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

 영친왕


일본에 볼모로 잡혀갔다는 영친왕의 일본 저택!
〈현재 아카사카프린스호텔〉

여덟 또는 다섯 신하들을 동원해서 또는 그들의 충성을 도구삼아 조선을 일본에게 평화롭게 넘기고 종묘와 왕가를 유지한 고종일가는 합병 후 일본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그런 추한 댓가로 1930년에 영친왕이 받은 일본의 저택 사진입니다. 일본 궁내성의 키타무라 코조, 콘도 요오키치가 서양식으로 설계해서 건설한 저택입니다. 영친왕은 20대부터 여기서 살았습니다.

영친왕은 1910년부터 일본제국에서 천황가 다음으로 높은
150만엔의 세비를 받던 이왕직의 대표였습니다. 그 당시 조선 총독부 일년 예산이 1,500 만엔 였습니다. 그 십분의 일을 수입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다른 일본 천황가의 수입이 채 1만엔이 안되는 시절에도 말이죠.

1945년까지 잘먹고 잘살다가 일제 패망 후에 황족신분 박탈 당해서 세비도 못받고 거지된 다음에 저택도 일본정부에 몰수 당해서 일본 참의원 의장 관저로 쓰였고, 나중에 일본기업에 헐값에 팔려 지금은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로 건축되어 영업 중입니다.

종전 후 영친왕은 일본으로 완전히 귀화해서 황족신분을 유지하려 애를 썼지만 맥아더 군정에 의해 실패하고, 그 많던 돈도 다 날리고 병들어 살다가 박정희 시대 때 정부 선처로 귀국하게 됩니다. 이런 영친왕을 한국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현재 아카사카 프린스호텔


편집부          자료제공 : 박정석 선생 (일본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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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