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되는 길

부처가 되는 길


武安力道(다케야쓰 리키도) 御尊師(어존사)
[法華初心成佛抄(법화초심성불초)]에 [부처가 되는 道(도)로는 我慢偏執(아만편집)의 마음 없이 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라고 奉唱(봉창)하여야 하는 것이니라](新,1321/ 全,557) 나는 언제나 人間(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題目(제목)을 奉唱(봉창)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방금 拜讀(배독)한 御書(어서)의 말씀과 같이 [부처가 되는 길] 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의 佛道修行(불도수행)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막대한 돈을 필요로 했습니다. 世俗(세속)의 일에서 떨어져서 수행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생활비를 마련해 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은 佛道修行(불도수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스승의 문하에 입문하는 경우도 돈을 쌓아서 일체의 생활비의 부담을 의탁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입문이 허락되는 짜임새로 되어 있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으로 어떻게든 佛道修行(불도수행)을 하고 싶은 사람은 外護者(외호자)를 찾아내어 생활비의 원조를 받고 修行覺道(수행각도)한 그 때에는 外護(외호)하여 주신 사람을 救(구)한다는 약속을 맺어 修行(수행)에 들어 갔던 것입니다.
또 修行(수행)의 내용도 상당히 엄하였으므로 [三日僧(삼일승)]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일대 결심을 하여 수행에 들어가도 삼일도 지속하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복하고도 어지간히 의지가 견고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佛道修行(불도수행)은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佛法(불법)에 의해 구제 받을 수 있는 자는 上根上機(상근상기)의 극히 일부의 사람에 한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大聖人(대성인)은 [守護國家論(수호국가론)]에 [그 敎(교)를 배우는 人數(인수)는 龍鱗(용린)보다도 많고 得道(득도)하는 자는 麟角(인각)보다도 드물다](新,118/ 全,36)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得受職人功德法門抄(득수직인공덕법문초)<最蓮房書(사이렌보서)>]에 [敎(교)가 더욱 權(권)이면 位(위)는 더욱 높고 敎(교)가 더욱 實(실)이면 位(위)는 더욱 낮으니라](어서 589) 라고 妙樂大師(묘락대사)의 말을 인용하여 敎(교)가 權(권)의 가르침, 方便(방편)의 가르침이라면 그럴수록 극히 일부의 機(기)가 뛰어난 사람밖에 구할 수 없으므로 位(위)는 높게 된다. 그와 반대로 가르침이 眞實(진실)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으므로 修行者(수행자)의 位(위)는 낮아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즉 佛道修行(불도수행)이 곤란하기 짝이 없고 일부에 限(한)해 한 사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은 가르침이 權(권)의 가르침이었으므로, 진실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修行(수행)할 수 있고 누구든지 救濟(구제)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 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것은 어린 아이들이나 노인 들이나 외국인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佛道修行(불도수행)이 이렇게 간단한 형식으로 나타난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朝夕(조석)의 勤行(근행)으로 讀經(독경)을 합니다만 大聖人(대성인)님 안목으로 된 根本(근본)은 題目(제목)을 奉唱(봉창)하는 것에 있습니다.
★ 또 佛前(불전)에 앉을 수 없다면 [法華初心成佛抄(법화초심성불초)]에 [우리들 衆生(중생)이 行住坐臥(행주좌와)에 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를지어다]<新,1320/全,557> 라고 있으므로 걸으면서 불러도 상관없다고 말씀하시고 있으므로 이렇게까지 고마운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佛道修行(불도수행)이 이 정도로 간단하게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어 있으나 아무도 알아차리려고 하지 않고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또 들어도 일단 믿고 있는 사람들도 이야말로 부처의 길이라고 생각을 정하여 題目(제목)을 奉唱(봉창)하는 사람은 정말로 적습니다.
大聖人(대성인)은 [慈覺大師事(지카쿠대사사)]에 [받기 어려운 人身(인신) 만나기 어려운 佛法(불법)을 만났는데](新,1454/ 全,1019) 라고 말씀하셨으며, [撰時抄(선시초)]에 [그러므로 나의 弟子(제자)들은 시험삼아 法華經(법화경)과 같이 身命(신명)을 아끼지 않고 修行(수행)하여 이번에 佛法(불법)을 시험할지어다](新,871/全,291) 거듭하여 [道心(도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듣고서 기뻐하시라. 正像二千年(정상이천년)의 大王(대왕)보다도 後世(후세)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末法(말법)의 지금의 百姓(백성)인 것이니라. 이것을 믿지 않을손가. 저 天台(천태)의 座主(좌주)보다도 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癩人(나인)이 될지어다.](新,838/全,260) 人間(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극히 드믄 것이지만 살고 있는 人間(인간)은 그다지 그렇게는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佛法(불법)을 만난다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지만 이것도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人間(인간)으로 태어나서 더구나 宿緣深厚(숙연심후)함에 의해 이 佛法(불법)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大聖人(대성인)님은 정말로 法華經(법화경)의 가르침과 같이 마음으로부터 信心(신심)에 눈을 떴다면 身命(신명)을 아끼지 않고 修行(수행)하여 얼마만큼 이 佛法(불법)이 틀림이 없는 것인지를 시험해 보시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大聖人(대성인)처럼 題目(제목)을 불러서 목숨을 노림을 당하는 일은 없으므로 [身命(신명)을 아끼지 않고] 라고 하는 修行(수행)은 할 수 없으나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른다. 하찮은 TV를 보지 않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大聖人(대성인)은 [撰時抄(선시초)]에 [道心(도심)이 있는 사람들] 이라고 하는 말씀처럼 즉 정말로 成佛(성불)을 하고 싶다고 원하고 있는 사람은 지금 末法(말법)에 태어나서 좋았다. 地位(지위)도 學問(학문)도 最高(최고)로 더없이 세상에 존경 받고 있는 사람보다도 남들이 꺼리고 피하고 쫓기는 病(병)에 걸려서 태어나 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를 부를 수 있는 자의 편이 훨씬 뛰어났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世上(세상)은 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사람이 훌륭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는 말하지만 이것을 좀처럼 믿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세상에는 흘륭한 인물과 두뇌가 좋은 사람과 마음이 다정한 사람 및 남의 일을 잘 돌보는 사람 등이 많이 있습니다.


★ 基督敎(기독교)의 牧師(목사)님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世間(세간)의 뛰어난 사람으로부터 보면 우리들은 쓸모 없는 人間(인간)처럼 생각되는 것이 보통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人間(인간)의 입장. 人間(인간)의 思考方式(사고방식)에 따라 보니까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大聖人(대성인)님의 御眼(어안)으로 보신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大聖人(대성인)님이라면 世間(세간)의 어떠한 뛰어난 훌륭한 사람들보다도 여기에서 자신이 쓸모 없는 人間(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쪽을 존귀하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야말로 옛날의 大王(대왕)보다도 天台(천태) 智者學匠(지자학장)보다도 소중히 소중하게 成佛(성불)을 이룰 수 있도록 생각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日寬上人(니치칸상인)의 말씀 중에 [悲門(비문)은 下(하)를 冥(명)이라고 하느니라] 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慈悲(자비)라는 것은 맨 아래의 나쁜자와 어리석은 자를 救濟(구제)하는 것이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앞에서의 [得受職人功德法門抄(득수직인공덕법문초)]에 [敎(교)가 더욱 權(권)이면 位(위)는 더욱 높고 敎(교)가 더욱 實(실)이면 位(위)는 더욱 낮으니라] 라고 하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大聖人(대성인)의 御書(어서)를 拜(배)하면 반드시 아래로 눈을 향하시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佛法(불법)에는 受職(수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修行(수행)을 이룩하여 부처로부터 印可(인가)를 받는 것입니다.
釋尊(석존)의 佛法(불법)에서는 天台(천태)가 정한 것으로 五十二位(오십이위)라고 하는 修行(수행)을 거듭하여 부처와 동등한 等覺(등각)의 位(위)에 올랐을 때 많은 부처가 모여 [妙覺(묘각)의 智水(지수)라는 물을 머리에 뿌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受職灌頂(수직관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같은 말이나 제도가 있었어도 受職灌頂(수직관정)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修行者(수행자)는 이것을 목표로 修行(수행)에 온 힘을 다한 것입니다.
그러나 大聖人(대성인)의 佛法(불법). 本宗(본종)의 수직은 그와 같은 修行(수행)을 완성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得受職人功德法門抄(득수직인공덕법문초)]에 [聖者(성자)보다도 凡夫(범부)에 受職(수직)하고 善人(선인)보다도 惡人(악인)에 受職(수직)하며 上位(상위)보다도 下位(하위)에 受職(수직)하고 내지 持戒(지계)보다도 毁戒(훼계), 正見(정견)보다도 邪見(사견), 利根(이근)보다도 鈍根(둔근). 高貴(고귀)보다도 下賤(하천), 男(남)보다도 女(여), 人天(인천)보다도 畜生(축생) 등에 受職(수직) 하느니라](어서 588)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大聖人(대성인)의 御眼(어안)은 늘 아래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大聖人(대성인)은 智者學匠(지자학장) 등 보다도 無智下賤(무지하천)의 者(자)나 惡人(악인) 등의 쪽이 臨終(임종)의 相(상)이 좋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無智(무지)하므로 佛法(불법)을 모르고 下賤(하천)하므로 謗法者(방법자)에게 供養(공양)하는 일도 없고 惡人(악인)이므로 念佛者(염불자)에게 가까이 하는 일도 없고 그런 까닭에 자연 그대로 살고 父母(부모)에 대한 孝養心(효양심)도 있으므로 生死(생사)를 근거로 成佛(성불)한다는 것은 없어도 人天(인천)의 果報(과보)를 얻기 때문에 臨終(임종)의 相(상)이 좋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지금의 世上(세상)도 이와 같습니다. 여러 가지 宗敎(종교)가 있어 그럴싸한 것을 말하여 남을 惡道(악도)로 인도하고 T.V 등에서도 잘난체하는 사람이 여러 가지 그럴싸한 것을 말하므로 사람들은 모두 속아 넘어간다.


★ 이 世上(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無智(무지)한 자를 내려다 본다는 것입니다. 어느 知識(지식)도 學識(학식)도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가장 결점은 자신보다 지식이 劣等(열등)한 者(자)를 내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自身(자신)의 思考方式(사고방식)이 늘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御書(어서)에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여 我慢(아만)의 마음이 충만하도다] 라고 있고 또 [스스로 진정한 道(도)를 행한다고 생각하여 人間(인간)을 輕賤(경천)하는 者(자)가 있느니라] 라고 있으므로 自身(자신)보다 劣等(열등)한 사람이 있으면 이것을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하여 손을 뻗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좋지 않습니다. 大聖人(대성인)님의 가르침 보다도 自身(자신)을 깊이 의지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我慢(아만)이라 하면 지금은 괴로움이나 아픔을 참고 견디어내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정말은 自身(자신)의 생각이 옳다라고 믿는 慢心(만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我慢偏執(아만편집)의 마음을 버리고 2002년 입종 750년의 大佳節(대가절)을 향하여 오로지 題目(제목)을  불러 折伏(절복)에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참된 리더의 조건


가장 根本的(근본적)인 人間(인간)의 過去(과거). 現在(현재). 未來(미래)라는 三世(삼세)를 救濟(구제)하고, 法界全體(법계전체)를 救濟(구제)할 수 있는 最高(최고)의 스승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모두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求(구)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며, 그런 의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완전히 無知迷妄(무지미망)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大聖人(대성인)님의 佛法(불법)을 믿는 사람으로서 확신을 갖고, 그와 같은 분들의 宗敎(종교)에 대한 無知迷妄(무지미망)을 打破(타파)하고, 올바른 本師(본사)를 따르는 것이 그 사람에게 人生(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라는 것을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스승 중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이란 부처님을 말하며, 末法(말법) 出現(출현)의 本佛(본불) 宗祖(종조) 大聖人(대성인)이야말로 衆生(중생)의 生老病死(생로병사)의 괴로움의 일체를 救(구)하고, 고쳐주시는 根本(근본)의 名醫(명의)이며, 정말로 존경하고 따라야 하는 스승이라는 것을 世上(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오늘은 우리들의 진정한 스승이며 三世(삼세)를 꿰뚫는 진정한 리더는 本佛(본불) 日蓮大聖人(니치렌대성인)님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인사로 대신하는 바입니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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