 대해서도 밝혀
정의채 몬시뇰, 저서 『인류공통문화 지각변동 속의 한국 2』에서 대안 제시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석학 정의채 몬시뇰(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은 제3천년대 세계사의 거대한 조류 속에서는 한국의 역할과 한국교회의 질적 성숙이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 “3천년대는 권(權)은 민(民)에게, 부(富)는 빈(貧)에게, 강(强)은 약(弱)에게 봉사하며 자리를 바꾸어가는 도정을 시작한 때”라며 “결국 모든 인류가 공통문화를 통해 하느님 창조 계획을 실천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전했다. 인류공통문화 형성에 관한 사상이란 인류 공통 과제인 공존과 공조, 공생, 공영을 말한다. 그리고 인류공통문화 시대의 주제는 ‘생명’과 ‘사랑’으로 함축될 수 있다. 정 몬시뇰은 이러한 인류공통문화의 시대에는 “사랑의 본질이며 시작이자 끝인 가톨릭교회가 보다 적극적인 사랑 실천과 육성, 나아가 사랑의 몸체로서의 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 몬시뇰이 2013년에 펴낸 저서 『인류공통문화 지각변동 속의 한국 2』는 이와 관련한 깊이 있는 제언과 비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정 몬시뇰은 다양한 학술발표문과 시론, 대담 등을 통해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3천년대 인류의 삶인 ‘인류공통문화’의 형성과 방향을 제시하는데 탁월한 시각을 보여온 학자이다. 특히 복잡다단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 굵직한 대안을 제시해 온 인물이다.
 
『인류공통문화 지각변동 속의 한국』은 정 몬시뇰이 새 천년대에는 인류문화가 한 마을 또는 한 가정의 삶과 같이 진화할 것이라는 시각을 바탕으로 기획한 저서이다. 2012년 첫 선을 보인 『인류공통문화…』 제1권에서는 3천년대 인류문화 속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중심으로 풀어낸 바 있다. 그 이후 1년여 만에 펴낸 제2권은 3부로 구성, 우선 한국 평신도의 중요성과 그 역할을 밝히고 있다. 이어 2부에서는 교회와 젊은이 사목(司牧)을 위한 명동 개발의 당위성을, 3부에서는 미래지향적 교회의 모습을 제시하며, 고령화 및 청년 이탈, 절충주의로 인한 조락(凋落)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각 대안들은 정 몬시뇰의 학술적 연구 뿐 아니라 실제 사목현장에서 한국교회 성장과 쇄신에 크게 기여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돼 공감대를 더욱 넓히고 있다.
 
정 몬시뇰은 “지난 수세기 동안 식민지의 착취와 독재로 인류가 끌려갈 때 인류의 이상적 표어는 ‘사회정의’와 ‘인권’이었지만, 공통문화 시대에는 ‘생명’과 ‘사랑’이 주제”라며 “인류공통문화의 기저인 생명문화의 핵심은 모두가 같이 잘 사는 것으로 향하며, 이는 하느님 창조경륜의 실현”이라고 강조한다.


편집부 :  기사 출처<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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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