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으메 너는 가노란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는가”
늘 예정되 있는 죽음은 생각한데로 계획한데로 다가오지 않는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예기치 못한 이별이 천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느니 차라리 오늘 이별 합시다.
어느 하루도 기대하지 않은 하루이거니 기대할 수 없는 하루이거니, 매일매일 작별인사를 합시다.
늦은 밤 별을 바라보는 시간이 이른 아침 커피한잔 마시는 시간이 우리가 작별인사를 해야 할때입니다.
새벽이 밤에게 밤이 새벽에게 건네는 안부가 우리의 마지막 인사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기도는 예배당이나
사원을 필요치 않고 지금 여기서 시작됩니다. 여기 오래된 기도가 있습니다.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의 일상이 기도임을
우리의 호흡이 기도란 것을
우리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엷은 미소가 따듯한 눈빛이
기도란 것을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구태여 초하루, 보름, 관음재일, 지장재일에 맞추어 기도를 올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호흡이 기도란 것은 놀라운 소식입니다.
부처님께서 2600년전에 제자들에게 라훌라에게 호흡을 지켜보게 하셨습니다.
그저 숨이 드나드는 것을 가만히 바라 보는 것
그 자연스러운 관찰이 삼매가 되고 통찰이 되고
끝내는 깨달음으로 이끄니
불교는 얼마나 자연스럽고 자연스런 종교입니까
있는 그대로의 호흡
있는 그대로의 자연
있는 그대로의 종교
그렇게 보면 법회에 참석하여 가족축원문을 올리고
초파일마다 연등을 다는 사람들만 불자가 아니라
눈을 가만히 감고
음식을 오래 씹는데서
간난아기와 눈을 맞추는데서 우리는 불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들은 생각을 멈추고 행위를 바라보게 합니다.
이런 순간들은 생각이 과거 미래로 가지 않고
현재에 온전히 머물게 합니다.
이런 시간들은 나를 고뇌속에서 꺼내어 춤추는 잎새들처럼 싱그럽게 합니다.

여기서 귀사일기를 적는 시간들은 즐거웠습니다. 저의 내면에서 참새 한마리가 나와서 지저귀다가 다시 돌아갑니다.
그것은 친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고 나에게 들려주는 독백이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돼서 안녕이란 인사를 남깁니다.
안녕이란 단어가 언제부터 작별 인사였는지 알지 못하겠으나 제법 유용하고 맹랑합니다.
안녕! 

정덕_시골절 주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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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